클래식음악 2169

말러 : 교향곡 제1번 D장조《타이탄》[City of Birmingham Symphony Orchestra · Sir Simon Rattle]

Gustav Mahler, 1860~1911 Symphony no 1 in D major "Titan" 말러의 [교향곡 1번]이 언제 착수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1884년이나 1885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구상은 1884년 당시부터였을지 몰라도 실제 작곡은 대부분 1888년 초에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설이 엇갈리는 이유는 말러의 지인들이 남긴 자료의 내용이 상반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이 교향곡이 1888년 3월에 완성되었다는 사실 외에 분명한 것은 없다. ‘완성’이라고 했지만 이 당시 말러가 내놓은 결과물은 지금 우리가 아는 것과는 사뭇 다른 형태였다. 2부로 구성된 교향시의 형태였고, 악장 수도 다섯 개였다. 1889년 11월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초연되었을 때..

말러 : 교향곡 전곡 (Complete Symphonies) [City of Birmingham Symphony Orchestra · Sir Simon Rattle]

Gustav Mahler, 1860~1911 Complete Symphonies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은 두 가지 갈래로 발전해갑니다. 하나는 베토벤이 남긴 교향곡들 중 [제3번 ‘영웅]’이나 [제6번 ‘전원’]처럼 표제가 있는 교향곡에 영향을 받은 표제 교향곡들이 있고, 음악과 관련 없는 어떠한 표제 없이 순수하게 음악적인 교향곡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순수음악을 지향했던 교향곡과 표제적인 성향의 교향곡은 19세기와 20세기 전환기에 활동했던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에 의해 종합됩니다. 말러는 번호를 붙이지 않은 [대지의 노래]와 미완성으로 끝난 [교향곡 제10번]을 포함해 모두 11곡의 교향곡을 썼는데, 그의 교향곡엔 표제적이면서도 순수음악적인 양식이 개성적인 형식과 기법으로 나타나 있어 말러의 교향곡은 ..

멘델스존 :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무언가 Op.109 [Mischa Maisky · Pavel Gililov, Yo-Yo Ma · Emanuel Ax]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 Lied ohne Worte, Op.109 는 말 그대로 가사가 없는 노래처럼 짧지만 아름다운 선율들로 가득 차 있는 피아노 소품집이다. 낭만적인 가곡풍의 선율과 단순한 반주로 된 무언가는 슈베르트의 , 과 함께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피아노 소품집이다. 멘델스존은 는 모두 49곡을 작곡했는데 21세 때부터 이탈리아를 여행했으며 그로부터 36세까지 15년 동안 수시로 작곡을 해서 피아노곡으로 각 8곡씩 6집과 첼로와 피아노로 연주한 1곡으로 구성하였고 각 곡은 매우 짧아서 불과 5분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소품들로 대부분 3부 가요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기 내용을 따라 표제를 붙여 불린 적도 있으나 멘델스존 자신이 직접 붙인 것은 ..

베를리오즈 : 오페라《베아트리스와 베네딕트》서곡 [London Symphony Orchestra · Sir Colin Davis]

Louis Hector Berlioz, 1803 ~ 1869 Béatrice et Bénédict, H.138 - Ouverture 오페라 '베아트리스와 베네딕트 [Béatrice et Bénédict]'에 대하여 전 2막. 셰익스피어 원작의 「야단법석(Much ado about nothing)」을 기본으로 작곡자가 대본을 썼다. 베를리오즈는 6편의 오페라 중 를 제외한 모든 대본을 직접 썼다. 이 오페라의 대본은 셰익스피어의 소설을 기본으로 했지만, 그리 많은 내용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그 대신에 성당의 음악감독 소마로네(Somarone)가 펼치는 코믹한 요소를 삽입했다. 물론 이 중에서 돈 후안(Don Juan)의 간통 장면, 헤로의 죽음 등은 나중에 삭제했다. 서곡의 주제 멜로디는 오페라에 다시 나..

베를리오즈 : 레퀴엠(죽은 자를 위한 대미사), Op.5 [London Symphony Chorus · London Symphony Orchestra · Sir Colin Davis]

Louis Hector Berlioz, 1803 ~ 1869 Requiem, Op.5 (Grande Messe des Morts) Grande Messe des Morts(죽은 자를 위한 대미사) 이름을 가진 베를리오즈의 레퀴엠은 1837년 작곡되었으며, 그의 작품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의 하나이다. 베를리오즈는 거대한 것을 무척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죽은 자를 위한 대미사》는 확실히 ‘거대’하다. 이 미사곡을 연주하려면 대규모 합창단과 이백 명이 넘는 관현악단이 필요하다. 이 곡은 원래 파리 앵발리드에서 연주하려고 했는데 공연은 하마터면 열리지 않을 뻔했다. 베를리오즈는 1837년 여름에 1830년 혁명 추모식을 위한 레퀴엠을 의뢰 받았지만, 이 행사는 정치적인 이유로 취소되고 말았다. ..

베르디 : 레퀴엠(Missa da Requiem)중 "Dies Irae(진노의 날)" [Carlo Maria Giulini, Sir Georg Solti, John Eliot Gardiner]

Giuseppe Verdi, 1813∼1901 Messa da Requiem - 2. Dies irae 베르디가 예순 즈음에 작곡한 [레퀴엠]은 오페라 [돈 카를로], [아이다], [오텔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의 최고 걸작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다소 특별한 작곡 동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베르디가 존경해마지 않았던 두 위인의 죽음이었다. 그는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선구자인 조아키노 로시니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곡 ‘리베라 메(Libera me)’를 썼고, 역시 이탈리아의 대문호인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서거 1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위해서 전곡을 완성했던 것이다. 만초니의 서거 1주기인 5월 22일에 밀라노의 산 마르코 성당에서 초연되었다. 베르디 자신이 지휘봉을 잡았고, 소프라..

베르디 : 레퀴엠(Messa da Requiem), Op.48 [The Monteverdi Choir · Orchestre Révolutionnaire et Romantique · John Eliot Gardiner]

Giuseppe Verdi, 1813∼1901 Messa da Requiem Op.48 베르디가 예순 즈음에 작곡한 [레퀴엠]은 오페라 [돈 카를로], [아이다], [오텔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의 최고 걸작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다소 특별한 작곡 동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베르디가 존경해마지 않았던 두 위인의 죽음이었다. 그는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선구자인 조아키노 로시니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곡 ‘리베라 메(Libera me)’를 썼고, 역시 이탈리아의 대문호인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서거 1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위해서 전곡을 완성했던 것이다. 만초니의 서거 1주기인 5월 22일에 밀라노의 산 마르코 성당에서 초연되었다. 베르디 자신이 지휘봉을 잡았고, 소프라노 테레사 스톨츠..

베르디 : 레퀴엠(Messa da Requiem), Op.48 [Carlo Maria Giulini · Philharmonia Chorus · Philharmonia Orchestra]

Giuseppe Verdi, 1813∼1901 Messa da Requiem Op.48 베르디가 예순 즈음에 작곡한 [레퀴엠]은 오페라 [돈 카를로], [아이다], [오텔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의 최고 걸작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다소 특별한 작곡 동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베르디가 존경해마지 않았던 두 위인의 죽음이었다. 그는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선구자인 조아키노 로시니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곡 ‘리베라 메(Libera me)’를 썼고, 역시 이탈리아의 대문호인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서거 1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위해서 전곡을 완성했던 것이다. 만초니의 서거 1주기인 5월 22일에 밀라노의 산 마르코 성당에서 초연되었다. 베르디 자신이 지휘봉을 잡았고, 소프라노 테레사 스톨츠..

쇼스타코비치 : 첼로 협주곡 2번, Op.126 [Mischa Maisky · London Symphony Orchestra · Michael Tilson Thomas]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Cello Concerto No.2, Op.126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Dmitri Shostakovich, 1906 - 1975)의 두 번째 첼로 협주곡 사 장조 (Cello Concerto No.2 in G Major, Op. 126)"는 첫 번째 협주곡 (Cello Concerto No. 2 in E flat Major, Op.107)과 마찬가지로, 당시 소련 최고의 첼로 비루투오조라 추앙 받았던, 미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Mstislav Rostropovich, 1927 - 2007)를 위하여 쓴 작품으로 1066년 봄 크리미아의 휴양지에서 완성되었다. 의 60 번째 생일을 맞는 1966년 9월 25일에 모스크바 음악원 (Moscow C..

쇼스타코비치 : 첼로 협주곡 1번, Op.107 [Mischa Maisky · London Symphony Orchestra · Michael Tilson Thomas]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Cello Concerto No.1, Op.107 1959년 여름은 쇼스타코비치에게 있어서 운명적인 시기였다. 그는 당시 레닌그라드(현재는 원래 지명인 성 페테르부르크로 바뀌었다) 근교에 위치한 코마로보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1953년 이곳에서 그는 스탈린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교향곡 10번]을 작곡한 바 있다. 이 독재자의 죽음이 작곡가의 삶이 극단적인 종말을 향하도록 변화시켰다는 것은 사실이다. 2년 뒤 죽음의 사자가 쇼스타코비치의 가족을 찾아와 1954년 말 그의 부인인 니나 바르사르가 결국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쇼스타코비치에게는 병마가 찾아와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마르가리타 카이노바라는 젊은 여인과의 새로운 사랑과 결..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5번, Op.141 [Moscow Radio Symphony Orchestra · Maxim Shostakovich]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15 in A major, Op. 141 15번 교향곡은 음악적 형식으로 본다면 전형적인 교향곡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시 1번 교향곡의 뉘앙스를 풍기면서 두 교향곡이 서로 맞물고 있는 특이한 형태를 차지하고 있다. 즉 절대 음악적 성격을 띄고 있으며 이는 음악적 퇴행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그 기나긴 교향곡의 길에 마지막 이정표를 세우고 영원한 음악적 순환의 굴레로 만들었다. 15번 교향곡의 이런 작품적 특징은 그의 마지막 작곡의 시기에 위치해서, 작품 내면 못지 않게 시기적으로도 매우 아이러니컬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15번 교향곡이 쇼스타코비치 전체 교향곡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바로 그의 모든 교향곡에 대한 ..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4번, Op.135 [Moscow Chamber Orchestra·Rudolf Barshai]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14, Op. 135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역사에서 대담하고 독창적인 개혁을 이루어냈다, 그 중에서도 노래를 삽입한 4곡은 각기 특이한 존재로 자리 잡았으며,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곡들이라고 할수있다,특히 만년에 작곡한 제13번과 제14번은 그가치를 인정받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계열의 정상에 우뚝서게 만든 걸작이다. 특히 제14번은 완성도와 형식 형태의 독창성으로 쇼스타코비치가 만들어낸 15곡 교향곡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11개의 악장은 각각 스페인(2),프랑스(6),러시아(1),독일(2) 등 4명의 시인이 쓴 시를 바탕으로 작곡되었다. 1-2악장 스페인의 가르시아 로르카 (1889-1936) , 3-8악장..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3번《바비 야르》,Op.113 [Moscow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 Kirill Kondrashin]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13 in B flat minor, Op. 113 "Babi-Yar" 1956년 제20회 당 대회에서 그 유명한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비판 폭로 연설이 있은 후, 소비에트에서는 소위 "해빙"이 시작되었다. 쇼스타코비치도 그 자리에서 그의 연설에 지지를 보내며 '음악 창작에 관한 두세가지 긴급한 문제'라는 논문을 "프라후다'에 게재하고, 젊은이들에게 과감한 혁신을 호소했다. 그러나, 그가 이후에 발표한 제11, 12번은 보수적 기법에 근거한, 혁명을 다룬 표제 음악이었다. 그에 반해 제13번은 "해빙"의 시기에 소비에트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유대인 문제를 대담하게 다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회 고발성 짙은 작품이라고 할수 있으..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2번《1917년》,Op.112 [Moscow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 Kirill Kondrashin]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12 in D Minor, Op. 112 "The Year of 1917" 11번에 이어 구소련의 혁명 정신을 나타낸 작품입니다. 1917년은 레닌의 주도로 공산당이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켜 황제 “차르”의 권위를 묵살하고 황제의 지배를 벗어나게 만든, 말 그대로 혁명의 해였지요. 쇼스타코비치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 곡을 작곡하게 되고 이 곡 첫머리에 “레닌의 회상에 바친다 - To the Memory of Lenin”라는 표제를 쓰게 됩니다. 1악장은 "혁명의 페트로그라드"인데, 혁명 전야의 페트로그라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머리부터 비장한 저현의 흐름이 인상적입니다. 바순과 클라리넷, 바이올린 등이 비장한 주제를 계속해서..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1번《1905년》,Op.103 [USSR State Symphony Orchestra · Konstantin Ivanov]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11 in G minor, Op. 103 "The Year 1905" 1905년 1월 9일, 안개가 자욱히 낀 일요일 오후, 페테르부르크 거리에서 노동자들이 황제의 거처인 '동궁전'을 둘러싸고 마치 파도치듯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황제에게 탄원하기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聖像 (성상)과 깃발을 든 채로 걷고 있었던 것이다. 전혀 무방비 상태였던 민중들에게 황제의 군대가 갑작스럽게 일제 사격을 가함으로써, 수 많은 사상자를 낸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의 각 도시의 노동자들이 저항에 나섰고, 에이젠슈타인의 영화로 잘 열려진 군함 포촘킨의 반란도 일어난다. 이것이 러시아 제1차 혁명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0번, Op.93 [Leningrad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 Yuri Temirkanov]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10 in E Minor, Op. 93 교향곡 10번은 전체 쇼스타코비치 생애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교향곡 9번부터 천천히 되새겨볼 필요가 있기에 불필요한 것 같은 언급들을 삭제할 수 없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작곡된 7번과 8번으로 인해서 한껏 부풀어 오른 스탈린에 대한 맹목적인 추대와 숭상 (공산주의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와중에서 당연히 쇼스타코비치의 외형적인 면도 우선은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음을 이해하여야 한다)이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9번 교향곡에 대해서 스탈린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9번이 상당히 명랑하면서 밝..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9번, Op.70 [Gennady Rozhdestvensky ·USSR Ministry of Culture Symphony Orchestra ]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9 in E flat major, Op.70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비로소 7번부터 이어지던 전쟁 교향곡의 대미를 이 9번으로 장식한다. “승리의 교향곡”으로도 불리어졌지만 이 9번은 이전의 7번과 8번의 드러난 애국주의 경향이 희석되었다는 평가를 받아 악명높은 안드레이 주다노프의 비판의 희생물이 되자 결국 쇼스타코비치는 의도적으로 공산당을 찬양하는 “숲의 노래”를 작곡하면서 10번 교향곡과 다소 멀어지게 된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교향곡이란 장르는 서서히 쇠퇴해지고 말았다. 그 이전에는 교향곡 자체는 조성의 튼튼한 골격하에서 이루어지는 구조체라는 것이 지배적인 인식이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조성을 파괴하는 경..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8번, Op.65 [Yevgeny Mravinsky, Leningrad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 8 in C Minor, Op. 65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7번에 이어 2차 세계대전중인 1943년에 작곡되어 같은 해에 므라빈스키에 의해 초연된 작품으로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침통한 마음을 표현한, 비관이 바닥에 짙게 깔려있는 무거운 작품입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비애와 우수의 정점을 묘사했던 차이코프스키의 6번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유명한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와 함께 전쟁 교향곡이라 불리는, 나치독일에 의하여 포위된 레닌그라드에서 작곡된 작품. 7번이 나치에 맞서 용감히 싸운 승리의 기록을 묘사하고 있다면 8번 교향곡은 절제절명의 위기와 절망의 순간에 처한 인간의 심층을 처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곡의 전체적인 짜임은 전통적인 4악장의 구성..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7번《레닌그라드》, Op.60 [Evgeny Svetlanov, USSR State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 7 in C Major, Op. 60 "Leningrad"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7번교향곡은 2차대전의 한 고비로 유명한 1941년의 레닌그라드 전투 당시에 작곡되었다. 당시에 레닌그라드는 나치독일군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빠져있었다. 결국 레닌그라드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 포위에서 풀려나는데 쇼스타코비치는 이 포위된 도시에서 7번 교향곡을 완성한다. 그해 12월에 완성된 이 곡은 레닌그라드시에 헌정되었고 발표되자마자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연주되었다. 전쟁중 쓰여진 7번과 8번, 그리고 9번 교향곡을 전쟁 교향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중에서는 이 7번이 가장 유명하다. 쇼스타코비치는 당시 실제로 레닌그라드에 살고 있었는데, 전쟁이 일어나자 쇼스타코비..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6번, Op.54 [Yevgeny Mravinsky, Leningrad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 6 in B minor, Op.54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쇼스타코비치는 역작 을 발표한 지 2년여 만에 을 발표했다. 제5번이 劇詩(극시)적이며 인간적인 데 비해 은 서정적이고 자연적이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청아하고, 구름 한점 없는 부드러운 태양 빛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곡은 '작곡가 자신의 예술 생활을 소비에트 연방의 새로운 생활과 연합해 가는 노력'을 보여준 대표작으로 까지는 주로 자신의 내면 생활에 눈을 돌렷던 그가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이후의 작품에서는 주요 소재를 사회사상으로 바꾸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교향곡은 하나의 과도기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 싶다. 이 곡은 그 양식상 매우 특이한 성격을 띠고 있다. 전통적인 교향곡이 소나..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5번《혁명》, Op.47 [Evgeny Svetlanov, USSR State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 5 in D minor, Op. 47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다. 이 작품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유일하게 공연이 된 공산권 음악이었다. 작곡가건 연주자건 간에 당시엔 공산국가 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작품은 절대로 공연을 하지 못했다. 물론 음반들의 국내 반입도 끔찍할 수준으로 차단했었다. 당시 므라빈스키나 콘드라신의 쇼스타코비치 판을 듣기 위해서는 독립운동을 하는 비밀 지하조직의 구성원들 처럼 판을 가지고 있는 사람 집에 은밀하게 모여 작은 소리로 틀어놓고 숨죽여 들어야만 했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쇼스타코비치의 LP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어놓기도 하고. 1970년대 후반, 뉴..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4번, Op.43 [Kirill Kondrashin, Moscow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 4 in C minor, Op.43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단악장이었던 2번과 3번과는 달리 고전적 형식을 그대로 답습한, 교향곡의 전형과도 같은 작품이다. 특히 이 4번은 초연을 앞두고 “므첸스크의 멕베드 부인” 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초연이 취소됨은 물론 26년 후에나 빛을 보게 된다. 이 은 교향곡1번을 만든지 10년째 되던 1935년, 29세 때 작곡, 이듬해인 1936년에 완성되었다. 같은 해 4월에 예정되었던 첫 공연은 몇 차레의 리허설까지 마친 찻태에서, 작곡자인 그가 레닌그라드 필의 지휘대 위에 직접 올라가 총보를 집어 들고 퇴장하는 해프닝이 벌어져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이 일로 인해 이작품은 빛을 보지 못햇으나, 1961년 12월 3..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3번《5월 1일》,Op.20 [Kirill Kondrashin · Moscow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 Alexander Yurlov Russian State Academic Choir]

Symphony No. 3 in E-Flat Major, Op. 20 "The First of May"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표제에 나와 있듯이 이 작품은 쇼스타코비치가 구소련 정부(정확히는 국립 도서 출판소 음악국)의 요청으로 “10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쇼스타코비치는 구소련의 체제에 물든 목적성을 가진 작품들을 쏟아내게 됩니다. 특히 2번과 3번은 쇼스타코비치 스스로도 자신이 추구하는 작풍과 맞지않다고 여겼고 그의 아들인 막심에게도 결코 지휘를 맡기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2번《10월》,Op.14 [Kirill Kondrashin · Moscow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 Alexander Yurlov Russian State Academic Choir]

Symphony No. 2 in B Major, Op. 14 "To October"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표제에 나와 있듯이 이 작품은 쇼스타코비치가 구소련 정부(정확히는 국립 도서 출판소 음악국)의 요청으로 “10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쇼스타코비치는 구소련의 체제에 물든 목적성을 가진 작품들을 쏟아내게 됩니다. 특히 2번과 3번은 쇼스타코비치 스스로도 자신이 추구하는 작풍과 맞지않다고 여겼고 그의 아들인 막심에게도 결코 지휘를 맡기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번, Op.10 [Gennady Rozhdestvensky · The USSR Ministry Of Culture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 1 in F Minor, Op. 10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19세 소년 쇼스타코비치는 페테스부르크 음악학교의 졸업작품으로 제1번 교향곡을 완성하게 되는데 1번과 2번을 초연했던 ‘니콜라이 말리코’에 의해 서구에 알려지자마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후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표제적인 경향이 아직은 나타나지 않고 이전의 고전주의 작풍의 영향이 보이는 것이 다른 번호의 교향곡들과 차이점이랄 수도 있겠지만 그의 4번이나 마지막 교향곡인 15번에서도 뚜렷한 고전 양식을 취한 것을 봐선 그의 마음에는 늘 목적성 없는 순음악을 동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됩니다. I. Allegretto - Allegro non troppo II. Alleg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