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클래식FM이 정부수립 60년을 맞이해 한국인이 즐겨듣는 노래와 좋아하는 성악가를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인이 선호하는 남자 성악가 1위는 루치아노 파바로티(13.55%), 2위 김동규(8.32%), 3위 플라시도 도밍고(2.81%), 4위 엄정행(2.53%), 5위 안드레아 보첼리(1.97%)로 나타났다.
'하이C의 제왕'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2007년 7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지난해 7월 뉴욕에서 췌장암 수술을 받은 파바로티는 지난달 고열증세로 병원에 입원하는 등 병세가 악화됐다. 그의 매니저는 "파바로티는 마지막 순간까지 낙천적이었다"고 전했다.
이제는 170㎏이 넘는 거구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수건으로 훔치던 '뚱뚱보 루치'의 모습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그의 대표곡이 된 푸치니의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됐다. 많은 이의 "그의 빼어난 고음을 들으면 눈물이 나고 기절할 정도"라고 감탄했던 그 노래다.
1935년 10월 12일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에서 빵굽는 아버지와 담배공장서 일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파바로티는 26세 때인 1961년 레조 에밀리아의 오페라하우스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의 '로돌포' 역할로 데뷔했다. 그는 당시 전 세계에 몰아친 로큰롤 열풍으로 썰렁해진 오페라 극장에 혜성처럼 나타난 스타였다.
높은 음역에서 쭉쭉 뻗어나가는 맑고 깨끗한 파바로티의 음색은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1972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도니체티의 '연대의 딸' 공연에서 그는 하이C(중간 '도' 음에서 세 옥타브 위의 '도')의 고음을 내는 아리아를 아홉 차례나 완벽히 소화해 찬사를 받았다. 1988년 독일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사랑의 묘약 공연에선 무려 1시간7분 동안 박수 갈채가 쏟아졌고, 160회가 넘는 앙코르 요청을 받으며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파바로티는 전통적인 오페라 극장을 넘어 대형 야외무대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전야제에서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무대에 선 '3테너 콘서트'. 그때 불렀던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이후 월드컵을 기념하는 대표곡이 됐다.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됐던 지난해 2월 10일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부른 노래도 바로 그 곡이었다. 어릴 적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소년은 그렇게 월드컵 경기장에 섰다.
그는 정통 성악가이면서도 대중가수들과도 종종 공연했다. 1993년부터 매년 고향 모데나에서 '파바로티와 친구들' 공연을 이끌면서 공연음반수익금을 기부해왔다. 그때 함께 선 대중가수들은 에릭 클랩턴, 스파이스 걸스, 머라이어 캐리, 리키 마틴 등등. 테너의 대중화에 앞장섰지만, 지나친 상업주의에 휩쓸렸다는 비판도 함께 따라다녔다. 1993년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연 콘서트엔 50만명의 팬이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