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바로크음악

헨리 퍼셀 [Henry Purcell, 1659년경 ~ 1695]

想像 2024. 9. 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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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퍼셀은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부터 가곡을 쓸 만큼 재능이 풍부했고 10살 때 왕실교회 소년 성가대에 들어가서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성가대장 헨리 쿠크(Henry Cooke)와 펠험 험프리(Pelham Humfrey), 집안 어른들과 가까이 지냈던 작곡가 매튜 로크(Matthew Locke)와 존 블로(John Blow, 1649-1708)를 사사했다. 11살 때 <국왕생일기념 찬가>를 썼고 이 곡이 실제로 국왕의 생일축하때 연주되었다.

14살에 변성기가 올 때까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성가대원으로 노래했고, 변성기 때 성가대를 나와 오르간 제작자이자 왕실악기관리인 존 힝스턴(John Hingston)의 조수로 채용되어 하프시코드를 조율하는 등 꾸준히 노력한 끝에 오르간 조율사 겸 웨스트민스터 성당 악보필경사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18살 때인 1677년에 궁정 상임작곡가와 지휘자가 되었다. 당시 그가 작곡한 환상곡은 바로크 시대 최고의 환상곡으로 평가된다. 1679년(20세)에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면서 왕실예배당의 오르가니스트를 겸했다. 이 때 사택을 받아서 생을 마칠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1681년에 프란시스(Frances)라는 이름의 여성과 결혼했고 6명의 자녀를 얻었지만 둘만 살아남았다.

 

헨리 퍼셀은 찰스 2세, 제임스 2세, 월리엄 3세, 메리 2세 여왕 등 4명의 국왕 밑에서 오르간 제작과 궁정의 악기관리, 오르가니스트, 영국 국교회(성공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종류의 종교의식을 비롯한 국가행사, 왕실기념일이나 축일, 그 밖의 공적인 행사에서 연주할 음악을 작곡했다.대단한 격무였다. 결국은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다가 36세의 젊은 나이로 유언도 남기지 못할 만큼 쇠약해져서 죽었다. 장례식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거행되었고 유해는 이 성당 파이프오르간 밑에 묻혔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를 역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에 비견해 <영국의 모차르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비록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400곡이 넘는 다수의 교회 음악과 기악곡을 남겼고, <디도와 아이네아스  Dido and Aeneas>라는 최고의 완성도를 들려주는 오페라와 당시 런던 청중들이 즐겼던 음악과 대사가 섞인 세미 오페라 <아더 왕> <요정의 여왕> <인도의 여왕>,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라>, <술 마시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오이디푸스>, 앤덤 <찬양하라! 빛나는 세실리아> 같은 뛰어난 합창음악을 써서 영국 바로크음악의 발전에 대단한 공헌을 했다. 그가 쓴 수많은 합창곡은 영어라는 언어가 가진 특유의 뉘앙스를 매혹적인 멜로디를 통해 드러내고, 비올(viol) 앙상블을 위한 환상곡이나 트리오 소나타 분야에서도 필적할 만한 작곡가를 그 시대에서 찾기 힘들다. 헨리 퍼셀도 모차르트와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음악 장르에 작품을 남겼고 그  어는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높은 완성도를 들려준다.

 

헨리 퍼셀이전까지 영국의 작곡계는 독일이나 이탈리아에 비해서 많이 뒤쳐져 있었지만 퍼셀의 등장으로 비로소 창작음악사에서 뚜렷한 위상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곡은 <메리 2세를 위한 장례 음악>이었다. 영국 작곡계는 퍼셀이 죽고 난 후 에드워드 엘가와 본 윌리엄스, 구스타브 홀스트, 윌리엄 월튼, 벤자민 브리튼 등 20세기의 뛰어난 작곡가들이 등장하기까지 근 2세기 동안 깊은 슬럼프에 빠졌었다.    

 

퍼셀이 특별하게 관심을 가진 분야는 성악곡이었다. 영국 왕실행사와 왕실교회의 예배를 위한 합창음악, 극장용 음악, 오페라, 가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성악곡을 썼다. 그의 성악곡은 자연스럽게 ‘말하듯이 구사하는’ 영어 가사 붙이기와 감동적이고 매력적인 선율,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은 밝고 화사한 화음과 정교한 감정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

 

트럼펫과 현을 위한 소나타, 음악의 수호성인 세실리아 기념일(11월 22일)에 연주하기 위해서 쓴 <찬양하라! 빛나는 세실리아> 등이 널리 연주되고 있다. 특히 <성 세실리아의 날에 대한 찬가>로도 불려지는 <찬양하라! 빛나는 세실리아>는 초연(1692년 11월 22일)때 앙콜을 받아 전곡을 한 번 더 연주할 만큼 대단한 성공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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