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Violin)
물리적인 음향 법칙으로 보거나 형태적인 완전성으로 보거나 바이올린만큼 완벽한 악기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외부의 곡선 하나에도 음향 원리가 반영되어 있으며 길이와 두께, 휘어진 각도까지도 이유 없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바로 바이올린이다. 바이올린이 이와 같은 원리와 모습을 갖게 된 것이 누구의 손에 의해서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악기 앞면에 있는 f자 울림구멍이 프란츠(Frantz)를 암시하고 있다는 견해가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으며, 프랑스의 황제 프랑시스 1세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바이올린의 발명자로 지목한 일이 있으나 이 역시 정론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무수히 많았던 비올 제작자들 중에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졌던 몇몇 사람들이 여러 가지의 시도를 통해 바이올린의 토대를 만들고, 어느 한 명인의 손에 의해 체계화되어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견해이다.
대부분의 바이올린 명기들이 크레모나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3세기 초까지는 이탈리아인들은 활을 사용하는 악기를 알고 있지도 못했다. 그들은 오로지 류트나 기타를 만들었고 이 방면에서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그들은 13세기를 보내면서 독일과 프랑스로부터 활을 사용하는 악기의 제작방법을 배웠고, 이 방법이 그들의 기술과 만나게 되어 훌륭한 비올 작품들을 만들게 된다. 그러다가 16세기 중엽에 이르러 돌연 바이올린이 볼로냐 화가의 그림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줄리오 노마노가 1550년에 그린 그림이나 페레그리노 티발디의 그림 ‘성 세실리아와 바이올린을 켜는 두 천사’ 속에 바이올린이 등장한다. 이것을 근거로 최초의 바이올린은 16세기의 30년대나 40년대의 볼로냐에서 태어났다고 추측된다.
바이올린의 역사를 찾기 위해 이전에 존재했었던 모든 현악기를 바이올린의 전신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어떤 악기들은 점진적으로 바이올린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령 페르시아의 케멘체나 아라비아의 르바브, 무어인들의 레벡, 켈트인들의 크루트, 독일의 트룸샤이트, 프랑스의 비엘 등이 그 예이다. 한편 바이올린을 포함한 현악기의 계통을 그리스의 기타라에서 찾는 견해도 있는데, 손으로 퉁겨 연주하던 기타라가 중세 전기에 이르러 손으로 퉁기기도 하고 활로 문지르기도 하는 로타로 발전하고, 이 로타가 12∼13세기의 비엘로 발전하며 비엘이 15세기를 거치며 비올이 된다는 것이다. 비올은 바이올린처럼 허리가 잘룩한 모양을 갖게 되고 다양한 크기로 만들어졌다. 이 비올족의 악기들은 바이올린이 탄생한 이후에도 한동안 공존했으며 17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비올이 바이올린과 다른 점은 현의 수가 6개이며, 무릎 위나 무릎 사이에 끼우고 연주한다는 점이다. 비올에서 바이올린이 나오는 중간 과정에 리라 다 브라치오라는 악기가 나타나 무릎 위에서 연주하던 방식을 어깨에 올리고 연주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역할을 맡는다. 비올과 리라와의 차이는 비올의 울림구멍은 C자인 데 반해 리라 다 브라치오의 울림구멍은 f자라는 점이다.
16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오늘날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정착한 바이올린은 그 이후 이탈리아의 크레모나와 브레시아 지방에서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당시의 유명한 제작자로는 안드레아 아마티와 그의 손자 니콜라우스 아마티, 니콜라우스의 제자 안토니우스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 가문의 안드레아와 안토니오 델 제수, 그리고 루제리, 베르곤치, 몬타냐나, 스토리오니 등이 있으며 그란치노와 과다니니는 밀라노에서, 갈리아노는 베네치아에서 이름을 떨쳤다. 특히 안토니우스 스트라디바리가 그 가문 특유의 악기 몸통 모양을 창출한 이후 그것이 표준형으로 고정되어 1700년대부터는 바이올린의 몸통이 35.5cm로 커졌다. 당시의 유명한 제작자들은 목의 후면 경사를 높이고 굵은 현을 강하게 조여 사용했으며, 브리지를 높게 올리고 지판의 길이를 늘렸다. 이렇게 하여 보다 풍부한 음량을 얻을 수 있었으며 음향적인 면에서도 완벽한 상태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당시에 제작된 악기들은 따라갈 수 없는 이상적인 악기로 지금까지도 인정받고 있다.
바이올린의 활도 상당 기간을 통해 오늘의 모습으로 정착한다. 최초의 활은 화살을 쏘는 활의 모습과 같이 반원형으로 되어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활의 탄력이 턱없이 부족하며 충분한 길이를 확보하기도 어렵다. 16세기 초에 활털과 막대 사이에 간격을 두어 잡기 좋게 만든 활이 나왔고, 17세기 초에는 활대의 구부러진 정도가 훨씬 적어졌다.
17세기 말엽에 이르러 금속 고리를 걸어 활털 이음틀을 움직여서 활털의 장력을 바꿀 수 있는 장치가 고안되었다. 18세기 초에는 나사로 움직이는 활털 이음틀의 원리가 고안되었으며 활대의 각도도 더욱 줄어들었다. 18세기 중엽 타르티니의 영향으로 활대가 직선으로 정착되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활을 만들었던 투르트는 바이올린에서 스트라디바리가 이룬 업적에 필적할 만한 업적을 활 제작 부문에서 남겼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프랑스의 활이 상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골동품 활을 수집하는 상인이 유럽 여러 나라 중에서도 유독 프랑스에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바이올린을 구성하는 부품의 수는 대략 70개 정도가 된다. 가장 큰 부품이라 할 수 있는 앞판과 뒤판은 가운데가 불룩하게 나오고 몸통의 위 아래와 가운데 부분이 바깥쪽과 안쪽으로 둥글게 곡선이 졌는데, 이 모양은 나무를 휘어서 만든 것이 아니고 그렇게 가는 것이다. 나뭇결에 따라 공명도가 다르기 때문에 좋은 공명을 얻기 위해 앞판은 세로로, 뒤판은 가로로 자른 널판지를 잘 건조시켜 쓴다. 앞판과 옆판은 소나무나 전나무, 뒤판은 단풍나무를 주로 쓴다. 현의 진동이 브리지를 타고 앞판에 도달하여 공명하면 앞판, 옆판, 뒤판으로 만든 빈 공간이 공명통의 구실을 하여 음을 증폭시킨다.
공명통 속에 있는 버팀목은 버티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앞판과 뒤판의 진동을 전달하여 몸통 전체가 공명하게 해주는 역할도 맡는다. 앞판의 좌우에 있는 f자 울림구멍은 몸통의 공명에 의한 공기 진동을 밖으로 통하게 한다.
바이올린의 음향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는 버팀목의 위치, 브리지의 모양과 위치, 등이다. 브리지는 단풍나무로 만드는데, 중앙에 하트 모양의 구멍을 뚫어 두 개의 날개를 만들고, 아래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어 현의 장력을 견디어 균형을 이루며 현의 진동을 앞판에 전달한다. 하트 모양의 양날개는 음색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바이올린 제작의 마지막 단계인 칠은 음색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며, 습기 등의 기후로부터 악기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보통 여러 겹의 칠을 하는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의 신비스러운 음색의 비밀이 바로 이 칠에 있다는 설도 있다.
바이올린의 활은 가볍고 강하며 탄력이 있을수록 상품으로 친다. 문지르는 줄은 말총을 사용하는데, 보통 활 하나에 150∼250개의 말총이 들어간다. 이 말총에 송진을 발라 연주할 때 활이 미끄러지는 것을 막는다. 바이올린의 줄은 양이나 어린 양의 내장으로 만든 거트현이나 강선을 쓴다. 거트현은 음질이 부드럽고 음색이 아름답지만 온도변화에 약하고 음량이 적으며, 강선은 음량은 크지만 음질이 떨어진다. 그때문에 보통 높은 음인 E선은 강선을 사용하고 나머지 3개의 현은 거트 또는 강선에 가느다란 동이나 은 또는 알루미늄을 감아서 사용하기도 한다.
어린이를 위해 여러 가지의 축소형 바이올린을 제작하기도 하는데, 풀 사이즈 바이올린의 몸통의 길이를 35,6cm로 쳤을 때 1/4은 29.7cm, 1/2은 32cm, 3/4은 33.5cm가 된다. 어린이들이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할 때는 축소형을 쓰지만 곧 풀 사이즈를 사용하기 때문에 축소형바이올린으로는 명기를 만들기를 꺼리게 되고, 따라서 축소형 중에는 이름있는 올드 바이올린이 매우 드물다.
추천 바이올린 명곡
▒ 바흐/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BWV 1001-1006
바이올린을 위한 연습곡 정도로 여겨오다가 20세기 들어서면서 부터 독주 바이올린 곡으로서 중대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작품을 관통하는 지적인 힘과 독창성, 건축적인 균형감이 특징. 수준높은 연주력을 필요로 한다. 3개의 소나타와 3개의 파르티타로 이루어지는데, 소나타가 이탈리아 교회 소나타 양식을 취하는 반면, 파르티타는 모음곡 형식으로 되어 있다. 소나타의 둘째 악장을 장식하는 푸가는 바흐의 능통한 대위법을, 파르티타의 작은 춤곡들은 바로크풍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파르티타 2번의 유명한 샤콘느에서 당김음 주제가 간결한 화음을 토대로 펼쳐가는 변주의 파노라마는 특히 압권이다.
▒ 비발디/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비발디의 ‘화성과 창의의 시도’ 작품 8을 구성하는 12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의 첫 4곡이다. 각 곡의 초두에 적힌 소네트와 더불어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 풍경이 음악으로 묘사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4곡 모두 바이올린의 독주부와 오케스트라의 리토르넬로가 교대로 나타나고, 느린 악장을 사이에 두고 빠른 악장이 처음과 끝악장에 놓이는 변함없는 규칙성이 조금은 단조롭게 여겨지지만, 작품 사이사이에서 만나는 바이올린의 화려한 연주기교와 비발디 특유의 생동감있는 표현은 세월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이 작품의 매력이라 할 만하다. 음악사적으로는 독주 바이올린 협주곡 양식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 베토벤/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61
베토벤이 쓴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면서 이 장르 최고의 걸작이다. 장대한 스케일과 역동감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가운데 깊고 뜨거운 열정이 강렬한 힘으로 뿜어져 나오는 곡. 팀파니의 5번의 연타로 시작되는 첫 악장부터 불꽃이 튀는 듯한 마지막의 론도 악장에 이르기까지, 꽉 짜인 곡의 구조와 악기간(독주와 오케스트라)의 균형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들에 비해 남성적 강인함은 덜한 편이지만, 정(靜)과 동(動)의 교묘한 공존에서 빚어지는 긴장감은 엄청난 힘을 발한다.
▒ 베토벤/바이올린 소나타 1번-10번
모차르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들도 ‘바이올린과 바이올린’가 아닌 ‘바이올린와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이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전 시대에 비해 두 악기가 거의 대등한 균형을 이룬다. 모두 10곡. 그 가운데 5번과 9번이 가장 유명하다. 화사한 곡의 분위기로 인해 ‘봄’이라는 부제를 달게 된 소나타 5번은 베토벤의 작품으로서는 드물게 단순하고 맑은 시정을 담고 있다. 아직은 바이올린이 바이올린보다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는 단계다. 반면에 소나타 9번 ‘크로이처’에서 두 악기의 역할은 보다 더 대등해지고, 그 밀착된 대화와 협주적 갈등구조는 대단한 격정을 뿜어낸다. 베토벤은 애초에 이 곡을 바이올리니스트 브리지타워에게 헌정하려 했으나 한 여자를 두고 그와 연적의 관계가 됨에 따라 헌정자를 크로이처로 바꾸었다.
▒ 파가니니/바이올린을 위한 24개의 카프리스 작품 1
파가니니는 신기(神技)에 가까운 연주기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바이올리니스트. 그가 작곡한 여러 바이올린 작품 가운데 ‘24개의 카프리스’는 19세기 기교주의의 극치를 대변하는 동시에 음악적으로도 충실한 걸작이다. 화려한 트릴과 2중 3중의 스토핑, 하모닉스, 피치카토, 스타카토와 아르페지오 등 온갖 기교가 망라되는 바이올린의 교본 같은 곡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가치는 24개의 곡들이 단순한 연습곡의 수준을 넘어 뛰어난 음악성을 구비하고 있다는 데 있다. 풍부한 선율과 생기있는 리듬, 자유로운 악상의 전개가 순간순간 광채를 발하는 작품. 마지막 곡은 브람스와 라흐마니노프가 변주곡의 주제로 써서 더욱 유명하다.
▒ 멘델스존/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작품 64
멘델스존 생전에 발표된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서 낭만주의적 정서가 다분하다. 형식에 있어서 전 3악장이 쉬지 않고 연주된다는 점과 1악장의 카덴차가 소나타 형식의 전개부와 재현부 사이에 삽입된 점이 이채롭다. 무엇보다도 획기적인 것은 오케스트라가 주제를 제시하기 전에 독주 바이올린이 곧바로 주제로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깨끗하고 유창한 멘델스존의 특징이 두드러지는데, 2악장의 선율은 특히 더 감미롭다.
▒ 프랑크/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프랑크가 쓴 유일한 바이올린 소나타. 이 곡을 가리켜 뱅상 댕디는 ‘최초이자 가장 순수한 순환 주제의 소나타’라 했지만 순환형식이 그리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는다. 어쨌든 작곡가 자신은 서로 연관되는 선율을 가리켜 ‘사촌들’이라 했고, 이것이 작품 전체에 통일감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4악장 구조. 신비적인 첫번째 주제가 그렇듯이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환상곡풍의 무드가 지배적이며 이따금 강렬한 정열이 표출될 때도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오이겐 이자이에게 헌정된 곡이다. 베토벤, 브람스의 작품과 더불어 바이올린 소나타의 걸작으로 꼽힌다.
▒ 브람스/바이올린 소나타 1번-3번
현존하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모두 3곡. 모두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보다 나중에 작곡된, 실내악의 걸작들이다. 1번 G장조 소나타는 일명 ‘비의 노래’로 불리는데, 이는 동명의 브람스 가곡을 주제로 쓴 3악장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실질적으로 이 노래의 리듬은 전악장을 지배한다. 2번 A장조 소나타에서도 브람스는 자신의 가곡 선율을 이용하는데, 단지 이번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곡이 조금씩 비치는 정도다. 우울한 1번에 비해 2번은 부드럽고 다정하며, 3번 D단조 소나타는 보다 더 심각하고 내성적이다.
▒ 차이코프스키/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35
작곡 당시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우어가 ‘연주 불가능한 곡’이라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지만 현재는 가장 인기있는 바이올린 협주곡의 하나로 꼽힌다. 바이올린의 화려한 음색으로 표현되는 풍부한 선율성은 분명 차이코프스키 고유의 특색을 담고 있지만 이 곡의 구조는 멘델스존의 곡을 따르고 있다. 3악장 형식. 피날레의 러시아 춤곡 리듬은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한결 더 러시아적인 경향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