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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선전도구로 활용된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想像 2024. 3. 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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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선전도구로 활용된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Der Meistersinger von Nürnberg)는 바그너의 오페라 제목이다. Meistersinger의 뜻은 Meister와 Singer의 합성어로, 직업적인 가수가 아니라 노래를 잘하는 우두머리 장인을 뜻한다. 이 오페라의 줄거리는 16세기 중반 뉘른베르크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다룬다. 그 당시 뉘른베르크는 자유도시로 북유럽 르네상스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독일 바이에른 주의 뉘른베르크는 중세 말기에는 영주에 속해있지 않은 시민계급으로 구성된 제국 직속도시였다.

 

이 오페라의 주인공은 실제 인물인 한스 작스다. 1494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나서 1576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한스는 뉘른베르크에서 라틴학교를 나온 후에 15세 때에 구두 만드는 도제로 들어가서 3년 동안 구두 만드는 일을 배웠다. 그후 다른 도제들이 그런 것처럼 보따리를 하나 들고 유랑의 길을 떠났다. 이를 독일어로 Gesellenwanderung이라고 한다. 도제들이 겪어야 하는 일종의 시험이었다. 이때에 그는 인스부르크의 막시밀리안1세 궁정에서 지내면서 명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독일의 마이스터징어로 원래 직업은 극중에서처럼 구두를 만들거나 수선하는 장인이었다. 

그는 다양한 소재로 6,000개가 넘는 시를 만들어, 당시의 마이스터징어들 사이에서 새바람을 일으킨 존재였다. 한스 작스를 '예술적 창조력이 풍부한 국민 정신의 마지막 인물'로 높이 평가했다. 그는 뮌헨으로 가서 7년동안 당대의 명가수인 린하르트 눈넨베크(Lienhard Nunnenbeck)의 문하에 들어가 노래공부를 시작했다. 한스는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좋은 음성으로 눈부신 발전을 보여 몇 년 후에는 유럽에서도 손색없는 가수로서 발돋움하게 되었다. 바그너는 한스작스의 생애를 감동적인 오페라에 담아 제목을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라고 하였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는 바그너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일관적으로 표현하려 했던 독일정신에 대한 신념이 가장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당시 프랑스가 이탈리아에 비해 세련되지 못하다고 평가되었던 독일문화와 예술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한스 작스가 발터를 설득하여 마이스터징어 칭호를 받도록 하는 장면에서, 작스는 ‘외국의 헛된 규칙을 신봉하면 나라가 분열되고 장인정신이 사라질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이 사라져도 신성한 독일 예술은 살아남을 것이니 진정한 독일 정신을 찬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짧은 모노로그 속에 바그너는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통일된 독일과 독일정신의 우월성, 그리고 이국의 영향에 오염되지 않을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국의 영향에 대한 바그너의 거부감은 유대인에 대한 거부감이기도 했다. 실제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유대인에 대한 거부감이 특정인물을 겨냥하고 있다고 하여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극 중 인물인 베크메서가 문제의 인물로서, 바그너는 베크메서를 통해 유대인을 비판하고 있으며 유대교회의 성가를 풍자적으로 변형한 노래를 부르게 함으로써 희화화하고 있다. 문제는 베크메서에 대한 묘사가 당시 바그너에 대해 가장 적대적인 평론가였던 한슬리크를 연상시킨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바그너는 베크메서의 이름을 처음에는 한슬리크의 이름을 본따 지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대인이면서 바그너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한슬리크는 정작 이 작품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평론을 썼다.

히틀러는 바그너의 음악이 독일인으로서의 자긍심을 한껏 치켜세워 주는 것으로 믿었다.  바그너가 표현하고자 했던 독일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는 히틀러가 이용하기에 매우 적합한 것이었고 바그너의 민족주의는 히틀러에 의해 쇼비니즘과 선전도구로 이용되었다.

 

바그너 필생의 대작 '니벨룽의 반지’의 주인공 지크프리트를 아리안족의 심벌로 삼았다. 바그너 후기의 작품으로, 16세기 뉘른베르크에서 마이스터징거 (장인시인) 들의 노래경연을 소재로 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는 히틀러가 휘파람으로 모든 곡조를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한 오페라로, 이곡을 나치 전당대회에서 축제의 오페라로 택했다. 

 

히틀러는 나치 전당대회를 일부러 뉘른베르크에서 개최하였으며, 1943~1944년 시즌에는 바이로이트에서 오직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만을 상연하도록 하면서 전쟁의 선전도구로 이용하였다. 또한 나치의 뉘른베르크 집회는 매번 마이스터징거 서곡 연주로 문을 였었다. 나치의 뉘른베르크 야간 집회는 인상적인 조명과 바그너의 음악으로 집회장을 흥분과 감동으로 몰아 넣었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3막에서 군중들이 부르는 ‘잠에서 깨어나라’는 실제 한스 작스가 루터의 종교개혁을 위해 만든 노래였지만, 히틀러는 이 노래를 전의를 고취시키기 위한 것으로 이용했다.


 

Meistersinger von Nürnberg: Prelude to Act I

 

한때 나치에 가담했던 30살의 젊은 카라얀 (Herbert v. Karajan)이 1939년 히틀러 앞에서 다섯시간이나 걸리는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urnberg)를 지휘하기도 했다.

 

나치의 뉘른베르크 집회는 매번 마이스터징거 서곡 연주로 문을 였었다.

 

 

나치의 뉘른베르크 야간 집회는 인상적인 조명과 바그너의 음악으로 집회장을 흥분과 감동으로 몰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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