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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카잘스에 의해 200년만에 세상에 다시 나온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想像 2024. 3. 1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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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카잘스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876년 12월 29일, 바르셀로나에서 60km 쯤 떨어진 작은 마을 벤드렐에서 태어난 파블로 카잘스는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11살 때 바르셀로나 음악원에 입학하였고 1899년에 파리에서 라무뢰 교향악단과 협연하여 큰 명성을 얻었다. 이 무렵부터 그는 자크 티보(바이올린), 알프레드 코르토(피아노)와 함께 황금의 트리오 활동을 펼쳐 유럽 문화의 중심지가 된 파리 음악계 중심인물이 되었다. 피카소가 그랬듯이, 유럽 문화의 변방 스페인 지역의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파리로 모여들던 시대였다. 


첼리스트 카잘스의 이름은 오늘날 바흐 음악의 성자이며 첼리스트에 영혼을 부여한 사람으로 통하고 있는데, 그것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 때문이다. 그의 나이 13살 때,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바르셀로나의 악보 전문 고서점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그는 수많은 '뛰어난 천재'의 한 명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음악의 신은 13살의 파블로 카잘스를 선택했다. 장래에 큰 음악가가 될 것이라고 믿게 된 그의 아버지가 생애 처음으로 풀사이즈 첼로를 카잘스에게 사준 날, 그들은 우연히 악보 전문 고서점에 들렀고 그곳에서 파블로 카잘스는, 바흐가 그런 곡을 작곡했다는 기록만 전해질 뿐 그 무렵까지는 비밀에 가려져 있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악보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카잘스는 그 악보를 12년 동안이나 연구하고 또 연습했다. 요즘의 음악 문화에서, 애호가들에게 '필청의 음악'을 선정하라고 하면 반드시 상위권에 언급되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카잘스는 사춘기에서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그 뜨거운 시기 동안 매일같이 연습했으며 마침내 25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공개 연주를 했다. 이 연주는 20세기 벽두의 음악사적 사건이 되었으며 기록으로만 알려진 바흐의 기악곡의 봉인이 200여 년만에 풀린 것이다. 


바흐의 다른 기악곡이 모두 그러하듯이, 이 곡은 첼로라는 악기의 모든 살과 근육과 뼈와 혈관과 세포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구현해낼 수 있는 '교과서'가 되었고 동시에 그 화성악적 가치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감상의 차원에서도 지극한 상념에 젖게 하는 기악곡의 성서가 되었다. 



Pablo Casals
Bach: Cello Suites, BWV 1007 -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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