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naldo HWV 7
George Frideric Händel, 1685∼1759
David Daniels
Bernarda Fink
Cecilia Bartoli
Academy of Ancient Music
Christopher Hogwood
마법의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러 가는 왕자 이야기. 바로크 시대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초기 걸작 [리날도]는 바로 그런 동화적이고 황당무계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오페라의 대본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토르콰토 타소(Torquato Tasso, 1544-1595)의 [해방된 예루살렘 La Gerusalemme liberata](1575)의 일화를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초연은 1711년 2월 24일 영국 런던 헤이마켓 왕립극장에서 이루어졌는데, 극장은 연일 초만원 사태를 빚으며 대단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당대의 유명 카스트라토 니콜리니가 타이틀 롤을 맡았고 캐스팅이 초호화 진용인 데다, 성악적 기교를 최대한 살려주는 아름다운 아리아들이 줄을 이었답니다. 그리고 천둥과 번개, 조명과 불꽃이 만들어내는 특수효과가 관객의 혼을 빼놓았다는 점도 중요한 성공비결이었다고 하는군요.
이처럼 압도적 성공을 거뒀는데도 헨델은 만족하지 않고 공연 때마다 작품을 수정했고, 1731년에는 대대적인 수정을 가해 결정적 개정판을 만들어냈습니다. 예를 들어 초연 때 알토 여성가수에게 맡겼던 고프레도 역이 개정판에서는 테너로 바뀌었고, 오늘날은 카운터테너가 이 역을 노래하기도 합니다. 바로크 시대 관객은 남성가수가 여성 역을 노래하거나 여성 가수가 남성 역을 노래하는 것을 전혀 어색하게 여기지 않았답니다. 오늘날 [리날도]는 지휘자에 따라 매번 다양한 버전으로 연주되고 있습니다.
줄 거 리
때는 1099년. 십자군 사령관 고프레도는 이슬람 세계에 넘어간 예루살렘을 포위한 채 장군 리날도를 격려합니다. 딸 알미레나와 리날도가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고 있는 고프레도는 이 전투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면 그를 사위로 맞아들이겠다고 약속하죠. 알미레나는 용감하게 싸워 이기고 돌아오라는 노래로 그에게 힘을 주고, 리날도는 ‘사랑을 당장 이룰 수 없음은 괴로운 일’이라고 노래하면서 어서 승리해 알미레나에게 돌아오겠다고 다짐합니다. 한편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던 사라센 왕 아르간테는 전세가 불리하다고 느껴 3일간의 휴전을 제안하고, 고프레도는 이를 받아들입니다. 그 때 아르간테의 연인인 이슬람 마법사 아르미다가 나타나 리날도를 패하게 할 궁리를 합니다.
리날도와 알미레나는 새들이 노래하고 산들바람이 부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사랑의 이중창을 노래합니다. 그때 갑자기 아르미다가 나타나 마법을 발휘해 알미레나를 납치해 갑니다. 리날도를 유인하려는 술책이죠. 사령관 고프레도 그리고 그와 형제간인 에우스타치오는 기독교 세계의 마법사가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며 리날도를 위로하고, 리날도는 ‘바람이여, 회오리여, 우리를 도와다오’라고 열정적으로 노래합니다.
고프레도와 에우스타치오, 리날도 일행은 일단 배를 타고 기독교 마법사를 찾아가기로 합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가는 중에 바다의 요정 사이렌들의 노래와 춤이 그들을 유혹하죠. 일행이 말리는 데도 리날도는 알미레나를 구하러 간다며 사이렌들의 배를 타고 떠납니다. 아르미다 여왕의 궁전에서는 아르간테 왕이 인질로 잡혀온 알미레나에게 반해 사랑을 고백하지만, 알미레나는 ‘나를 자유롭게 해줄 것도 아니면서 쓸데없는 소리 말아요. 차라리 내 잔혹한 운명을 탄식하며 울게 내버려두세요’라며 그에게 응하지 않습니다.
알미레나의 이 아리아는 거세된 남성가수 카스트라토의 삶을 다룬 영화 [파리넬리]에 등장해 ‘울게 하소서’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졌지요. 마치 경건한 기도처럼 들리지만 이야기의 맥락을 살펴보면, 말로는 사랑한다면서도 아르미다가 무서워 도와주지 못하는 적장 아르간테에게 알미레나 공주가 짜증내는 노래랍니다. 독백조로 부르고 있긴 하지만요.
한편 아르미다 역시 사이렌의 배를 타고 온 리날도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립니다. 리날도가 거부하자 아르미다는 알미레나로 변신해 유혹해보지만, 리날도는 끝까지 자신을 지킵니다. 오히려 알미레나로 변신한 아르미다를 몰라보고 아르간테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이 이슬람 연인들의 관계는 갑자기 냉랭해지지요.
리날도 없이 기독교 마법사를 찾아간 고프레도와 에우스타치오는 아르미다의 주술을 깰 수 있는 마법의 지팡이를 얻어 아르미다의 성으로 항해합니다. 한편 분노와 질투에 사로잡힌 아르미다는 알미레나를 죽이려 들고, 리날도가 이를 가로막죠. 고프레도와 에우스타치오는 지팡이를 앞세우고 아르미다의 성에 들어와 알미레나와 리날도를 구합니다. 공주는 결국 왕자가 아니라 아버지의 손에 구출된 거죠. 알미레나와 리날도에게 각각 마음을 빼앗겨 사이가 나빠졌던 아르간테와 아르미다는 다시 화해하고 결전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전투는 리날도와 기독교도들의 승리로 끝나고 두 연인은 고프레도의 허락을 받아 행복하게 결혼하기로 합니다. 전투에 패하고 예루살렘을 빼앗긴 아르미다와 아르간테는 기독교도들의 신이 자신들의 신보다 막강하다고 생각해 기독교로 개종합니다. 바로크 오페라다운 이 어이없는 결말, 그리고 십자군 전쟁 자체의 부조리함이 현대적인 [리날도] 연출에서는 재미있게 희화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