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이유에서 태어났다. 9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1941년에 마르세이유 국립 음악원을 졸업했다. 이후 아마추어 재즈 밴드를 결성하거나 스튜디오 디렉터, 오케스트라 지휘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65년에 ‘폴 모리아 그랜드 오케스트라’를 결성했다.
이어 앙드레 포프의 곡을 편곡해 출시한 〈Love Is Blue〉(L'Amour Est Bleu)는 5주간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였고,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5백여만 장). 우리나라와 일본, 중화민국, 홍콩,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으며, 1969년의 첫 방일과 1975년의 첫 방한 이래 도합 1,200회 이상 공연하기도 했다. ‘아리랑’과 ‘돌아와요 부산항에’(Please return to Pusan port)를 경음악으로 편곡했으며, 1976년에 프랑스에 아리랑을 소개하여 이후에 유럽에 아리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94년에는 그가 속해 있었던 필립스 레이블에서 일본 포니 케넌에 이적했다. 1995년에는 고베 대지진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한 연주곡인 Quartet for Kobe(고베를 위한 4중주)를 발표했다. 고베에서 녹음했으며 폴 모리아가 피아노 파트, 레이몽 르페브르가 플릇 파트, 프랑크 푸르셀이 바이올린 파트, 프란시스 레이가 아코디언 파트를 맡았다. 1996년 2월에는 일본 도쿄 히토미 키넨홀에서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었다. 그 공연 실황은 포니 케넌이 레이저디스크, DVD, CD로 발매했고, 일본의 BS위성방송사업자인 WOWOW에서 방송됐다. 1997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예술문화훈장을 수여했다.
1998년의 일본 오사카 공연을 끝으로 연주 활동은 은퇴했지만, 이후에도 폴 모리아는 파리에서 은둔하며 공연 총 감독을 맡았고 그의 악단은 대한민국, 일본, 중국, 러시아에서 연주 활동을 계속했으며, Gilles Gambus가 2004년까지 지휘했고 2005년부터는 Jean-Jacques Justafre가 지휘했다. 2002년에는 저술가이자, 코멘테이터인 Serge Elhaik가 폴 모리아의 삶을 다룬 Une vie en bleu(A life in blue)를 프랑스어와 일본어로 발간했다.
2006년에도 그의 오케스트라가 한국과 일본에서 공연을 할 계획이었으나 그의 사망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2006년 10월 말, 프랑스 남부 페르비뇽의 별장에서 체제중, 컨디션 불량을 호소해 검사 및 입원했는데, 급성 백혈병인 것이 판명되었다.동년 11월 3일 오전 1시, 급성 백혈병에 의한 심부전 때문에 페르비뇽의 병원에서 향년 81세로 사망했다. 6일에 화장되었다.
1. Love is blue
2. Penelope
3. Toccata
4. El Bimbo
5. Those Were The Days
6. Nocturne
7. Song For 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