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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여행] 서태후의 흔적이 가득한 황실 정원 이화원(颐和园)

想像 2017. 4. 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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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시내와는 약 10km가량 떨어져 있는 곳에 자리한 이화원(颐和园)은 청의원(淸漪園)이라고 불리며 대대로 황제의 휴양 정원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하지만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의 공격으로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1886년 광서제가 태후의 요양을 위해 재건하여 지금의 이화원이 탄생하였다. 현재는 박물관 형식으로 사용되어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베이징 대표 명소이다. 


광서제의 어머니 서태후 이야기 없이 이화원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서태후는 중국의 3대 악녀로 꼽히며 강한 권력과 남성편력, 사치와 향락으로 유명한 청나라 말기의 여인이다. 광서제의 큰어머니이면서 이모였던 서태후는 수렴청정을 통해 실질적인 청나라 황실의 통치자 역할을 했는데, 자금성 북쪽의 이화원으로 거취를 옮겨 외견상으로는 정권에서 물러나는 듯했지만 사실상 광서제가 이화원에 있는 서태후에게 문안을 수시로 드리며 국사를 보고 하고 지시받았다. 이화원은 그 당시 서태후의 강력한 권력을 한눈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화원의 영문 명칭은 ‘Summer Place’이다. 황제들의 휴양 정원이었던 역사보다도 너무나도 강력했던 서태후의 여름별장으로서의 의미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청일전쟁 당시 군자금을 빼돌려 치장할 정도로 서태후는 이화원을 화려하게 꾸미는 데 집중했다.


이화원의 넓은 호수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곤명호(昆明湖)인데 곤명호를 만들기 위해 파낸 흙을 쌓은 것이 이화원을 둘러싼 인공산 만수산(万寿山)이다. 곤명호는 이화원 면적의 약 3/4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만수산에는 우거져있는 오래된 측백나무와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들 아래로는 웅장한 궁궐들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유명한 사당들이 서로 어우러져 있다. 푸른 식물을 볼 수 없었던 자금성과는 달리 고즈넉한 궁과 아름다운 자연이 조화를 이룬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이화원에는 크고 작은 정원 20개, 100여 개의 건축물이 있다. 정원과 건물 어느 곳 하나 빠짐 없이 아름다운 조각상과 희귀한 보물과 유물로 가득하다. 780m에 달하는 긴 복도 건축물 장랑(长廊), 장랑 서쪽 끝에 자리한 화려한 수상 건축물 석방(石舫), 만수산 중턱에 있는 불향각(佛香阁)은 이화원에서 꼭 봐야 할 중요 포인트이다. 


1908년 광서제가 돌연 죽음 이후, 서태후는 어린 선통제(宣统帝) 푸이를 왕위에 앉히고 섭정하는데, 1912년 결국 서구 열강 세력의 영향으로 인해 선통제는 퇴위하고 청왕조의 멸망과 함께 제국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된다. 청나라의 마지막을 함께한 희대의 여인 서태후의 흔적이 가득한 이화원에가면 겨울철에는 곤명호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여름에는 유람선을 타는 평화로운 광경을 볼 수 있다.



이화원(颐和园) 가는 법 


보통 단체여행객들은 이화원 동쪽에 있는 정문 동궁문(東宮門)를 통해 인수문(仁壽門)을 지나 인수전(仁壽殿)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개별여행객들은 대부분 지하철 4호선 북궁문(北宫门, BEIGONGMEN) 역에서 하차 후 도보 5분. D출구로 나와 이화원북궁문(颐和园北宫门)을 통해 들어온게 된다. 


이화원(颐和园) 입장료


이화원의 개장시간은 성수기(4~10월) 08:30~17:00, 비수기(11~3월) 09:00~16:00이다. 입장료는 비수기 20 CNY, 성수기 30 CNY이다. 하지만 이 가격은 이화원 입장을 위한 요금이며 소주가(蘇州街), 불향각(佛香閣), 덕화원(德和園),문창원(文昌院) 등을 구경하려면 따로 입장료를 추가로 내야 한다. 입장료을 포함 소주가(蘇州街), 불향각(佛香閣), 덕화원(德和園), 문창원(文昌院)등을 모두 볼 수 있는 통합요금 티켓도 있는데 비수기 50 CNY, 성수기 60 CNY이다. 아래 사진이 통합요금 티켓인데 소주가(蘇州街), 불향각(佛香閣), 덕화원(德和園), 문창원(文昌院)에 입장할 때 보여주면 펀칭을 해준다. 



소주가(蘇州街)


이화원북궁문(颐和园北宫门)을 지나면 바로 소주가(蘇州街)를 나온다. 후호(後湖)의 중심에 있는 소주가는 건륭제 때 건설되었다. 강남 수상도시의 시장을 모방하면서도 베이징 시장의 특색을 겸비했으며, 한줄기의 물길을 따라 양안에 2갈래의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총길이 약 300m, 60여개의 각종 점포가 줄지어 있다. 황제와 황후가 경치를 감상하던 장소일 뿐, 실제로 상거래 활동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1860년 영불 연합군의 침입으로 전소되었는데, 뒷날 서태후가 이화원을 재건할 때 소주가는 미처 보수하지 못했으며 지금의 모습은 1987~1990년에 재건한 것이다. 현재 이곳의 상점가에는 관광객을 위한 점포가 들어서서 청나라 때의 동전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4대부주(四大部洲)


소주가(蘇州街)가 지나 만수산(万寿山)으로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것이 4대부주(四大部洲)인데 만수산 후산의 증축선 위에 자리한 대규모의 티베트 불교 건축군이다. 티베트 삼마야사(三摩耶寺)를 모방한 이 건축군에는 티베트풍과 한족풍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처음 지어졌을 때의 건축군은 1860년  영불 연합군의 방화로 불탔고, 현존 건축군은 나중에 재건되었다. 주요 건물인 향암종인지각(香岩宗印之閣)에는 삼세 불상이 봉안되어 있고 주변에는 불교 세계를 상징하는 4대부주인 동승신주(東勝身洲)·남섬부주(南贍部洲)·서우화주(西牛貨洲)·북구노주(北俱盧洲)가 세워져 있으며, 각 부주의 양쪽에는 소주(小洲)가 하나씩 건축되어 8개 소부주라 한다. 전각의 남동·남서·북동·북서 모퉁이에는 백·흑·녹·홍 4색의 라마탑이 있으며 4범탑(四梵塔)이라 부르는데 이는 불교의 4지(四智)를 의미한다. 기타 부속 건물로 일광대(日光臺)와 월광대(月光臺) 등이 있다.



불향각(佛香閣)


4대부주(四大部洲)을 지나면 불향각(佛香閣)으로 향하게 된다. 만수산 전산 비탈 높이 20m에 기단을 쌓아 만든 41m 높이의 8각 4중 처마의 3층 목탑으로 이화원 내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자 이화원 전경을 담은 사진에서 빼놓지 않고 나오는 건물이다. 강남의 황학루를 본떠서 지었는데, 1750년 건륭제는 이 자리에 9층탑을 지으려고 했다가 원안을 수정해 8층탑으로 변경했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때 영불 연합군의 방화로 소실되었다가 1891년  서태후에 의해 3층으로 중건되었다. 불향각 1층에는 나무대비관세음보살(南無大悲觀世音菩薩)이 봉안되어 있는데, 1574년에 제작되었으며 높이 5m, 12개의 얼굴, 36개의 눈, 24개의 팔이 달린 불상이 999개의 꽃잎이 조각된 연화보좌 위에서 있다. 지금의 불향각과 불상은 문화대혁명때 홍위병들이 훼손한 것을 복원한 것이다. 불향각(佛香閣)에서 내려다보는 곤명호(昆明湖) 풍경은 절경중 절경이다. 그래서 불향각(佛香閣)은 이화원 관광에서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중요 포인트이다. 단 불향각(佛香閣)을 구경하려면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통합요금 티켓 소지지는 그냥 패스)



전륜장(轉輪藏)


전륜장은 불향각 동쪽 산비탈에 보운각과 대칭으로 마주 서 있는 종교 건축이다. 가운데는 3층의 정전이고, 양쪽은 각각 장경정(藏經亭)과 연결되어 있다. 정자 안에는 전경목탑(轉經木塔)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티베트 불교의 법기(法器)를 건축으로 상징화한 것이다. 정전 앞에는 건륭제의 어필로 된 '만수산곤명호비(萬壽山昆明湖碑)'가 세워져 있다. 비문 뒷면에는 당시 곤명호를 파고 베이징의 수리를 조절한 상황에 대해 적혀 있다



보운각(寶雲閣)


배운전 서편에 있으며, 겉보기에는 일반적인 정자와 다르지 않지만 모든 부재가 나무를 모방한 청동으로 지어져 일명 '동정(銅亭)'이라고도 불린다. 1755년(건륭 20) 청동으로 목구조물의 부재를 모방해 만들어졌다. 높이 7.55m, 무게 207t에 달하며, 티베트 불교의 라마승들이 이곳에서 황제와 황후를 위해 기도와 염불을 하던 장소였다.



불향각(佛香閣)에서 배운전(排雲殿) 가는길


지그재그로 가파른 계단으로 되어 있다.



배운전(排雲殿)


불향각(佛香閣)에서 가파른 계단을 따라 곤명호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것이 배운전(排雲殿)이다.  만수산 남쪽 중턱에 위치한 정면 7칸, 측면 5칸의 전각으로 원래는 명나라 때 홍치제가 세운 대보은연수사(大報恩延壽寺)의 대웅전이 있던 자리였다. 서태후가 이곳에서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기도 했다. 명칭은 '신선이 구름을 헤치고 나오니(神仙排雲出) 보이는 것은 금과 은으로 된 대였노라(但見金銀臺)'는 시구에서 비롯되었다. 자소전(紫霄殿)·옥화전(玉華殿)·방휘전(芳輝殿)·운금전(雲錦殿)의 4개 배전이 딸려 있으며 배운전 뒤쪽에는 덕휘전(德輝殿)이 있다.



운휘옥우 패루(云辉玉宇牌楼)


배운전(排雲殿)을 자나 곤명호(昆明湖)에 다다르면 마주 대하게 되는 것이 운휘옥우 패루(云辉玉宇牌楼)이다. 지붕부분은 황색유리기와이며, 금룡과 새채화로 장식되어 있어 등급이 높은 건축임을 알수 있다.



장랑(長廊)


운휘옥우 패루(云辉玉宇牌楼)에서 동편으로 호숫가를 따라 장랑(長廊)이 길게 늘어서 있다. 장랑(長廊)은 이화원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붐비는 회랑이다. 이곳은 건륭제시기에 세워졌으며 780m에 달하는 긴회랑이다. 중국에서 가장 긴 복도 건축물로도 유명하며 이곳을 걸을 때는 삼국지, 서유기 등과 같은 유명한 작품에 나타난명장면과 산수, 전설 등을 주제로 한 14,000폭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형형색색의 그림들로 그려진 곳으로 중국정원 내 가장 아름다운 회랑으로 불린다. 하지만 수많은 인파들로 극도로 혼잡해 제대로 장랑(長廊)을 감상하기가 힘들다. 



인수전(仁壽殿)


장랑(長廊)을 지나 다음번으로 행하는 곳은 인수전(仁壽殿). 1750년에 지어질 때는 근정전(勤政殿)이었다가 광서제 때 재건하면서 인수전으로 개칭했으며, 동향으로 된 정면 9칸의 전각이다. 서태후와 광서제는 이곳에서 정무를 돌보며 외국 사절과 그들의 부인을 접견했다. 인수전 앞에는 건륭제 때 청동으로 주조한 봉황, 용, 항아리, 향로가 놓여 있는데, 중국 고대의 예제에 따르면 용은 제왕을 상징하므로 가운데에 놓여야 하지만, 서태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부터는 용을 밀어내고 봉황을 가운데에 놓아 황제보다 우월한 서태후의 권력을 과시했다. 



덕화원(德和園)


인수전(仁壽殿)바로 옆에는 덕화원(德和園)이 위치해 있다. 면적 3,000여 m²에 3개의 정원으로 구성된 덕화원은 대희루(大戱樓), 이락전(頤樂殿), 경선당(慶善堂) 등의 건물로 이루어진 경극 관람용 건축군이다. 대희루(大戱樓)는 1891년에 착공해 4년만에 완공되었으며 높이 21m, 아랫부분 무대의 너비 17m, 상 중 하 3층의 무대로 되어 있다. 이 3층의 무대는 동시에 공연을 할 수 있고, 무대와 무대 사이에는 '천정(天井)'을 설치하여 서로 통하게 했으며, 아래층 무대 밑에는 '지정(地井)'을 설치해 귀신과 신선에 대한 극을 공연할 때 이용했다. 이밖에 2층으로 된 분장루가 무대와 이어져 있어 배우들의 분장실로 제공되었다. 대희루가 완공된 뒤 서태후는 당대의 유명 경극 배우들을 불러들여 공연하게 해 경극의 발달을 가져와, 이곳을 경극의 요람이라고도 한다. 대희루와 마주한 이락전(頤樂殿)은 서태후가 경극을 관람하던 장소이다. 덕화원의 가장 안쪽에 있는 경선당(慶善堂)은 정면 5칸의 전각으로 좌우에 각각 곁채가 하나씩 있다. 서태후가 극을 관람하다가 잠깐씩 휴식을 취하던 곳이었다. 이곳은 유료입장.



지춘정(知春亭)


덕화원(德和園)을 구경하고 다시 곤명호(昆明湖) 쪽으로 나오면 지춘정(知春亭)이라는 정자가 나타난다. 지춘정(知春亭)은 은 이화원 곤명호(昆明湖) 동안 호수가의 작은 섬에 위치한 정자로, 겹처마 사각 찬첨정형식이다. 섬은 작은 나무다리로 호수가와 연결되어 있다. 정자 인근에 수양버들이 심어져 있어, 봄이 되면 경치가 뛰어나다. 지춘정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볼거리일뿐 아니라 그곳에서 보는 이화원 경치도 빼어나다.



문창원(文昌院)


지춘정(知春亭)을 보고 그 다음으로 향한 곳은 문창원(文昌院). 이화원 동쪽에 커다란 부속건물 한채가 자리잡고 있는데 바로 중국고전원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최고급의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는 문창원(文昌院)이다. 전시관은 황실의 정원이었던 이화원에 자리한 만큼, 진열 전시하고 있는 예술품들은 모두 당시의 최고급 예술품을 대표한다. 이곳은 유료입장



문창각(文昌閣)


문창원(文昌院)을 구경하고 다시 곤명호(昆明湖)쪽으로 나오면 지춘정(知春亭)바로 앞에 큰 성문같은 건축물이 있는데 그것이 문창각(文昌閣). 문창각(文昌閣)은 곤명호의 동제 북단에 위치한 성관(城館)식 건축이다. 관문 위에 십자형 2층 누각이 있고 누각 안에는 문창제군(文昌帝君)의 동상이 안치되어 있다. 도교에서 공명과 복록을 주관하는 문창성(文昌星)에서 명칭을 따왔는데, 만수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숙운첨(宿雲檐) 내에 안치한 무성(武聖) 관제(關帝)상과 대칭을 이루어 문무보정(文武輔政)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곽여정(廓如亭)


문창각(文昌閣)에서 곤명호(昆明湖)호수가를 따라 쭉 걷다보면 곽여정(廓如亭)과 십칠공교(十七孔桥)가 나온다. 곽여정(廓如亭)은 팔방정(八方亭)이라고도 부르며 17공교 동단에 위치한 8각 2중 처마의 정자이다. 안팎으로 24개의 원기둥과 16개의 사각기둥이 있다. 면적이 130여 km²에 달해 중국의 정자 건축 중에서는 가장 크다.



십칠공교(十七孔桥)


곽여정(廓如亭)앞에는 이화원에 내에서 가장 긴 다리인 십칠공교(十七孔桥)가 위치해 있다.  돌로만든 석교로 반대편에 자리한 인공섬인 남호도(南湖岛)를 연결하는 다리이다.동쪽으로는 중국의 정자 건축 중에서도 가장 큰 곽여정(廓􃥴􂝪)이 자리하고 있다. 십칠공교는 150m 길이의 아치형의 돌다리로 다리 중간에 17개의 동그란 구멍이 있어 십칠공교(十七孔桥)라 불린다. 



남호도(南湖岛)


남호도의 이름은 곤명호 남부에 위치한다하여 지어졌다. 섬의 평면모습은 타원형에 가까우며, 동서 넓이는 120미터, 남북길이는 105미터다. 호수가는 큰돌로 쌓아올려 조성되어 있으며, 청백석 돌난간이 에워싸고 있다.



곤명호(昆明湖)와 유람선


이화원 곤명호(昆明湖)는 항주 서호(西湖)를 교묘하게 본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호의 소제(蘇堤)와 백제(白堤)를 본따 서제(西堤)라는 이름의 제방을 만들고 지춘정(知春亭), 곽여정(廓如亭) 등의 정자를 세웠다. 곤명호 주변의 한껏 늘어진 능수버들과 이 늘어진 풍광은 마치 항주 서호의 축소판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편 남호도(南湖岛)에서 석방(石舫)까지는 유람선이 오고 가는데 이 유람선을 타면 곤명호(昆明湖)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면서 석방(石舫)까지 쉽게 되돌아 나올 수 있다. 



석방(石舫)


유람선을 타고 와 내리면 바로 앞에 석방(石舫)이 위치하고 있다. 장랑의 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석방(石舫)은 원내에서 제일 유명한 수상건축물이다. 석방은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채색유리의 창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건륭제가 만든 대리석의 배에 서태후가 2층의 목조 건물을 증축하여만든 것으로 이화원의 명물이다. 과거 달빛을 감상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이곳에서 연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화원북궁문(颐和园北宫门)으로 나감


석방(石舫)을 구경한 후에는 만수산(万寿山) 뒷편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소주가(蘇州街)를 다시 만나게 되고 소주가(蘇州街)를 지나면 처음에 들어왔던 이화원북궁문(颐和园北宫门)으로 나오게 된다. 이로서 이화원 관광을 마치게 된다. 이화원(颐和园)은 워낙 넓어 왠만큼 돌아보려고 하면 반나절이 후딱 지나간다. 빠르게 핵심포인트만 보는데도 2-3시간을 족히 걸린다. 계속 걸어야 해서 나중엔 발이 좀 아플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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