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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운주사 : 천불천탑 신비의 사찰

想像 2024. 5. 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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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는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다.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그 많은 탑과 불상을 세웠는지, 10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비밀은 풀리지 않고 있다. 천불천탑의 설화와 더불어 언제, 누가 이 절을 지었는지 분명치 않은 점이 운주사를 더 신비롭게 한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전남대학교 박물관이 발굴조사 네 번, 학술조사 두 번을 실시한 결과를 보면 운주사는 창건 시기가 대략 11세기 초로 추정되며, 세 번의 중창을 거쳐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 초에 폐사됐다. 

본래 대웅전은 계곡 입구 좌측에 있었으며 약 300년 동안 폐사된 채 방치됐다가 1918년 박윤동(朴潤東) 군수 등 16명의 시주로 중건됐다. 현재의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은 모두 1990년대 이후에 지어졌다. 

 

문헌상으로는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최초의 기록이 보인다. <동국여지승람> 권 40, '능성현' 조에 "천불산(千佛山)은 현의 서쪽 25리에 있다"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으니 좌우의 산등성이에 있는 석불과 석탑이 각각 1천 개이다. 또 석실(石室) 둘이 있어 석불과 서로 등지고 앉았다"라고 했다.

실제로 운주사에 각각 천 개의 석불과 석탑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942년 조사 때 석불 213구와 석탑 22기가 있었다고 한 것을 보면, 실제로 천 기의 석탑과 천 구의 석불이 있었다기보다는 많은 숫자의 탑과 불상에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게 더 합리적일 것 같다.

전남대 박물관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탑과 불상들은 한꺼번에 만들어졌다기보다 중창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탑과 석불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운주사 천불천탑의 진실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누구는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을 바로잡기 위해 천불천탑을 세웠다고 하고, 누구는 왕이 날 명당자리라서 그 혈을 누르느라 천불천탑을 세웠다고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운주사(運舟寺)를 '피안(彼岸)으로 가는 배'로 여긴다. 그럴 경우 석탑은 돛대가 되고 석불은 사공이 된다. 누워 있는 부처가 일어서면 미륵 세상이 온다고도 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도 한다. 

 

운주사 입구에 서면 가장 먼저 '파격'(破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웅장한 산세도 없고 장엄한 물소리도 없는 그저 평범한 골짜기에 터를 잡았다. 오래된 사찰이면서면서도 절 입구에는 부도며 탑비 같은 유적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대웅전, 일주문 등 모든 건물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것들이고 1000년의 역사를 입증할 수 있는 것들은 오직 골짜기와 주변 능선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석탑과 석불뿐이다.

석탑은 전통적인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고 예술적인 완성도도 높지 않다. 대다수 사찰은 대웅전 앞뜰에 한두 기의 석탑이 있는 것이 고작인데, 운주사는 모두 21기의 석탑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석불들은 또 어떤가? 골짜기 이곳저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90여 구의 석불들은 그 엉성한 솜씨며, 여기저기 깨지고 부서진 모습들이 차마 부처님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다.

 

그러나 '파격'(破格) 그 자체인 운주사의 석탑과 석불에서 운주사만의 미학(美學)을 느끼게 된다. 

 

 

 

운주사 전체 안내도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속세와 불계를 가르는 일주문(一柱門)을 지나면 숲길이 이어진다. 숲길 왼편으로는 석불들이 줄지어 있는데 이 석불들은 매년 개최되는 '화순 운주 문화 축제'때마다 하나씩 만든 석불이라고 한다.

 

 

숲길을 지나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석탑은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和順 雲住寺 九層石塔)이다.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은 전라남도 화순군 운주사에 있는, 고려 시대의 구층석탑이다. 1984년 11월 30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796호로 지정되었다. 지금까지 운주사에 남아 있는 탑 12개 가운데 하나로 입구에 서 있다. 5층 석탑과 함께 높이가 가장 높다. 지붕돌 밑면에 받침을 생략한 모습이나 각 면에 새긴 장식이 특이한 탑이다.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 바로 맞은 편 산기슭에는 표정도 다르고 자세도 다르고 크기도 다른 석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 다음에는 화순 운주사 칠층석탑(和順 雲住寺 七層石塔) 2기가 나타난다. 상륜부는 유실되었지만 비교적 단정하고 소박한 신라 전형양식을 계승한 석탑이다.  제작시기는 고려시대이다.

 

 

화순 운주사 칠층석탑(和順 雲住寺 七層石塔) 뒤로는 광배를 갖춘 불상이 자리하고 있다.

 

 

불상을 지나 조금 더 가니 화순 운주사 석조 불감(和順 雲住寺 石造 佛龕)과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和順 雲住寺 圓形 多層石塔)가 나온다.

 

화순 운주사 석조불감은 운주사 경내의 남북으로 형성된 길쭉한 골짜기 가운데 평지에 자리한 석조 불감이다.팔작지붕 형태의 돌집 안에 석불좌상 두 분이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대고 앉았다. 불상을 모시는 석조 불감으로 국내에서는 극히 드문 목조 건축 형식을 띠고 있다. 특히 목조 건축 형식을 모방한 팔작지붕 형태의 돌집 안에 벽을 사이에 두고 석불 좌상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 있어 극히 드문 예로 미술사적인 의미가 크다. 1984년 보물 제797호로 지정되었다.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은 운주사 석조 불감의 북쪽 바로 뒤에 위치한 원형 석탑이다. 보물 제798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관련항목 보기은 구성 형식이나 모습에서 우리나라에서는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원형 탑의 형식을 보여 준다. 기단부의 지대석과 탑신부의 탑신과 옥개석에 이르기까지 모두 원형이다.

 

 

운주사의  대웅전, 지장전, 법종각 등 여러 건물들은 모두 1990년대 이후에 지어졌다고 한다.

 

 

운주사 경내을 둘러 보고는 운주사하면 먼저 떠올리게 되는 와불(臥佛)을 보기 위해 가파른 계단을 올라 산으로 향한다. 가는 중간에 경사진 바위위에 5층석탑과 7층석탑이 서 있다.

 

 

석탑을 지나 좀 더 올라가니 흔히 와불(臥佛)이라고 부르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3호 화순 운주사 와형석조여래불(和順雲住寺臥形石造如來佛)가 마침내 보인다.

 

전해오는 설화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하룻날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고자 했으나 공사가 끝나갈 무렵 일하기 싫어한 동자승이 "꼬끼오" 하고 닭 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수장이들이 모두 날이 샌 줄 알고 하늘로 가버려 결국 와불로 남게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누운 모습의 불상은 유례가 드물기 때문에 일설에는 먼저 조각을 하고 일으켜 세우려다 실패하여 현재와 같이 누워있는 모습이 됐다고 전하지만 바위 모습으로 보면 처음부터 입상을 세우려고 계획한 것이 아니라 넓은 암반에 불상을 조각한 것뿐이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온갖 신비로운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이 미완의 불상은 어느덧 운주사 최고의 석불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와불을 보고는 서쪽 능선을 따라 다시 운주사 입구쪽으로 내려간다. 가는 길에 일곱개의 잘 다듬은 동그란 바위가 나타나는데 북두칠성과 똑같은 모양으로 놓여 있는 칠성바위라고 한다. 어떻게 저렇게 정교하게 돌을 깍을 수 있었는지 정말 신비스럽다.

 

 

칠성바위를 지나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는데 산등성이 바위마다 석탑이 서 있는 것이 너무 신비롭고 특이했다.

 

 

"화순 운주사는 지금까지 보아온 우리나라 사찰들과는 느낌이 너무 다르다. 정말 신비스럽다. 꼭 한번 가봐야 할 사찰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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