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은 그 자체로도 긴 생명력을 갖지만, 영화 등 영상물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어 재조명되고, 새로운 이미지를 얻어 꾸준히 사랑 받기도 합니다. 영화의 알맞은 위치에 적절하게, 혹은 절묘하게 삽입되어 천 번의 대사보다 깊은 인상을 준 '영화로 기억되는 노래들', 이번엔 영화에 삽입된 명곡 10곡을 소개합니다.
01.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 :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 - Por una Cabeza
앞 못 보는 알 파치노가 능란하게 탱고를 추는 장면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다. 이 영화 이후로 국내에선 '쉬크'한 탱고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폭발했다. 적어도 탱고 댄스라이브에 관한 한 대명사급이 됐다.
02. 사랑과 영혼(Ghost) : 라이처스 브라더스(The Righteous Brothers) - Unchained Melody
수많은 패러디를 양성한, 웃통을 벗고 있는 근육질의 남자(패트릭 스웨이지)와 하얀색의 천 조각 하나 걸치고 있는 여자(데미 무어)가 도자기를 함께 빚는 장면에 삽입된 곡이다. 'Oh, my love, my darling...'으로 시작하는 끈적끈적한 도입부는 백허그를 하는 남녀가 진흙을 주물럭거리는 장면과 합쳐져 사랑스럽고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 남자가 죽어 영혼이 되어서도 끝까지 여자를 사랑한다는 감동적인 스토리의 영화지만, 이 장면만은 뭔가, 엄청 야했다.
03. 중경삼림(重慶森林) : 마마스 앤 파파스(The Mamas & The Papas) - California Dreamin'
중경삼림은 두 주인공,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면 나는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경찰223(금성무)과 '기억이 통조림이라면 영원히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경찰633(양조위)의 이야기다. 왕가위 감독 특유의 고동빛 영상미나 정지화면, 저속촬영 같은 탁월한 촬영기법도 좋았지만 결국 대중을 자극한건 홍콩영화식 감성을 불어넣는 건 삽입곡 'California Dreamin'이었다.
04. 레옹(Leon) : 스팅(Sting) - Shape of my heart
스팅의 곡 'Shape of my heart'와 뤽 베송의 영화 < 레옹 >은 뗄 수 없는 사이처럼 붙어 다닌다. 액션과 멜로로 가득한 130여분이 지나고 올라오는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잔잔하게 몰아치는 노래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가 거둔 세계적인 성공과 함께 스팅의 곡도 상당히 유명해졌으며 지금까지도 여러 아티스트들에 의해 샘플링, 커버되거나 다른 분야의 문화예술 작품에서 다수 사용되고 있다.
05.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 : 린든 데이비드 홀(Lynden David Hall) - All you need is love (The Beatles Cover)
결혼식만큼이나 사랑의 찬가가 어울리는 곳이 또 있을까. 영화 속에서 새로 태어난 이 명곡에는 무조건적인 축복의 기운이 가득하다. 기쁨에 찬 오르간 소리를 시작으로, “사랑, 사랑,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들. 린든 데이비드 홀의 목소리가 그들을 이끌고, 뒤이어 현악 4중주, 트럼펫, 플루트, 트롬본, 색소폰 순으로 악기들이 등장한다. 끝내는 일렉트릭 기타의 솔로까지 합쳐져 결국 하나의 풍성한 덩어리를 이룬다. 옴니버스 영화인 < 러브 액츄얼리 >에서 각각의 악기는 각각의 에피소드를 상징한다. 서로 다른 악기가 하나의 모티브를 연주한 뒤 마지막으로 합쳐질 때, 사실은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임을 음악으로 보여주고 있다
06. 브리짓 존스의 일기(Bridget Jones's Diary) : 제이미 오닐(Jamie O'Neal) - All by myself
오~빠 만세로 알려진 제이미 오닐(Jamie O'Neal)의 곡. 주인공 브리짓은 솔로임을 한탄하며 '더 이상은 혼자 있고 싶지 않아'를 격정적으로 립싱크 한다. 헝클어진 머리와 땡땡이 파자마, 술 담배, 과격한 동작 등을 통해 브리짓의 노처녀 캐릭터를 강조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후 솔로탈출을 결심하고 적어나가는 자기관리 일기나, 연애를 통해 변해가는 과정은 로코 영화를 이끌어가는 재미다.
07. 아비정전(阿飛正傳) : 자비에 쿠거 오케스트라 (Xavier Cugat Orchestra) - Maria Elena
극중 아비(장국영)가 루루(유가령)와 밤을 보낸 뒤 흰 런닝과 트렁크 차림으로 춤추는 장면에 흐른다. 충격적 스토리만큼이나 90년대 후반, 신선한 스타일의 가요에 목말랐던 가수 제작자 그리고 대중들을 라틴음악으로 인도하게 한 트렌드세터로도 기억된다. 구체적으로 룸바, 맘보 열풍이었고 지미 도시와 로스 인디오스 타바할라스의 것과는 전혀 다른 이 버전은 영화속 장국영을 기억하는 영구 사운드트랙으로 남았다.
8. 접속 : 사라 본(Sarah Vaughan) - A lover's concerto
많은 라디오 피디들은 영화 < 접속 >이 라디오 프로듀서를 잘못 묘사한 대표적인 영화라고 얘기하지만 마지막 장면에 흐른 사라 본의 「A lover's concerto」에 대해서만큼은 완벽한 선곡이라고 찬사를 보낸다.
감독 장윤현은 1990년대 후반, PC 통신을 통한 신세대의 새로운 사랑 방식을 차분한 대사와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아냈다. 푸른 모니터를 통해서만 존재를 확인하던 두 주인공이 엇갈린 기회를 극복하고 마침내 대면할 때 흐르던 사라 본의 「A lover's concerto」는 두 주인공이 사랑의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찾은 환희와 기쁨을 증폭한다.
9. 쉬리 : 캐롤 키드(Carol Kidd) - When I dream
45년생의 나이든, 별로 유명하지 않은 스코틀랜드 재즈가수 캐럴 키드가 부른 "When I dream"이 지금도 우리 기억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모든 게 1999년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로 대대적으로 선전되고 <타이타닉>을 넘는 흥행 대성공을 창출한 <쉬리> 덕이었다. 지금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의 감동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이 원 펀치로 캐럴 키드는 내한무대를 갖을 만큼 인지도의 폭발적 상승을 수확했다.
10. 친구 : 로버트 파머(Robert Palmer) - Bad case of loving you
1980년대 디스코텍에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야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이 곡을 연상하겠지만, 이후 세대의 절대다수는 영화 < 친구 >의 '달리는' 장면을 통해 「Bad case of loving you」를 기억한다. 사실 명장면이랄 것도 없었다. 배우들은 달렸고, 다만 음악이 삽입되었을 뿐이니까. 가사가 영화 줄거리와 맞지도 않았지만, 질주의 모습과 곡의 분위기가 묘하게 어울렸다는 점이 이 신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히지 않는 순간으로 만들었다. 음악이 가지는 분위기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