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기타작곡가

알반 베르크 : 바이올린 협주곡 "어느 천사를 추억하며" [Anne-Sophie Mutter · Chicago Symphony Orchestra · James Levine]

想像 2024. 10. 2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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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olin Concerto "To the Memory of an Angel"

Alban Berg, 1885~1935


Anne-Sophie Mutter · Chicago Symphony Orchestra · James Levine [Berg: Violin Concerto / Rihm: Time Chant (1991/92)] ℗ 1992 Deutsche Grammophon GmbH, Berlin

 

 

 

▒ 알반 베르크(Alban Berg)는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 안톤 베베른(Anton von Webern)과 더불어 ‘제2 빈 악파’로 분류되는 작곡가이다. 베르크는 쇤베르크에게 사사한 뒤 ‘12음 기법’에 특유의 낭만성을 가미한 작품을 썼는데,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가 남긴 기악곡들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이 곡을 두고 ‘20세기에 작곡된 가장 아름다운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까지 칭송할 정도이다.
 
어지간한 음악 애호가들도 난해하게 여기는 ‘12음 기법’으로 작곡된 이 협주곡이 그토록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이 곡이 기본적으로 음렬 음악이면서도 민요와 코랄 선율을 차용하는 등 조성음악적 색채가 짙고, ‘어느 천사를 추억하며’라는 부제에 기초하여 다분히 표제음악적인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이 협주곡의 작곡 배경에는 아주 특별한 사연이 자리하고 있다.
 
베르크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1935년 여름 오스트리아 남부 캐른텐(카린시아) 지방에 자리한 뵈르트 호숫가의 별장에서 작곡되었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넓은 이 호수 주위에는 한가로운 휴양지들이 산재해 있으며, 그중에는 요하네스 브람스나 구스타프 말러가 머물렀던 마을도 있다. 특히 브람스는 이 호숫가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며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Op.77)]를 쓰기도 했다.
 
베르크가 바이올린 협주곡을 쓰게 된 것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루이스 크라스너의 위촉 때문이었다. 당시 32세였던 크라스너는 이미 상당한 성공을 거둔 연주가였고, 베르크 외에도 알프레도 카셀라(1928), 아르놀트 쇤베르크(1940)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초연한 인물이기도 하다.
 
크라스너의 의뢰를 받았을 때 베르크는 한창 오페라 [룰루(Lulu)]를 작업 중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수락을 망설였다. 하지만 크라스너가 그의 오페라 [보체크(Wozzeck)]와 [서정 모음곡(Lyric Suite)]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하면서 1500달러라는 후한 보수를 제안하자 그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나치 집권 이후 그의 전위적인 작품들이 거부당하면서 겪고 있는 재정난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크라스너의 제안을 받아들인 베르크는 그 해 3월 [룰루]의 작업을 중단했고, [바이올린 협주곡]의 구상에 착수했다.
 
그런데 이 협주곡은 ‘마농 그로피우스’라는 소녀의 죽음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소녀는 구스타프 말러의 아내였던 알마 쉰들러가 재혼해서 낳은 딸이었다. 말러의 만년에 알마는 젊은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내연의 관계를 맺었다. 아내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말러는 큰 충격을 받았고, 그것이 일정 부분 그의 죽음을 재촉했다는 사실은 이제 널리 알려져 있다.
 
한편 알마는 말러의 사후 그로피우스와 재혼했고, 그와의 사이에서 딸을 하나 낳았다. 알마와 그로피우스의 딸인 마농은 동물을 좋아하는 아리따운 소녀로 성장했고, 지인들은 물론 빈의 문인들과 예술인들에게도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여배우를 지망했던 그녀는 베네치아 여행 중에 발병한 척수성 소아마비로 인하여 1935년 4월 22일, 겨우 18세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자식이 없었던 베르크 부부의 마농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부인 헬레네는 침대 머리맡에 그 아이의 사진을 놓아둘 정도였다. 마치 친딸처럼 아꼈던 마농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부부의 충격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고, 마농의 장례식을 치른 얼마 후 베르크는 자신의 신작으로 그녀를 기리는 한편 알마를 위로하기로 결정했다. 즉 그는 새로 착수한 바이올린 협주곡의 성격을 ‘마농을 위한 진혼곡’으로 변경했던 것이다. 그 결과 이 협주곡에는 ‘어느 천사를 추억하며’라는 부제가 붙었다.
 
베르크는 뵈르트 호숫가에서 그로서는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작업을 진척시켜 1935년 8월에 작품을 완성시켰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로부터 4개월 후, 크리스마스이브에 베르크 역시 패혈증으로 50세의 생애를 마감했다. 결국 이 협주곡은 마농을 위한 진혼곡이자 베르크 자신을 위한 진혼곡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작품은 그의 사후인 1936년 4월 1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음악궁전’에서 크라스너의 독주로 초연되었다. 지휘는 원래 베르크의 친구이자 동지였던 안톤 베베른이 맡기로 돼있었으나,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을 당한 충격에서 미처 헤어 나오지 못했던 그는 도저히 무대에 오를 수가 없었다. 결국 지휘봉은 독일에서 급히 호출된 헤르만 셰르헨에게로 넘어갔는데, 그는 전날 밤 11시에야 악보를 처음 봤고 다음날 아침 겨우 30분 정도의 리허설만 가진 채 공연을 치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협주곡은 역시 ‘12음 기법’으로 작곡되었는데, 다만 여기서 베르크는 장3화음과 단3화음을 포함하는 음렬을 사용했다. 덕분에 이 협주곡은 여타의 음렬 음악 작품들과는 달리 조성음악적 색채를 띠며 동시에 낭만적 향취를 짙게 풍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협주곡은 캐른텐 지방의 민요 선율과 바흐의 코랄 선율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현대적 기법과 전통적 소재를 융화시킨 명작으로 각광받고 있다.
 
작품은 두 개의 악장으로 구성돼있는데, 보통 제1악장은 마농의 생전 모습을, 제2악장은 마농의 고통과 죽음을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또 각 악장은 다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베르크가 스승 쇤베르크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그 네 개의 부분은 각각 전주곡(안단테), 스케르초(알레그레토), 카덴차(알레그로), 코랄 변주곡(아다지오)의 성격을 띤다.

 

 

제1악장 Andante – Allegretto

안단테와 알레그레토의 2부로 구성돼있다. 먼저 안단테 부분은 ‘마농의 성격과 모습’을 그린 것으로, 3부(A-B-A) 형식을 취하고 있다. 클라리넷과 하프가 기초 음렬을 나열하는 적막한 도입부에 이어 개방현을 연주하며 등장한 독주 바이올린이 주도적으로 활약하는데, 부드러운 양단부와 운 포코 그라치오소의 중간부가 우하하고 매력적인 소녀의 이미지를 암시한다

 

알레그레토 부분은 ‘마농의 춤’을 그린 것으로, 두 개의 트리오가 대칭적으로 삽입된 스케르초 형식이다. 주부에서는 각각 기초 음렬에서 도출된 스케르초 풍 악상, 빈 풍 악상, 시골풍 악상이 나타나며, 두 개의 트리오는 각각 힘찬 악상과 온화한 악상으로 대비를 이룬다. 그리고 스트레타 풍의 짧은 코다로 진입하기에 앞서 호른과 트럼펫에서 캐른텐 지방의 민요 ‘자두나무 위의 새’의 목가풍 선율이 ‘마치 요들처럼’ 울리며 나타난다.

 

 

 

제2악장 Allegro – Adagio

알레그로와 아다지오의 2부로 구성돼있다. 먼저 알레그로 부분은 ‘마농의 고통’을 나타낸 것으로, 역시 3부 형식을 취하고 있다. 투티에 의한 격렬한 불협화음으로 출발하여 독주 바이올린에 의한 카덴차 풍 흐름이 나타나고, 부점 리듬을 특징으로 하는 동기의 집요한 반복을 통해서 숨 막히는 긴박감을 자아내는 부분이 이어진다. 조용한 중간부에서는 앞선 악장 알레그레토 부분의 트리오 악상이 활용되고, 다시 격렬한 불협화음이 나타난 후 음악은 절규하는 듯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이후 분위기가 차츰 가라앉은 다음, 4음으로 이루어진 온음음계가 제시되면서 경건한 아다지오 부분으로 들어간다.

 

‘진혼곡’에 해당하는 아다지오 부분은 코랄 선율의 제시와 두 개의 변주, 캐른텐 지방 민요의 회상과 코다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인용된 코랄 선율은 바흐의 칸타타 제60번 "O Ewigkeit, du Donnerwort(오 영원이여, 그대 무서운 말이여)"의 마지막 곡 'Es ist genug(충분합니다)!'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코랄의 내용은 이 세상을 떠나는 이가 지상에서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갈구하고 천상에서의 영원한 평화를 기원하는 기도라 할 수 있다. 또 이 악장은 G♮음이 가미된 모호한 내림나장조 화음으로 마무리되는데, 그 과정에서 들려오는 호른의 폐쇄음은 베르크가 존경했던 말러의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 중 마지막 곡 ‘고별(Der Abschied)’의 말미에 나오는 가사 ‘영원히(Ewig)’를 떠올리게 한다.

 


발췌 : [네이버 지식백과] 알반 베르크, 바이올린 협주곡, ‘어느 천사를 추억하며’ [Alban Berg, Violin Concerto, ‘To the memory of an angel’] (클래식 명곡 명연주, 황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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