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ées de Pèlerinage : Première année, Swiss
Franz Liszt, 1811~1886
프란츠 리스트가 작곡한 피아노 솔로 작품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순례의 해(Années de Pèlerinage)]는 다양한 음악적 구조의 테두리 안에서 여행의 인상을 기록한 일종의 음악적 여행기이다.작품 전체를 완성시키는 데에 40년이 걸린 만큼 리스트는 오랜 세월 동안의 다양한 음악어법의 발전을 담아냈다. 특히 나이 든 리스트가 젊은 시절의 아름다웠던 순간을 회상하며 그려낸 작품이라는 점을 떠올려 볼 때, 여기서 배어 나오는 리스트의 농익은 낭만적 정서와 음악 속으로 녹아 든 자연스러운 비르투오시티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순례의 해]는 총 3권으로서 23개의 개별곡과 2권에 추가된 3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해, 스위스
1855년에 출판된 1권인 ‘첫 번째 해 스위스(Première année, Swiss)’는 리스트가 연인인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 함께 20여년 전 쯤 스위스를 여행했을 당시의 추억에 기초하고 있다. 1집에 있는 아홉 곡 가운데 폭풍우를 제외하고는 1835년부터 1836년 사이에 작곡하여 1842년 파리에서 출판한 피아노 작품집인 [나그네의 앨범](Album d’un voyageur)을 개정한 것이다. 첫 번째 해 스위스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빌헬름 텔 성당 (La chapelle de Guillaume Tell)
2. 발렌슈타트 호수에서 (Le lac de Wallenstadt)
3. 파스토랄 (Pastorale)
4. 샘가에서 (Au bord d’une source)
5. 폭풍우(Orage)
6. 오베르망의 골짜기 (Vallée d’Obermann)
7. 목가 (Églogue)
8. 향수 (Le mal du pays)
9. 제네바의 종 (Le cloches de Genève)
‘빌헬름 텔 성당’은 스위스의 민족적 영웅에 대한 명료한 묘사로서 혁명의 트럼펫 소리가 계곡을 뚫고 메아리쳐 나오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발렌슈타트 호수’에서는 바이런의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Childe Harold) 중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발렌슈타트 호숫가에서 우리는 오랜 동안 머물렀다. 거기에서 프란츠는 파도의 탄식과 노의 율동을 흉내 내는 음울한 선율을 내게 작곡해 주었는데, 아는 이것을 들을 때마다 흐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분명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의 정신을 계승한 작품이다. 리스트가 이 곡에 변형을 가하지 않고 개정판으로 옮겨왔음을 미루어 볼 때, 리스트가 얼마나 이 작품에 자신감을 가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파스토랄’은 매력적인 단순함이 인상적으로서 [나그네 앨범] 가운데 마을 축제를 약간 짧게 줄인 형태이다. 리스트는 랜틀러 템포의 중간 부분을 삭제함으로써 곡의 효과를 크게 향상시켰다. 이러한 민요 변형기법은 반세기 뒤에 등장한 벨라 버르톡을 예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샘가에서’는 이 순례의 해 첫 번째 해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서, 리스트는 쉴러의 시구 “차가움을 속삭이며 젊은 자연의 여신이 놀이를 시작한다”를 서두에 인용해 놓았다. 특히 개정판에서 양손을 교차시킴으로서 더욱 정묘한 효과를 불러일으켰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폭풍우’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산에서 몰아치는 폭풍우를 생생하게 묘사하여 베토벤의 [교향곡 6번]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의 훌륭한 연결 고리라고 말할 수 있다. 역시 바이런의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의 한 대목이 인용되었다.
‘오베르망의 골짜기’는 이 앨범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서, 바이런의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의 인용은 물론, 이 곡을 헌정한 소설가 에띠엔느 피베르 드세낭쿠르(Etienne Pivert de Sénancour)이 1804년에 출판한 서간체 소설 [오베르망]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지칠 줄 모르는 갈망으로 고뇌를 한다. 그는 진실한 인간성을 위해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자 하지만, 그는 자신을 엄습한 속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결국에는 부르주아로서의 생활을 따르고야 만다. 오베르망의 낭만적이고 감성적인 정신착란 증세는 “아, 말할 수 없는 감수성이여!”라고 외치는 부분에서 최고도에 이르는 한편, 감각적인 에스프레시보(espressivo)와 돌치시모(dolcisimo) 패시지뿐만 아니라 감정이 폭발하는 아파쇼나토(appasionato)에서음악적 표현력이 유독 돋보인다. 특히 이 곡의 분위기는 낭만적이고 음울하며 불길함과 체념이 번갈아 나온 뒤 마침내 정화된 분위기로 끝을 맺는데, 이것은 어떤 면에 있어서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을 예견하는 듯하다.
목가 또한 바이런의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로부터의 인용이 포함되어 있다. 시골 정경의 아름다움과 특이한 화성 변화는 이후 바그너가 자신의 악극에서 자연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종종 사용하기도 했다. 향수 또한 민요적인 수법에 의한 독창적인 분위기가 일품으로서, 나그네의 앨범 가운데 알프스의 선율적 꽃들에서 사용한 스위스 작곡가 후버(F.F.Huber, 1791~1863)의 ‘소몰이 노래’가 단편적으로 등장한다. 마지막 곡인 제네바의 종은 리스트가 자신의 장녀인 블랑딘에게 헌정한 것으로 바이런의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의 한 구절을 서두에 인용하고 있다: “나는 내 스스로 살지 못한 채, 내 주위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발췌 : [네이버 지식백과] 리스트, 순례의 해 [Liszt, Années de Pèlerinage] (클래식 명곡 명연주, 박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