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것은 단순히 작품이길 넘어 인생이 격정이 되어버린 사내의 이야기였다. [김현식 Ⅲ]은 삶의 고단함과 비애, 무명의 서러움, 열패감, 이별의 아픔 등이 뒤섞인 어두운 카오스였다. 하지만 언더그라운드의 저력을 마음껏 보여준 이 음반이 일반 대중에게까지 품을 확장한 순간, 그의 일대기에 ‘신화’, ‘가객’, ‘위대한 역사’라는 타이틀이 따라붙게 된 건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1990년 때 이른 죽음이 ‘요절 천재’라는 수식 하나를 더해준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만으로 김현식을 설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그의 보컬은 우리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었고, 작품은 컬트적 숭배를 낳았다. [김현식 Ⅲ]가 김현식의 정점이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음반의 진정한 힘은 매사에 무감각한 사람들에게조차 페이소스를 불어넣을 만한 김현식의 놀라운 절창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의도적으로, 혹은 여러 요인으로 인한 풍화로 인해 바뀌기 시작한 그의 목소리는 이 앨범에서 한 획을 긋게 된다. ‘빗속의 연가’의 처절한 블루스, ‘슬퍼하지 말아요’의 담백함, ‘비처럼 음악처럼’의 응축과 폭발, ‘눈 내리던 겨울밤’의 놀라운 절제미는 모두 한 앨범 안에서 구현된 것이었다. 한 음반 안에서, 심지어는 한 곡 안에서 팔색조처럼 강약과 감성을 조절하는 김현식의 보컬은 하나의 경이였다. 가끔은 숨소리조차 죽이게 했던 그의 보컬은 ‘오버/언더’의 기반을 허물었고, ‘주류’와 ‘비주류’라는 구획을 지웠다. 그 놀라운 보컬은 5집 ‘넋두리’, 그리고 유작 범의 ‘내 사랑 내 곁에’에서 자신을 죽음으로 내던진 고전적 예술혼의 전형으로 표출되게 된다
TRACK
Side A
1. 빗속의 연가
2. 가리워진 길
3. 슬퍼하지 말아요
4. 비오는 어느저녁
5. 우리 이제
6. 떠나가 버렸네
Side B
1. 비처럼 음악처럼
2. 그대와 단둘이서
3. 눈내리던 겨울밤
4. 쓸쓸한 오후
5. 우리 이제 (하모니카 연주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