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지식백과

“더 이상 헷갈리지 마세요” 세 명의 ‘슈트라우스 (Strauss)'

想像 2025. 1. 8. 15:10

'슈트라우스 (Strauss)’라는 성을 가진 유명한 작곡가가 세명이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와 '요한 슈트라우스 1세(Johann Strauss I)’ 그리고 '요한 슈프라우스 2세(Johann Strauss II)"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 와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부자지간이지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요한 슈트라우스’ 는 완전 아무 관계가 없고, 작풍도 전혀 다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언급하려면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빼놓고 설명할 수가 없다. 곡 제목을 몰랐더라도 처음을 들어보면 ‘아~ 저 음악!’하는 사람이 많을 거라 생각된다. 곡 제목은 바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입부만 들어도 대서사시가 펼쳐질 것이란 걸 직감할 수 있다.

 

 

또 하나, 웬만한 영화보다 훨씬 극적인 오페라 <살로메> 또한 그의 작품이다. 근친상간, 살인, 여자 성악가가 전라로 노래하고 연기하는 스트립쇼 장면, 세례 요한의 잘린 머리를 은쟁반에 담고 키스하는 장면 등. 음악은 훌륭한데 논란으로 가득한 장면이 하도 많다 보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는 27년간이나 상연을 금지했을 정도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오페라 <살로메> <장미의 기사> <엘렉트라>, 교향시 ‘돈 후왕’ ‘맥베스’ ‘죽음과 정화’ ‘영웅의 세계’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있는데, 일단 위의 두 음악만 들어도 알겠지만 상당히 드라마틱 하게 분위기를 쥐락펴락하는 음악을 쓴 작곡가이다.

사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음악만 들어도 영화의 한 장면이 펼쳐지는 것 같은 장르인 ’교향시‘ 분야의 근대 거장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원하는 분위기와 음악적 효과를 얻기 위해 귀신같이 적재적소에 악기를 배치하고 배합하는 특별한 관현악법 기술을 가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은 작곡과 학생들이 ’고급 오케스트레이션 기법‘, 내지는 ’관현악법‘을 익히기 위해서 꼭 공부해야 하는 코스로 꼽힌다.

그는 작곡가 뿐 아니라,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의 지휘자도 역임하며 음악 천재답게 승승장구했으나, 사실 그의 인생에 남은 하나의 큰 오점이 있다. 독일 나치에게 협력하여 세계대전 후 전범으로 몰렸던 일인데, 우여곡절 끝에 무죄가 선고되어 스위스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Johann Strauss I)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다소 심각한 곡을 썼다면,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그의 아들은 4분의 3박자의 신나는 왈츠를 썼던 사람들이라고 쉽게 설명할 수 있겠다.

 

작곡가 가문으로는 ’바흐‘의 가문도 유명하지만, 워낙 아빠 바흐의 아성이 커서 아들 바흐들은 그에 비해서는 좀 덜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슈트라우스 가문은 아버지와 아들이 경쟁하듯 활동을 하고 아들이 상당한 다작을 했기 때문에, 누가 좀 더 중요한지 가늠하기 어렵다. 따라서, 두 사람을 천천히 비교해보겠다.

‘왈츠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 1세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작곡가 슈트라우스 가문을 일으킨 요한 슈트라우스의 대표작에는 ‘라데츠키 행진곡’ 등이 있다.

 

 

사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인생은 꽤나 드라마틱 하다. 이렇게 가볍고 경쾌한 경음악을 쓴 부자지간에 나름의 아픈 가족사가 있는 것 자체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슈트라우스 1세는 일찍이 어머니를 병으로 여의고 아버지도 도나우 강물에 익사하여 (자살이었다는 말도 있다) 일찍 고아가 되는 초년의 불운을 겪었다. 다행히도 옆집 사람이 그를 거두어 재단사 견습생으로 키웠는데, 도제 수업을 받던 도중 마을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배우게 된다. 팔자는 속일 수가 없는 것인지, 그는 차차 음악에 두각을 나타내고 4중주단을 결성하여 인기를 얻게 된다. 그러자, 규모를 늘려 소규모 관현악단을 만들게 되고 바이올린을 켜며 직접 악단을 지휘하기까지 한다.

바이올린 주자가 연주하며 지휘하는 전통은, 궁정 무도회 곡 등 슈트라우스 곡을 주로 연주하며 ‘앙드레 류 오케스트라’ 등을 통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는 단원 모두 화려한 옷을 입고 환상적인 무대를 만들어주는데 특화된 오케스트라로, 심각한 음악보다는 즐겁고 경쾌한 슈트라우스 왈츠 연주에 안성맞춤이다.

 

이렇게 대중의 인기를 얻었지만, 그는 ‘야망의 남자’였다. 오스트리아 시민들은 경제난과 전쟁 때문에 당시 황실에 불만이 상당했는데, 슈트라우스 1세는 처세술에 능했던 것인지 황실 궁정 무도회 감독으로 부임하며 권력의 편을 드는 발언을 많이 하였다. 게다가 가족관계가 막장 드라마 수준이었는데, 자신은 성공적인 음악가였지만 자식들만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게 하려고 두드려 패기까지 했다는 얘기도 있다. 아름다운 음악과는 달리, 집에서는 상당히 고압적이고 가부장적이었던 그는 급기야 자식들과 부인을 버리고 무려 여섯 명의 혼외자를 낳는다. 이것이 드라마의 끝이 아니다.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그는 혼외자에게서 옮은 성홍열로 죽었다.

 

요한 슈프라우스 2세(Johann Strauss II)

우리가 ’왈츠의 왕‘이라고 알고 있는 슈트라우스가 바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이다. 부모님이 무력을 행사하면서 아무리 못하게 한다 해도, 무당과 음악가는 팔자에 있으면 하게 되는 듯하다. 아버지의 뜻은 은행원이었으나, 2세는 ’왈츠의 왕‘이 되어 아버지를 뛰어넘는 작곡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따져보면, 왈츠의 아버지라 불리는 1세보다는 2세가 왈츠 히트곡이 훨씬 더 많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도 그의 곡이다. 할아버지가 도나우 강에서 익사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고생을 하며 자수성가 음악가가 되었는데, 정작 그 손자인 슈트라우스 2세는 도나우강에 관한 곡으로 대히트를 한 걸 생각하면, 역시 참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를 뛰어넘는 인기를 구가하게 되자, 그는 왕성한 활동을 펼쳐나가며 500개가 넘는 왈츠와 폴카 등을 작곡했다. 그 중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예술가의 생애' '비엔나 숲 속의 이야기' 등이 특히 유명하며 많은 콘서트의 오프닝 곡을 장식하는 ’오페레타 박쥐‘도 그의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