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동백 / 유창섭
무서리 찬바람에 지쳐 누운
마지막 잠
낙엽은 잠들어서도 꽃을 피운다
수북한 낙엽은 꿈을 꾼다
청청한 잎새 밑의 꿈을 피워내는
빨간 소망
스산한 달빛 받으며
법당에 올라 소망을 빌고 있는
선운사 뒷 뜰은
온통 핏빛 그리움
선운사 동백꽃 /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선운사 동백꽃/ 김윤자
사랑의 불밭이구나 수백년을 기다린 꽃의 화신이
오늘밤 정녕 너를 남겼구나 선운산 고봉으로 해는 넘어가도
삼천 그루 동백 꽃등불에 길이 밝으니
선운사 초입에서 대웅전 뒤켠 네가 선 산허리까지
먼 길이어도 님은 넘어지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 오시겠구나
해풍을 만나야 그리움 하나 피워 올리고
겨울강을 건너야 사랑의 심지 하나 돋우는 저 뽀얀 발목
누가 네 앞에서 봄을 짧다 하겠는가 이밤 바람도 잠들고
산도 눈감고 세월의 문이 닫히겠구나
선운사 동백꽃/ 김선주
선운사 동백꽃이 진다
명치끝에 처억 내려 앉는다
무쇠 칼날처럼 시퍼렇게 아리다
그녀가 떠나가던 날도 이랬다
천년을 두고 이렇게 아팠구나
뜨거운 눈물을 떨구었다
무쇠 칼등처럼 무거웠다
세상 모든 것이 이렇게
아픔으로 제 발등을 덮는구나
선운사 동백꽃 / 유안진
무너지고 싶습니다.
녹아지고 싶습니다라고//
여우바람으로 자맥질치는 불길//
미친 이 불길 잡아 달라고
눈비를 맞아봅니다만//
밤마다 고개 드는
죄를 죽입니다만//
눈서리가 매울수록
오히려 뜨거워만집니다//
마침내는 왈칵
각혈 쏟고 말았습니다. 부처님.
선운사 동백꽃 - 용혜원
선운사 뒤편 산비탈에는 소문 난 만큼이나 무성하게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고 많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가지가지마다 탐스런 열매라도 달린 듯
큼지막하게 피어나는 동백꽃을 바라보면
미칠 듯한 독한 사랑에 흠뻑 취한 것만 같았다
가슴 저린 한이 얼마나 크면
이 환장하도록 화창한 봄날에
피를 머금은 듯 피를 토한 듯이
보기에도 섬뜩하게 검붉게 검붉게 피어나고 있는가
선운사 동백꽃 / 박남준
선운사 동백꽃 보러 갔습니다
대웅전 뒷산 동백꽃 당당 멀었다 여겼는데요
도솔암 너머 마애불 앞 남으로 내린 한 동백 가지
선홍빛 수줍은 연지곤지 새색시로 피었습니다
휜 눈 밭에 울컥 각혈을 하듯 가슴도 철렁 떨어졌습니다그려
선운사 동백꽃 / 이산하
나비도 없고 벌도 없고 동박새뿐
그 동박새에게 마지막 씨를 남기고
흰 눈 위에 떨어진 한 치 흐트러짐 없이
통째로 툭 떨어진 선운사 붉은 동백꽃
떨어지지 않은 꽃보다 더 붉구나
선운사 동백꽃 / 오순택
선운사 동백꽃은
누나 입술같이 곱더라
고운 입술에 봄빛 듬뿍 물고
배시시 웃고 있더라
지난 겨울 싸락눈 먹고 자란
초록잎사귀가 저렇게 붉은 꽃 피웠겠지
꽃이 지면 어쩌지
붉은 동백꽃 똑똑 따며 봄이 가버리면 어쩌지
어디서 날아왔는지
꽁지 몽땅한 새 한 마리
떨어진 꽃잎을 쪼아먹고 있더라
동백 피는 날 / 도종환
허공에 진눈깨비 치는 날에도
동백꽃 붉게 피어 아름답구나
눈비 오는 저 하늘에 길이 없어도
길을 내어 돌아오는 새들 있으리니
살아 생전 뜻한 일 못다 이루고
그대 앞길 눈보라 가득하여도
동백 한 송이는 가슴에 품어 가시라
다시 올 꽃 한 송이 품어 가시라
동백 / 석여공
누가 첫 입술로 저 동백에 입맞춤 했나
누가 저 동백 못 잊게 해서
들어오시라고, 성큼 꽃 속으로 동백길 가자고
붉은 몸 열어 만지작거리게 했나
저 동백 누가 훔쳐 달아나 버려서
혼자라도 그리운가 아득히
동백을 보면 언제나 춘정은 몸살지게 살아
나 아직 쿵쿵 뛰는 가슴이어서
그대여 저 붉은 귀에다 소식 전하면
그 길에 누워서 죽어버려도 좋겠네
동백꽃 그리움 / 김초혜
떨어져 누운 꽃은
나무의 꽃을 보고
나무의 꽃은
떨어져 누운 꽃을 본다
그대는 내가 되어라
나는 그대가 되리
혼자 피는 동백꽃 / 이생진
꽃시장에서 꽃을 보는 일은
야전병원에서 전사자를 보는 일이야
꽃이
동백꽃이
왜 저런 절벽에서 피는지 알아?
그것도 모르면서 꽃을 좋아했다면
그건 꽃을 무시한 짓이지 좋아한 것이 아냐
꽃은 외로워야 피지
외롭다는 말을 꽃으로 한 거야
몸에 꽃이 필 정도의 외로움
이슬은 하늘의 꽃이고 외로움이지
눈물은 사람의 꽃이며 외로움이고
울어보지 않고는 꽃을 피울 수 없어
꽃한테 축하 받으려 하지마
꽃을 달래줘야 해
외로움을 피하려다보니 이런 절벽에까지 왔어
동백꽃 / 이생진
섬에는 어딜가나 동백이 있다
동백이 없는 섬은
동백을 심어야지
동백은 섬을 지키기에
땀을 흘렸다
동백은 바위에 뿌리박기에
못이 박혔다
동백은 고독이 몰려와도
울지 않았다
동백꽃이 질 때 / 이해인
비에 젖은 동백꽃이
바다를 안고 종일토록 토해내는
처절한 울음 소리를 들어 보셨어요 ?
피 흘려도 사랑은 찬란한 것이라고
순간마다 외치며 꽃을 피워 냈듯이
이제는 온몸으로 노래하며
떨어지는 꽃잎들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거부하고 편히 살고 싶은 나의 생각들
쌓이고 쌓이면 죄가 될 것 같아서
마침내 여기 섬에 이르러 행복하네요
동백꽃 지고 나면 내가 그대로
붉게 타오르는 꽃이 되려는
남쪽의 동백섬에서 !
동백 / 강은교
만약
내가 네게로 가서
문 두드리면.
내 몸에 숨은
봉우리 전부로
흐느끼면.
또는 어느 날
꿈 끝에
네가 내게로 와서
마른 이 살을
비추고
활활 우리 피어나면.
끝나기 전에
아, 모두
잠이기 전에.
동백 칠칠조(冬栢 七七調) / 설창수
차마 이대로서야 피도 지도 못하는
몸짓들 가쁜 情을 가눌 수가 없구나
기름 똑똑 진 갈매 눈보라도 이겨서
꼭꼭 야문 봉지가 홍갑사 나부 댕기.
차마 이대로서야 물도 맺도 못하는
열두발 삼단 머리 깎고 중이 될까나.
아낙네 품은 원한 오월에도 서리온다.
깊은 밤 잠꼬대로 불러주랴 내 이름.
속 태워 고인 기름 알알히 맺혔다가
옥비녀 화촉동방 새낭자에 풍기자.
동백 / 양광모
한 봄날이어도
지는 놈은 어느새 지고
피는 놈은 이제사 피는데
질 때는 한결같이 모가지째 뚝 떨어져
-이래 봬도 내가 한때는 꽃이었노라
땅 위에 반듯이 누워 큰소리 치며
사나흘쯤 더 뜨거운 숨을 몰아쉬다
붉은 글씨로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징하게 살다 가네
동백꽃 / 오세영
괜찮다.
괜찮다.
부풀어오르는 밀물 탓이다.
개펄을 채우고 둑을 넘쳐서
마당까지 벙벙히 넘실대는
물,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탓이다.
옷고름 풀어헤치고 치마를 들치며
속살 간질이는
갯바람,
괜찮다.
괜찮다.
사릿날
초조(初潮)의 부끄러움으로
발갛게 달아오르는
처녀의
볼.
동백꽃 / 김여정
지난 겨울
희뜩이는 눈발인듯 그대 떠나고
뱃길 닫혔던 내 포구
어느날 문득
꿈길인듯
여수 앞바다
오동도가 빨간 꽃잎 터뜨리며
내 폐항으로 달려 왔다.
희뜩이는
이월의 눈발 사이로 달려온
꽃잎들의 뜨거운 숨결이
긴 겨울 동안의
내 꿈의 죽음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바야흐로
피가 돌기 시작한
꿈
그 핏빛 동백꽃으로 뒤덮인
오동도가
내 가슴 위에 그리움인듯
오롯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동백꽃 / 홍해리
기름기 잘잘 도는 섬 여인네
그녀의 정념보다 더 뜨거운 불
동백꽃이 피우는 불길은
기름 도는 초록빛
그 연기가 바다로 바다로 가서
섬을 만들고
섬마다 동백나무 불을 지펴서
떠도는 나그네 가슴 녹이네
동백 등불 / 홍해리
먼저 간 이들
길 밝혀 주려
동백은 나뭇가지 끝끝
왁자지껄, 한 생을 밝혀
적막 허공을 감싸 안는다.
한 생이 금방이라고
여행이란 이런 것이라고.
지상의 시린 영혼들
등 다숩게 덥혀 주려고
동백꽃
야단법석, 땅에 내려
다시 한 번 등을 밝힌다.
사랑이란 이런 거라고
세월은 이렇게 흘러간다고.
동백꽃 / 김정숙2
동박새 한 마리 날지도 않는데
선연한 핏자욱 울먹울먹 일어서서
엄동설한 매서운 바람 모르고
객혈하는 속울음 너는 피었는가
또 피었는가
삶에는
추위가 대롱거리고 있는데
너는 피었고 나는 아직 철이 아니라고
반쯤만 열려 있구나
한 잎 한잎 떨리는
저 꽃잎 좀 보아라
사람과 사람 모든 것들
순리대로 꽃 피워진다면
얼마나 얼마나 행복에 젖을까
저기 저 붉은 꽃잎
한 장 한 장 고요하고 단아한
자태를, 순수를
동백꽃 지다 / 변준석
동백꽃 한 송이
소리 없이 떨어진다.
호상(好喪)이다.
첫 꽃핀 동백 / 양전형
돈네코 허리춤에
네 살바기 제주동백
언어 이전 몸짓으로
억겁 섭리 터득더니
저 봐라, 생살 뚫은 송이들
그리움이 분명하다
동지섣달 긴긴밤 눈발이 하 서럽고
소대한 모진 바람 자진모리로 되치기 하다
겹치마 걷어올리며 난생처음 벙글었네
아스랗던 새 천년이 어쩜 이리 성큼 왔나
고운 입에 여의주 물고 비상하는 서귀포여
아무튼 저 꽃 보게나 드디어 속 보였네
저 한 몸 불질러 이 땅을 밝히려나
등성이를 내려온 허옇게 시린 산울음도
길섶에 붉어 따스한 치마폭으로 스미는군
핏빛보다 진솔한 거
있으면 나오라며
정방포구 물어뜯다
돌아누운 스무세기
어쩌면 저 꽃 피우려
천년밤 지새운지 몰라
동백꽃 그늘 아래 / 유국진
동백꽃 그늘 아래
비스듬히 누워
바다를 바라보며,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이 푸름이 지상을 무척이나 곱게도하는구나 생각했다
붉은 꽃
세월의 작은 마디
파도에 둥둥 떠가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우주보다 큰 꿈의 그림자 함께 떠가고
무한의 사랑도 함께 떠나갔다.
빈 잔에 어리는 잠못이루는 밤의 무게
차곡차곡 가슴에 쌓이고
동백꽃 한 잎보다 짧은 세월
오고가는 길목에 걸터앉아
파르르 떨며 나를 바라본다.
동백 / 이향지
바닷가 벼랑 틈에 깊디깊은 목구멍이 있고
무한천공 이슬을 받아먹으며 자란 혀가 한 그루
솟아 있다
멀리서 보면 몹시 반들거리지만
햇살도 미끄러지게 반들거리지만
가까이 가보면 해풍에 터진 혓봉오리들이
핏빛으로 맺혀있다
제 뿌리 붙잡고 있는 절벽이
텅 빈 소리의 길이 될 때까지
제 몸을 후벼파는 나무의
혀,
몹시 반짝이는 이파리들의 안타까운 손짓말
한 때는
봄 운하를 저어 가는
외 노였고,
외 노에 딸린 목선이었고
목선에 딸린 삿대였고
목선 꽁무니의 방향타였고
돛대였고
뱃바닥에 고이는 물 퍼내는 바가지였고
잔고기 가두는 물 칸의 비스듬 열린 뚜껑이었고
그 전부를 싣고
설레임 설레임 저어 가는
외 노였던,
나무의
혀
소리의 나무가 폭포수처럼 치솟아 바다를 덮을 때까지
오, 오, 오, 핏빛으로 갈라터진 혓봉오리들이라도
붉게, 붉게, 피워서, 파도에 떨구어야 한다
동백꽃 아씨 / 최해춘
도톰한 이파리로
바람을 막고
야윈 햇살 먹으며
동백 아씨 가슴 자락
불씨 물고 앉았네.
눈정으로 스쳐 간 님
무시로 기다리다
사모의 정
불꽃되어
찬계절에 꽃 피우네.
밤기러기 저 멀리서
날개짓 할 적
뵐 듯 말 듯 붉은 가슴
조금씩 열고
그리워 타는 속을 식히며 피네.
꽃나비 벌떼도
가고 없는데
동백 아씨 홀로 서서
꽃잎 틔우면
북으로 날아가는
저 기러기
눈정 주고 떠난 님께 소식 전할까.
동백섬 / 진의하
여수 동백섬
동백꽃등 걸어 불밝히면
다도해 물결 꽃물이 든다.
누가
애태우다 끄지 못한 채
떠나 버렸던가
그 사랑 씨앗되어
심지로 타는
동백섬 꽃가지,
이별도 붉을래
이 섬에선
이별도 타는 불길일래,
사랑을 더 말해 무엇하리
물에 빠진 동백섬
불에 타는 동백섬.
동백꽃 / 오세영
강설로 하얗게 얼어붙은 숲속에
누가 지폈나.
빨갛게 달아 오른 한떨기 숯불
사람들은 한갓 동백이라 하지만
사람들은 그저 가녀린 꽃이라 하지만
아니다. 그것은
추위를 막아주는 겨울 산의 화롯불
다람쥐 쪼르르 언 발을 녹이고
메꿩 푸드득 언 부리 녹이고
굴참나무 바르르 언 몸 녹이고 …
온 숲의 따뜻한 겨울 나기다.
옳거니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가슴에 불을 안아야
혹한을 이겨내는 것,
그래서 아름다움을
항상 가슴에서 타 오른다 하지 않던가.
지는 동백꽃을 보며 / 도종환
내가 다만 인정하기 주저하고 있을 뿐
내 인생도 꽃잎은 지고 열매 역시
시원치 않음을 나는 안다
담 밑에 개나리 환장하게 피는데
내 인생의 봄날은 이미 가고 있음을 안다
몸은 바쁘고 걸쳐놓은 가지 많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거두어들인 것 없고
마음먹은 만큼 이 땅을
아름답게 하지도 못하였다
겨울바람 속에서 먼저 피었다는 걸
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나를 앞질러가는 시간과 강물
뒤쫓아오는 온갖 꽃의 새순들과
나뭇가지마다 용솟음치는 많은 꽃의 봉오리들로
오래오래 이 세상이 환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선연하게도 붉던 꽃잎 툭툭 지는 봄날에
동백꽃 사랑. 2 / 홍윤표
유순한 동백꽃아
지독한 삼월의 하늘 밖에서
부산하게 피고지는 것에 대하연
통 말을 하지 않겠다
긴 설원에서 깨어나 바다의 길을 묻는
원양어선도 이젠 떠날 채비다
그 파아란 물결 태종대 앞바다에
암벽마다 소리치는
동백꽃의 아우성에 부산하여라
해마다 북으로 하뉘바람 타고 올라와
풍물치는 선운사 꽃소식에
벌써 미당(未堂)도 다녀갔단다
산은 동백이요
선운사는 동백꽃이요
이른 삼월에 채혈된 피 한 방울도
행여 피다질까 두려워 봄물오른
길섶 질경이처럼 거치른 땅바닥에 업드려
고창에 내리는 우박을 만나니
수심은 무덤처럼 고였다
冬柏꽃 / 유치환
그대 위하여
목 놓아 울던 청춘이 이 꽃 되어
천년 푸른 하늘 아래
소이 없이 피었나니
그날
한장 종이로 꾸겨진 나의 젊은 죽음은
젊음으로 말미암은
마땅히 받을 벌이었기에
원통함이 설령 하늘만 하기로
그대 위하여선
다시도 다시도 아까울 리 없는
아아 나의 청춘의 이 피꽃 !
동백나무 너에게 / 허영미
너의 단심(丹心)
누구보다 붉다는 것 알고 있지만
꽃봉오리 감춘 채
너무 오래 있지는 마라
꽃잎마다
사랑의 언어를 달고
농염한 꽃술의
심장 박동 소리 들려오면
내 전부를 벗어던지고
오직 너만을 위해
뜨거운 가슴으로
선홍빛 입술 달구어
천년 사랑의 긴 입맞춤을 하리라
동백이 지고 있네 / 송찬호
기어이 기어이 동백이 지고 있네
싸리비를 들고
연신 마당에 나서지만
떨어져 누운 붉은빛이 이미
수백 근은 넘어 보이네
벗이여, 이 볕 좋은 날
약술을 마다하고
저리 붉은 입술도 치워버리고
어디서 글을 읽고 있는가
이른 아침부터
한 동이씩 꽃을 퍼다 버리는
이 빗자루 경전 좀 읽어보게
동 백 / 최영복
아지랑이
하늘거림 속에
흘러가는 안개 구름타고
묵은 세월 벗고자
꽃망울 벗어내니
연 초록빛 율동의 하늘거림에
진하디 진한
붉은 선혈의 피방울처럼
가슴 에이도록 떨어진 꽃잎은 쌓이고
고독의 한을 산화하듯
홍백색 붉은 빛 토해내니
뭇 가슴에 매력으로 피어납니다
동백꽃 / 김완하
그 꽃 다 지고 나서야
지름길을 알았다
그대에게 가는 길
동백꽃(46) / 손정모
겨우내 그리도 벼르다가
해안 감돌아
벼랑에 선 날
붉은 속치마
살며시 벗던 동백
속살 노랗게 떨다가
해풍 지나는 길목마다
발그레한 얼굴로
웃음 살며시 깨문다.
동백꽃 피다 / 목필균
네 이름 석자를 분해한다
뚝뚝 떼어낸 자음과 모음을
잘게 부순다
다시 조합할 수 없는
네 이름의 분말들
허공으로 날려보낸다
분해된 이름 대신
가슴에 선혈로 피어난 꽃
이별보다 사랑이 더 아프다
동백 / 강진규
한겨울 심한 추위 칼바람 속에
정열의 불꽃으로
홀로 일어서 아득하게 피어있는
취기어린 방랑자
햇살 끝에 매달려 있는
아득한 기다림의 순간까지
내일을 그려
태우고 태워 올리는
길었던 순간마다의 고통도
가슴을 에이는 슬픔마저도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당당한 향기로 퍼져나와
넘쳐흐르는 저 포만
이제 더
목메이지 않을
어둠조차 없는 저 붉은 울음 속에
힘찬 사랑의 씨를 뿌리며
동백꽃 / 김상환
마침내 꽃은 피고 나는 울었다
내 울음의 물방울 같은 아이를
차가운 산 땅에 묻고
그 깊이도 모를 땅 끝의 끝에서
삼동을 지나고도
나의 슬픔은 죽지 않고 되살아나
한 떨기 꽃으로 피어나고,
그리고 나는 울었다
지금의 나의 뜨락은 그 꽃으로
화안하다
내가 사는 목조 건물은 지금
그 가슴 속 지울 수 없는 상처의 꽃으로
눈이 부시다
흰동백꽃 / 백영수
파도처럼 부서지고 싶은게다
내가 다시 너를 찾아 왔을때
누구를 기다리는 마음을 겹겹이 하얗다
왔다 가는 바람을
잡아두고 싶은 것이었을까
퍼런 손등 위로
너는 또 그렇게 새 하얀 눈을 모아 두었지만
핏줄을 내려 앉힌 뿌리를
깜깜한 눈에 나는 결국 알 수가 없었다
깃들어 슬픈 동박새의 자리에
곡이 아리도록
그 자리마다 노란 꽃 입술은 그래
용서하지 못할 기억일 게다
동백꽃이 지고 있네 / 송찬호
기어이 기어이 동백이 지고 있네
싸리비를 들고
연신 마당에 나서지만
떨어져 누운 붉는 빛이 이미
수백 근 넘어 보이네
벗이여 이 볓 좋은 날
약술도 마다하고
저리 붉은 입술도 치워버리고
어디서 글을 읽고 있는가
이른 아침부터
한 동이씩 꽃을 퍼다 버리는
이 빗자루 경정 좀 읽어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