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닐 샤프란(1923~1997·사진)은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와 함께 20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첼리스트다.
샤프란은 1923년 1월 13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첼로 수석이었던 아버지 보리스로부터 첼로를 배우기 시작하여 14세 때(1937년) 전(全)소련 콩쿠르에 서 우승했다. 이때 부상으로 받은 1630년도에 제작된 아마티를 평생 사용했다.
레닌그라드 음악원을 거쳐(1940년) 모스크바 음악원(1943년)에서 공부했고, 부다페스트의 <평화 우호축제 콩쿠르>(1949년), <프라하의 봄 국제 콩쿠르>(1950년)에서 로스트로포비치와 공동 우승했고, 그 후 런던에 데뷔하고, 1960년엔 카네기홀 데뷔 리사이틀을 가져 미국에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71년, 소련의 인민예술가상을 받았다. 1974년 6월, 연주가로서는 대단한 명예였던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는 레코딩과 연주에도 소홀해서 은퇴한 것이 아닌가하는 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세상 떠나기 전인 1995년과 1996년에는 런던 위그모어 홀에서 몇 차례 연주회를 가졌다. 1997년 2월 7일 러시아에서 74세로 생애를 마감했다.
샤프란이라는 이름은 상대적으로 로스트로포비치에 비해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공산혁명 후 이념적인 문제로 소련을 떠나 서방에서 활동한 로스트로포비치와는 달리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러시아 등 동구권을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그만큼 서방세계에는 알려지지 않았 던 것이 이유였다. 거기에 더해 공산권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폐쇄적인 태도들까지 겹쳐서 결 과적으로는 아주 고고(孤高)한 존재인 것처럼 서방세계에 인식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세련미가 대단하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서정성과 아름다움이 그의 연주에서 느껴진다. 로스트로포비치가 스케일이 크고 열정적이고 외형적으로 화려한 연주를 했던 반면, 샤프란은 소박 하고 따뜻하고 내면적으로 깊은 사색에 잠긴 연주를 들려주었다.
따뜻한 음향을 좋아한 과거 LP 수집가들에게 샤프란의 음반이 중요한 수집 목표가 되었던 것은 바로 이런 매력 때문이었다. 외향적이고 박력 있는 연주를 들려주는 로스트로포비치에 비해서 샤 프란은 비교적 악보에서 자유로운, 낭만적이고 주관적인 연주를 들려준다는 평가를 들었다.
샤프란은 깊은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진지한 연주자의 길을 걸은 철학적인 연주자로 알려져 있는 데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새삼스레 그의 예술을 높이 평가하는 많은 마니아들이 생겨났고, 심 지어 첼로의 황제 파블로 카잘스에게 비교될 수 있는 유일한 첼리스트라는 과격한 표현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었다.
물론 다닐 샤프란은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첼리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그에 대한 정보가 빈약한 관계로 여전히 신비의 첼리스트로 남아 있다. 언젠가 스뱌토슬라브 리히터는 “만약 당신 이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에 감동을 받았다면 샤프란의 연주를 들을 때까지 기다리시오”라고 하 면서 진가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첼리스트가 러시아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었다.
샤프란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참고해야 할 음반은 바흐의 6곡의 무반주 첼로 모음 곡이다. 그것은 이 작품이 첼리스트의 정신과 기교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된다는 이유도 있겠고, 모든 연주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도전하는 곡이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역시 샤프란의 깊은 내면 세계가 이상적으로 발현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닐 샤프란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연주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시기는 1950년대 후반으로 그의 나이 30대 중반을 지났을 때의 일이다. 연주가로서의 경험이나 정신적 깊이가 어느 정도의 단계에 이르면서 이 심오한 음악에 자신만의 특별한 영혼을 불어넣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 것이 다. 이때부터 1997년 74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연주자로서의 그의 삶에 있어서 바흐의 무반 주 첼로 모음곡은 지고의 예술적 이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샤프란은 끊임없이 청중들 앞에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하며 서서히 이 작품해석의 완성을 향해 나아갔다. 그 결과 젊은 시절의 열정과 경외감에 삶의 무게를 실어 깊고 웅혼한, 그야말로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세계를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샤프란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그의 40대인 1969-1974년 사이에 소련의 국영 레이블인 멜로디아에서 녹음 발매했던 전곡녹음으로 LP시대 에는 전설적인 명반으로 여겨졌던 유명한 연주이다.
Daniil Shafran [Bach: Six Suites for Cello Solo]
℗ 2023 JSC "Firma Melodiya"
Daniil Shafran [Schubert: Arpeggione Sonata D. 821]
2024 Remastered, New York 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