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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ac Stern(아이작 스턴) :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想像 2007. 10. 23.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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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ac Stern :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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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스턴은 이 시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사람으로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는 전문 연주가로서 50년 이상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콘서트 무대에서 연주해왔고, 무수히 많은 젊은 음악인들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왔으며, 국내외 예술진흥을 위해 헌신해 왔다. 스턴은 우리시대의 가장 많은 작품을 레코딩한 아티스트로서 63명의 작곡가들의 200여작품을 100장이상 녹음했다.

그는 50년간 소니 클래식의 전속 아티스트로서 활동해왔고, 이 오랜 관계를 인정받아 1985년 최초의 "계관 아티스트"의 칭호를 수여받기도 했다. 1995년 소니 클래식은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아이작 스턴: 전 생애에 걸친 음악"이라는 타이틀로 43개의 디스크를 재발매할 예정으로 있어 다시 한번 세계음악계의 화제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우수한 레퍼토리의 뛰어난 곡해석으로 유명한 스턴은 자타가 공인하는 현대음악의 거장이기도 하다. 그는 번스타인, 펜데레츠키, 로츠버그, 슈만, 뒤티유 그리고 피터 맥스웰 데이비스의 작품을 초연했고, 바르토크와 힌데민트의 작품을 미국 초연했다. 그리고 슈만의 작품을 제외하고 이 작품 모두를 레코딩했다.

그의 화려한 경력은 영화와 텔레비젼으로도 이어진다. 영화 "모택동에서 모짜르트까지: 중국의 아이작 스턴"은 1981년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문상을 수상했으며, 카네스 필름 페스티발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또한 1967년 "6일 전쟁"때에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함께 스코푸스산 정상에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공연했는데, 이 잊지못할 콘서트는 "예루살렘으로의 여로"라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가 연주한 영화음악 "지붕위의 바이올린"은 클래식팬 뿐아니라 영화팬들에게까지 널리 사랑받고 있다. 그는 1987년 에미상을 받은 CBS의 "카네기 홀: 더 그랜드 오프닝"과 91년 5월 PBS에서 방영한 카네기홀 센터니얼 갈라 콘서트에도 출연했다. 음악 다큐멘터리 "아이작 스턴의 생애"는 1993년 아트 엔터테이먼트 네트워크로 방영되었고 소니에서 비디오로 재발매되었다. 수많은 콘서트 프로그램과 유명 토크쇼에도 출연했다.

1993/94시즌에는 91년 러시아 투어때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라이브레코딩을 함께 했던 예핌 브롬프맨과 극동과 미국투어를 하였으며 현재에도 모짜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의 레코딩과 공연을 위해 현재에도 훌륭한 파트너쉽을 이루고 있다. 이 중 첫번째 앨범은 1994년 봄, 소니클래식에서 발매되었다. 그는 또한 동료 엠마누엘 엑스, 제이미 라레도, 요요마와 함께 유럽과 북미에서 콘서트와 레코딩 활동을 했다. 이들과 함께 녹음한 브람스 4중주는 91년에 그라모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프란츠 리스트 챔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남아메리카와 동유럽 투어를 했고, 영국, 덴마크, 프랑스에서도 공연했다.

국제 예술기금협회의 창립 멤버인 스턴은 미-이스라엘 문화재단과 예루살렘 음악센터의 설립자로서 총재직을 맡은 바 있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음악에의 열정은 젊고 유망한 연주가들의 발굴에도 전력을 다하고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차크 펄만, 핀커스 주커만, 슐로모 민츠 등이 그가 키워낸 대표적인 연주자들이다. 최근에는 미도리, 길 샤함 등의 적극적인 후원을 하였다.

그는 30년이상 카네기홀의 대표를 맡으면서 카네기홀을 철거의 위기로부터 구해내기도 했다. "음악과 인류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앨버트 슈바이쳐 뮤직상의 첫수상자이기도 한 그는 1984년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케네디센터 명예상"을 비롯, 권위있는 세계단체와 정부로부터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1986년 뮤지컬 아메리카는 그를 "올해의 음악인"으로 선정했으며, 92년에는 국민의 최고 영예인 "자유의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그는 또한 버클리대학, 콜롬비아대학, 커티스음악학교, 하버드대학, 히브르대학, 일리노이스대학, 존스홉킨스대학, 줄리아드음악학교, 뉴욕대학, 옥스퍼드대학, 텔아비브대학, 그리고 예일대학으로 부터 명예학위를 받았다.

1920년 러시아의 크레미니에츠에서 태어난 아이작 스턴은 생후 10개월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성장하며 음악수업을 받은 그는 8세때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음악경력을 쌓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악장이었던, 그의 음악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스승 나훔 블렌더를 만난다.

1933년, 13세 때 리사이틀 데뷔를 했고, 1936년 피에르 몽튀가 지휘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협연으로 오케스트라 데뷔 무대를 가졌고 이 공연은 미국전역에 방영되었다. 1937년 타운홀에서 뉴욕 데뷔 무대를 갖었으며 1943년에는 카네기홀 데뷔 연주를 했다.

아이작 스턴은 2001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클래식의 발전을 위하여 크게 노력한, 진정 바이올린을 사랑하고 음악을 위해 헌신한 위대한 마에스트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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