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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싸 갈란테(Inessa Galante, 1954~ )

想像 2009. 12. 1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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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네싸 갈란테(Inessa Galante, 1954~  )

이네싸 갈란테(Inessa Galante). 진흙속의 진주처럼 묻혀져있던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를 불러 모든 이의 심금을 울린 천상의 소프라노

드라마, CF, 라디오를 통해 널리 알려진 불후의 명곡 '카치니 아베마리아' . 이탈리아의 작곡가 지울리오 카치니(1551 ~ 1618)가 쓴 아베마리아는 1990년 이전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노래였다. 악보가 유실되었던 것이 아니라 이전까지 어느 가수들도 부르지 않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레퍼토리였던 것이다.

오랜 세월 잊혀졌던 슬픈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이 노래를 갈란테 외에 슬라바, 샤롯 처치, 레슬리 가렛 등이 부르면서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그러나 갈란테 만큼 절절하고 극적인 기도로 노래한 사람은 없었다. 갈란테만이 갖고 있는 예술적 영감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으며, 듣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한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세계 무대에 널리 알리게 된 이네싸 갈란테(Inessa Galante)는 리투아니아의 리가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였던 어머니와 테너가수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에게 음악은 숨쉬는 공기와도 같이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음악적 재능 또한 천부적이었다.

이네싸 갈란테는 1977년 리가 음악학교에 입학하여 Rachel Shulov에게 사사했고 학생 시절부터 리가 오페라 하우스에서 활동을 했다.

주로 동구권 국가들에서 연주를 했으며 Kirov Opera에서 정규 소프라노 가수로 활동하게 되면서 모스코와 키에브, 오데사로 그 활동영역을 넓히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과 캐나다의 순회공연은 비평가들에게 그녀의 존재에 대하여 주목을 하게 만들었으며 예후디 메뉴인경과 주빈메타는 그녀에게 서부 진영으로의 데뷔를 제안하게 된다. 그러나 동서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은 그녀의 서구 활동을 제약하는 커다란 요소였다.

1991년 리투아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면서 이네싸 갈란테(Inessa Galante)는 비로소 세계 무대로의 데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1992년 독일 만하임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Pamina 역할의 연주를 필두로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오페라 "카르멘" 돈호세의 버려진 애인 미카엘라역을 호연하면서 마침내 이네싸 갈란테는 비평가들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다.

1995년 Campion Record에서 제작된 "Debut" 앨범의 선풍적인 인기는 세계 무대에 그녀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96년 10월 스코틀란드 왕립 오케스프라와의 공연으로 영국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었고, 1997년 세계적인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의 70회 생일을 기념하는 에비앙 페스티발에서 연주하였으며 같은 해 7월 뉴포트와 헐리우드 보울에서 연주를 했으며 1998년 12월 런던에서 연주를 하였다.

2000년 홀란드 플래티넘 디스트 어워드를 수상하였고, 2001년 1월 12일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공연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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