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oe Concerto in D Minor, S. Z799
Alessandro Marcello, 1673 ~ 1747
‘마르첼로’의 오보에 협주곡 D단조는 현재 오보에를 대표하는 작품들 중에서 알비노니, 치마로사, 비발디의 오보에협주곡과 함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그의 동생인 ‘베네데토 마르첼로’의 작품으로 잘못 전해졌지만 결국 그의 형인 알렉산드로 마르첼로가 작곡한 것으로 확인되어 정정되었다. 이 작품이 오랫동안 그의 동생 베네데토의 작품이라 오해를 받을만한 이유가 나름 있었다. 마르첼로 집안은 오랫동안 이탈리아 원로원출신의 귀족가문이었다. 오보에 협주곡을 작곡한 형 ‘알레산드로’는 음악적 재능이 많았지만 집안이 부유했고 장남인터라 음악을 업으로 하지 않았다. 굳이 음악이 아니더라도 형 ‘알레산드로 마르첼로’는 음악뿐 아니라 문학, 미술, 법률, 철학, 수학 등의 많은 분야를 전문가 이상으로 섭렵하여 정계나 학계에 크게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스물한 살의 젊은 나이에 베니스 시의회 의원이 되어 오랫동안 시의원으로 일했으며, 베니스의 대표 외교관으로 일을 할 정도로 전문지식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반면에 그의 동생 ‘베네데토’는 음악을 직업적으로 활동하였기에 음악하면 바로 동생‘ 베네데토 마르첼로’를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었지 형인 ‘알레산드로 마르첼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동생 ‘베네데토’는 오페라, 오라토리오, 칸타타, 협주곡, 소나타 등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음악사에 그의 이름을 남겼지만 동생에 비해 형 ‘알레산드로’는 오늘날에 와서야 자신의 오보에 협주곡 단 하나로 동생보다 더 유명세를 갖게 되었다. 이런 관계로 예전에는 모두가 이 작품을 동생의 작품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형 ‘알레산드로’는 그의 작품 대부분을 실명으로 발표하지 않고 가명인 ‘에테리오 스틴팔리코’라는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 대부분은 오늘날까지 누가 작곡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또한 이 작품이 세상에 알리게 했지만 작곡자의 이름 오류를 범하게 된 것은 독일작곡자 ‘바흐’의 영향이 가장 컸는데 ‘바흐’가 이 작품을 너무나 좋아해서 이 작품을 비발디의 작품이라 오인해버렸다. 그래서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이 작품을 쳄발로 독주곡(BWV 974)으로 편곡해버렸고 더 나아가 편곡한 원작품을 비발디의 작품이라 소개까지 하였으니 사람들은 의심 없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음악의 아버지인 ‘바흐’의 말인데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오랫동안 이 작품을 비발디의 곡이라고 알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또 한 번의 오류가 생겼는데 1920년대에 바흐의 쳄발로 독주곡(BWV 974)을 마르첼로 오보에 협주곡으로 복원할 때에 일이었다. 이때 출판업자가 원작곡자를 비발디에서 동생 ‘베네데토’라고 잘못 수정해놓았기 때문에 최근까지 오류가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야 이 작품은 작곡자가 ‘알레산드로 마르첼로’로 인쇄된 협주곡집(Roger판1716년)이 최근에 발견되어 원작곡자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게 되어 정정하게 되었다. 이것은 음악사에 길이 남을 오류의 해프닝이 되었다.
동생과는 달리 알레산드로 마르첼로는 다작을 한 작곡가는 아니며, 50곡이 채 되지 않은 소나타, 협주곡, 칸타타 등만을 남겼다. 하지만 알레산드로의 곡들은 후대에 이름을 남기기에 알맞는 개성적인 곡들이라 평가받는다.
대표작으로는 너무나도 유명한 오보에 협주곡 D단조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출판한 두 대의 오보에를 위한 협주곡집 《리라La Cetra》(1738)[2], 12곡의 바이올린 소나타집 등이 있다. 그의 협주곡들은 안토니오 비발디나 토마조 알비노니 같은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과 같이 바로크 협주곡의 최정점이라 평가받는 작품들이다.
또 당시로써는 알비노니와 함께 신생 악기였던 오보에를 주류 악기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는데에 있어 높이 평가받는다. 이러한 감미로운 오보에의 음색을 잘 활용한 마르첼로의 곡으로는 오보에 협주곡 D단조 2악장 아다지오가 있다.
I. Andante e spiccato
II. Adagio
III. Pre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