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dszenen, Op. 82
Robert Alexander Schumann,1810∼1856
슈만의 '숲의 정경(Waldszenen)' 은 그가 생애 후반기에 극도로 정신적인 불안을 겪고 있던 시기에 작곡된 이 작품은 단순하면서도 시대를 한발 앞서간 독특한 음악적 표현에 담긴 매력으로 인해 오늘날에도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1849년에 쓴 이 작품은 모두 9개의 소품으로 이루어진 작품집으로 하인리히 라우베가 쓴 《사냥일지》(Jagd brevier)를 비롯한 슈만이 그동안 애독해 온 아이헨도르프나 하이네 등 여러 시인이 노래한 숲과 사냥에 대한 문학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곡입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단숨에 써 내려간 작품이지만. 숲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기대감을 나타내는 제1곡 '입구'부터 사냥을 마치고 숲과 이별을 고하는 제9곡 '이별'까지, 9개의 소품으로 구성된 이 곡은 숲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모두 아래와 같은 타이틀이 있는 9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곡에는 원래 여러 시인들의 시에서 발췌된 시구들이 하나씩 붙어 있었으나, 출판시에는 제4곡에 붙어 있던 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비음악적 자료들은 슈만의 음악이 표현하는 정서를 이해하는 데에 좋은 길잡이가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No.1 Eintritt <숲의 입구>
No.2 Jager auf der Lauer <숨어 기다리는 사냥꾼>
No.3 Einsame Blumen <고독한 꽃>
No.4 Verrufene Stelle <저주받은 장소>
No.5 Freundliche Landschaft <정다운 풍경>
No.6 Herberge <여인숙에서>
No.7 Vogel als Prophet <예언하는 새>
No.8 Jagdlied <사냥의 노래>
No.9 Abschied <이별>
슈만은 전체 9개의 곡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B플랫장조를 기준으로 각곡의 조성을 적절히 배치하였고, 제5곡과 제6곡 및 제9곡, 제3곡과 제9곡 등에서 서로 유사한 음악적 소재를 사용하고 마지막 곡인 제9곡의 끝에서는 제1곡의 마지막 부분을 닮은 음형을 사용하여 수미일관된 듯한 느낌을 노리고 있기도 합니다.
1곡 ‘숲의 입구’ Eintritt
'너무 빠르지 않게'로 지시되어 있는 곡으로 분위기는 매우 낭만적이지만, 숲속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의 기대감과 불안감을 나타낸 듯한 분위기이며, 그 속에서 숲의 신비를 노래한다. B♭장조의 4/4박자 악곡으로, ‘너무 빠르지 않게’라는 지시어가 첨가되어 있다. 신비로운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느끼게 되는 사냥꾼의 기대감과 불안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 오프닝의 서정적인 선율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숲의 정경을 묘사하고, 점차 고조되는 긴장감은 신비로운 아름다움 뒤에 숨어 있는 미지의 위험에 대한 불안을 표현한다. 또한 스타카토와 부점리듬이 어우러진 진행이 사냥을 앞둔 기대감을 활기차게 그리고 있다.
2곡 ‘숨어있는 사냥꾼’ Jager auf der Lauer
수풀 뒤에 숨어서 사냥감을 기다리는 사냥꾼의 긴장감과 사냥개의 활약을 묘사한 악곡으로, 힘찬 오프닝과 잦은 리듬 변화를 보여준다. 사냥거리를 노리며 엎드려 기다리고 있는 사냥꾼과 사냥개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역시 사냥곡답게 ‘대단히 활기차게’로 지시되어 있다.
3곡 ‘고독한 꽃’ Einsame Blumen
3성부로 된 주제는 아름답지만 서정적이다. 쓸쓸히 피어 있는 꽃들을 표현하듯 곡은 ‘단순하게’로 지시되어 있다. 숲속에 쓸쓸하게 피어있는 꽃을 묘사한 곡으로, 2/4박자의 단순한 구성으로 제시되는 선율이 들꽃의 소박함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3성부로 이루어진 텍스처는 단순해 보이는 외면 속에 숨겨진 깊이 있는 사색과 아름다움을 암시한다.
4곡 ‘저주받은 장소’ Verrufene Stelle
곡은 어둡고 음산한 풍경을 그려내고 있고 ‘아주 느리게’로 지시되어 있다. 느린 d단조로 진행되는 이 곡의 악보에는, 독일의 극작가 프리드리히 헵벨의 시가 첨부되어 있다. “그렇게 높이 피어 있는 꽃도 여기서는 주검처럼 창백하다.... 그 색은 대지에서 인간의 피를 삼킨 것이다.”라는 헵벨의 시는, 앞의 곡에서 묘사한 아름다운 꽃이 비극과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겹점음표와 잦은 불협화음이 이러한 위협을 절묘하게 그린다.
<가사> 그렇게 높게 피어 있는 꽃도 여기서는 주검처럼 창백하다. 한복판에 단 한 송이의 꽃만이 빨간색으로 피어 있다. 그 색은 태양으로부터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태양의 빛마저 받은 일도 없다. 그 색은 대지에서, 그것은 인간의 피를 빨아 삼킨 것이다.
5곡 ‘익숙한 풍경’ Freundliche Landschaft
앞서 제시된 불길한 느낌을 떨쳐버리듯 빠르고 밝은 선율이 자유롭고 활기찬 심경을 그린다. 매우 밝은 풍경을 그리고 있다. 곡은 ‘빠르게’로 지시되어 있으며, 4마디의 서주 후, 오른손의 주제가 나타나고 이것이 곡 전체에 자유롭게 전개된다.
6곡 ‘숙소’ Herberge
다양한 선율들이 어우러지면서 사냥꾼들의 숙소에 머무는 여러 군상들의 면모를 탁월하게 그려낸다. 3부 형식을 취하고 있는 곡이며, ‘보통 빠르게’로 지시되어 있다. 숙소에 머무는 유쾌한 나그네들을 그리고 있다.
7곡 ‘예언의 새’ Vogel als Prophet
전곡 중 가장 인상적인 곡이며, ‘느리고, 매우 부드럽게’로 지시되어 있다. 인상적인 주제의 울림은 예언의 새의 울림소리를 나타낸다. g단조의 느린 선율로 시작되는 이 곡은 독특한 모티브를 통해 예언을 제시하는 신비로운 새의 노래를 묘사하고 있다. 모호한 조성감을 가지는 반음계와 아르페지오로 이루어진 모티브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으며, 느린 템포 역시 이 모호한 느낌을 강조하는 데 일조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악곡으로, 초기 독일 낭만주의자들이 숲에 대해 느꼈던 모순된 감정을 가장 함축적이고 가장 아름답게 묘사한 음악으로 평가된다.
8곡 ‘사냥의 노래’ Jagdlied
사냥을 묘사한 곡답게 ‘빠르고 힘차게’로 지시되어 있어 활달하다. 호른이 울리는듯한 화음으로 시작한다. 좌우에 선의 교차가 이루어지며, 왼손으로 나타나는 음의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6/8박자의 빠른 화음진행이 마치 사냥나팔소리를 묘사한 듯한 느낌을 주면서 시작하는 이 곡은 활기찬 사냥의 장면을 그리고 있다. E♭장조의 조성 역시 사냥호른을 염두에 두었음을 암시한다. 이 활기찬 오프닝에 이어 A♭장조로 전조되면서 왼손의 선율이 강조된다. 이를 통해 남성적인 움직임이 부각되면서 사냥의 정경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전반적으로 화성적인 호모포니를 이루지만 중간부분에서는 대위법적인 서법이 나타난다.
9곡 ‘이별’ Abschied
2마디의 서주로 시작하는 밝은 곡인데, ‘빠르지 않게’로 지시되어 있다. 중간부에 부드러운 대위법이 얽혀 있다. 곡은 숲이 점점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되는 것처럼 조용히 끝난다. 2마디의 짤막한 서주로 시작되는 악곡으로, ‘이별’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전반적으로 밝고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냥을 마친 무리들이 즐거움을 준 신비로운 숲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듯 부드럽고 고요한 진행으로 악곡이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