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요새'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인트라무로스' 내 위치한 요새로, 스페인 점령 당시 초대 필리핀 총독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에 의해 1593년 건설되었다. 이후 스페인 군대 기지, 미 육군 본부, 지하 감옥 등 다양한 시설로 사용되었으며, 1950년경 제2차 세계대전으로 훼손된 성문과 성벽을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벽에 올라서면 '파시그 강'의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멋진 기념사진을 남기기도 좋다.
스페인 식민 정부에 대항했던 독립운동가 '호세 리잘'이 수감되었던 장소로도 알려져 있으며, 그를 추모함과 동시에 비운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많은 사람이 방문한다. 요새 내에는 호세 리잘을 기리는 사원과 조각상을 비롯해 그가 사형을 받으러 걸어갔던 발자취가 바닥에 새겨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산티아고 요새의 지하감옥 복원 공사를 마치고 일반에 공개되었다. 1593년에 산티아고 요새가 지어질 때만 해도 스페인 군대에서는 이 공간을 탄약과 화약을 보관하는 보관소로 이용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페인 군인들은 곧 공간 이용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필리핀 특유의 습한 날씨와 파식 강(Pasig River)의 영향으로 지하 보관소의 습도가 너무 높았던 것이다. 벽에 생긴 물기가 바닥으로 흘러 물웅덩이를 만들 정도였으니 탄약을 보관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1715년에 스페인 군인들은 새로 탄약보관소를 건설했고, 이 공간을 감옥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감옥에 있던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호세 리잘이다. 1896년 12월 30일, 필리핀의 독립 영웅인 호세 리잘(José Rizal)이 루네타 파크(리잘파크)에서 공개 처형당했다. 호세 리잘은 처형되기 전까지 산티아고 요새 감옥에 수감되어야만 했다.
지하감옥이란 공간은 그 이름부터 으스스하지만, 스페인 군대가 있을 때만 해도 일본이 필리핀을 점령했을 시기(1942~1945)만큼 잔인하고 으스스하지는 않았다. 일본군은 산티아고 요새의 지하감옥을 일본에 저항한 독립운동가를 고문하고 처형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300㎡(약 90평) 남짓한 공간은 100여 명을 수용할 규모에 불과했지만, 얼마나 많은 포로를 수감했는지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질식사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군이 산티아고 요새를 다시 찾았을 때 발견한 것은 수북하게 쌓여 있는 시체였다. 얼마나 많은 전쟁 포로가 이곳에서 죽어가야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발견된 시체만 해도 약 600여 구에 달한다고 한다. 지하 감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보면 하얀 십자가가 하나 세워져 있는데, 지하감옥에서 죽은 사람들의 혼을 기리기 위한 십자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