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음악/올드가요

불후의 명곡 《아침이슬》[양희은/김민기/임재범/곽진언]

想像 2022. 6. 2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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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로서의 「아침이슬」은 양희은이 1971년 그녀의 첫 독집음반 ‘양희은 고운노래모음’에서 발표한 후, 그해 가을 창작자인 김민기의 첫 독집음반에도 수록되어 알려졌다. 양희은 고운노래모음”은 김민기가 멜로디 파트를 맡고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이 12줄 스틸기타로 리듬을 맡아 뚝섬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다. 남산 어린이회관 앞 광장에서 재킷 사진을 찍고 4곡의 김민기 창작곡과 ‘오비스 케빈’에서 주로 불렀던 ‘일곱송이 수선화’ 등 6곡의 번안곡 등 총 10곡을 수록해 3개월 후 세상에 나왔다. 

 

재킷 속에 등장한 양희은의 첫 모습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머슴 같은 청바지, 청남방, 청색 운동화 그리고 생머리에 통기타가 전부였다. 하지만 맑고 청아한 보컬로 부른 이 환상적 콤비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시적인 노랫말은 동시대 젊은이들의 가슴을 쳤다.

 

붉은 태양이 북측의 인사를 암시한다는 억지 해석이 내려졌다. 대중매체와 음반 시장에서 사라졌으나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이 노래는, 이후 구전 등을 통해 대학생과 지식인 사이에서 널리 애창되는 대표적인 민중가요가 되었고, 시위 현장에서도 많이 불려졌다.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5년부터 1980년대까지는 사람 많은 곳에서 「아침이슬」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시위로 간주될 정도였다.

 

이렇게 민중가요로 존재방식이 바뀐 이 노래는,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수용자들에 의해 그 ‘시련’과 ‘나 이제 가노라’의 선언이 민주화운동의 그것으로 적극적으로 해석되었고, 창작자 김민기는 이 노래만으로도 오랫동안 합법적 활동이 불가능한 불온한 인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이 노래를 불온시할수록 이 노래의 높은 인기는 계속 유지되었다. 1980년대 초중반, 김민기의 1971년 음반은 중고음반 시장에서 최고가로 거래되었고, 「아침이슬」은 1990년대 초까지 각종 설문조사에서 한국의 대학생과 젊은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로 꼽혔다. 1987년 6월시민항쟁으로 약간의 민주화 조치가 이루어질 시점 이루어진 「아침이슬」의 해금이 민주화 조치의 상징으로 이야기될 정도로, 이 노래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노래가 되었다.

 

[가사]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양희은
김민기

 

임재범

 

곽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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