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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 영화같은 삶을 살다 간 팝의 황제

想像 2020. 10. 2.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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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 음악 여정은 주지하다시피 1963년 4명의 형들과 함께 결성했던 패밀리 그룹 잭슨 파이브(Jackson 5)로 시작되었다. 5살이라는 어린 나이와 그에 걸맞지 않게 리드 보컬을 맡았던 그는 너무나도 빼어났던 가창력과 귀여운 춤 실력 때문에 언제나 세간의 관심대상이었다. 지방을 중심으로 명성을 쌓아가던 잭슨 파이브와 마이클은 1969년 베리 고디의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하면서 본격적으로 팝 음악계에 뛰어들었다.

 

첫 넘버 원 싱글 ‘I want you back’에 이어 ‘ABC’ ‘The love you save’ ‘I’ll be there’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2년 간 그룹활동에 전념하던 마이클 잭슨은 1971년 12월 탐라-모타운 레코드와 솔로 계약을 체결했다. 1971년 데뷔곡 ‘Got to be there’를 발표해 싱글차트 4위에 랭크시킨 후 ‘Rockin’ Robin’, ‘Ain’t no sunshine’, ‘Ben’, ‘I wanna be where you are’,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솔로와 그룹활동을 성공적으로 병행했다.

 

마이클 잭슨이 변성기가 지나고 성인으로 접어들자 잭슨 파이브도 점점 퇴색해갔고, 1979년 마이클은 드디어 성인으로서 첫 음반 을 발표했다. 1977년 흑인판 <오즈의 마법사>였던 뮤지컬 영화 <더 위즈(The Wiz)> 사운드트랙을 통해 만났던 퀸시 존스가 앨범의 프로듀서로 동참해 마이클 잭슨의 ‘성인신고작’을 한결 윤택하게 빛냈다.

 

1982년 12월에 발표된 <Thriller>는 ‘팝의 황제’라는 마이클 잭슨의 원대한 꿈을 실현시킨 회심작이었다. 퀸시 존스와 마이클 잭슨의 공동 프로듀스작인 그 앨범은 37주간이나 앨범차트 정상을 지켰으며 현재까지 미국에서만 2천6백만장의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또한 전례가 없는 무려 7곡이 싱글 발매되어 모두 차트 10위 내에 올랐고 그 중 2곡이 정상을 차지했다. 그 앨범으로 마이클 잭슨은 198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역대최다인 7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2000년 산타나와 타이 기록).

 

‘문워크(Moonwalk)’라는 독창적인 댄스를 유행시킨 ‘Billie Jean’과 에디 밴 헤일런의 기타 속주가 흐르는 ‘Beat it’이 차트 1위에 올랐으며, 첫 싱글로서 폴 매카트니와의 듀엣 곡이었던 ‘The girl is mine’(2위), ‘Wanna be startin’ somethin’(5위), ‘Human nature’(7위), ‘P.Y.T.’(10위), 마지막 싱글 ‘Thriller’(4위) 등이 연속해서 히트했다. 백인 최고스타 폴 매카트니와 록 기타의 거장 에드워드 밴 헤일런을 끌어들였다는 것은 크로스오버는 물론, 더 많은 수요층에게 다가가려는 그의 음악적 야심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Billie Jean’의 뮤직비디오는 MTV가 백인 록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만을 방영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틀었던 역사적인 첫 흑인 뮤직비디오였다. 한편 1984년 4월에는 폴카 음악과 ‘패러디의 대가’인 얀코빅(‘Weird Al’ Yankovic)이 ‘Beat it’을 패러디한 ‘Eat it’을 발표해 싱글차트 12위에 진입시키기도 했다.

 

영국의 난민구호 자선 프로젝트였던 밴드 에이드(Band Aid)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의 성공에 자극 받은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는 막강한 스타들을 규합, 유에스 포 아프리카(USA For Africa)를 조직해 1985년 1월 그 미국 버전인 ‘We are the world’를 만들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 그 해 8월에는 그간 음악동지였던 폴 매카트니와의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 마이클 잭슨이 ‘레논/매카트니’ 크레딧으로 된 250곡이 넘는 비틀스 곡들의 판권을 4천7백5십만 달러에 사버렸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해 협력관계가 깨졌음은 물론 현재까지도 그 둘은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갱스터 영화의 대부 마틴 스코시즈가 감독한 17분짜리 뮤직비디오 ‘Bad’가 1987년 2월에 선보였고, 8월에는 분위기가 한층 어두워졌으며 록적인 느낌이 강화된 새 앨범 가 발매되었다. 퀸시 존스가 세 번째로 프로듀스를 맡은 이 앨범은 전작의 흥행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8백만장 이상 팔려나가는 성공을 거둔다. 특히 무려 5곡이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해 2곡이 1위에 오른 전작을 능가했다.

 

여성 보컬 시다 가렛과 호흡을 맞춘 ‘I just can’t stop loving you’를 시작으로 타이틀곡 ‘Bad’, 흥겨운 핑거 스냅이 시종일관 등장하는 ‘The way you make me feel’, 시다 가렛과 글렌 발라드가 공동 작곡한 발라드 넘버 ‘Man in the mirror’, 음산한 분위기가 압권인 ‘Dirty Diana’ 등 모두 5곡이 차례로 정상에 등극했다. 그 외에도 ‘Smooth criminal’, ‘Leave me alone’ 등 수록곡 전반이 주목받았다. 1988년 12월에는 마이클 잭슨과 존 레논의 아들 숀 레논 등이 출연한 영화 <문워커(Moonwalker)>가 전 세계에 개봉되었다.

 

보다 자신 고유의 음악을 찾기 위해 퀸시 존스와 헤어진 마이클 잭슨은 1991년 홀로서기를 시도한 첫 작품 를 발표한다. 젊은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를 메인 프로듀서로 받아들여 만든 이 음반은 마이클 특유의 사운드에 최신식 힙 합과 랩, 메탈 음악 등이 합쳐졌다. 작곡과 제작에 있어 마이클 잭슨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인 음반이었지만 너바나 같은 그룹의 얼터너티브 록 태풍에 휘말려 전작들의 파괴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emember the time’, ‘Jam’, ‘In the closet’ 등 테디 라일리가 솜씨를 발휘한 곡들과 영화 <프리 윌리>의 주제곡으로 쓰였던 ‘Will you be there’ 같은 곡들은 대중들과 평단으로부터 동시에 큰사랑을 받았다. 또한 ‘Black or white’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모핑’ 기법 같은 놀라운 기법들은 향후 영상 발전에 디딤돌이 되었으며 에서부터 구현된 환상적인 스튜디오 기술로 다시 한번 녹음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마이클 잭슨은 자신이 원하는 악기음색과 음원을 찾을 때까지 스튜디오 작업에 매달렸으며, 코러스 만해도 음색을 바꿔가며 다채롭고 풍부하게 꾸며 일반 제작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녹음기술만으로 볼 때는 모든 ‘프로듀서와 엔지니어의 드림’이었다.

 

해가 지지 않는 성공가도를 달리던 마이클 잭슨의 기세가 한풀 꺾인 것은 1993년의 일이다. 그 해 8월 바로 어린이 성추행 사건이 터진 것. 이 사건은 그간 깨끗한 이미지를 이어가던 그에게 막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한동안 그는 언론의 집중포화에 시달렸다. 그러다 얼마 후 갑작스레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했고, 이에 매스컴은 ‘여론 무마용’이라며 그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거기다 1995년 음반 '히스토리'(History)와 2001년 '인빈서블'(Invincible) 등의 실패가 겹치면서 쇠락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후 그는 할리우드 파파라치의 제물이 되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 잦은 성형수술에 따른 부작용과 기행 등으로 놀림감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그는 2003년 또다시 아동 성추행 혐의로 기소되면서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이 사건은 2005년 배심원단에 의해 무죄 평결이 났지만 '위대한 팝 황제'로서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됐다. 그는 2006년 팬 앞에서 잠깐 공연을 펼쳤지만 예전의 자신감을 보이지도 못했다. 당시 런던 월드뮤직어워즈 행사에서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를 부르기로 했으나 몇 소절만 부르고 무대를 떠나고 말았다.

 

명예와 함께 돈도 잃었다. 수많은 소송에 휘말리며 막대한 자산을 날렸고 빚은 늘어가면서 파산 위기에 처했다. 결국 2008년 11월에는 공을 들여 가꿔왔던 미국 캘리포니아 대저택 네버랜드를 잃었다. 비슷한 시기에 바레인 왕자로부터 계약위반과 관련한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코 성형수술의 후유증으로 슈퍼박테리아 감염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도도 터져 나왔다. 지난 4월에는 애장품을 경매에 내 놓는 '수모'까지 겪게 됐다.

 

한때  '팝의 황제'로 불리었으나 말년엔 고통스런 삶을 살았던 비운의 마이클 잭슨이 LA 현지 시각으로 2009년 6월 25일 오후 2시26분, 우리 시각으로는 6월26일 아침 6시 26분에 우리 곁을 떠났다.

 

최근 마이클 잭슨 사후에 나온 두 번째 앨범 '엑스케이프(XSCAPE)'가 13일 소니뮤직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발매됐다. 소니뮤직 산하 에픽 레코드의 대표 겸 CEO인 엘 에이 리드가 기획했다. 리드는 잭슨 유가족이 발견한 고인의 미공개 작업물을 열람할 권한을 부여받았고 40년에 걸쳐 잭슨의 보컬이 들어간 작업물을 자유롭게 살필 수 있었다.

 

리드는 이 작업물에서 곡들을 골라 프로듀서들에게 전달, 현대적인 사운드를 더하되 잭슨의 오리지낼리티를 살리는 컨템포라이징, 즉 현대화 작업을 했다. 총 8곡이 실렸다. 모두 1983년부터 1999년 사이 녹음된 곡들로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신곡이다.

 

 

Michael Jackson HIStory - PAST, PRESENT AND FUTURE - BOOK I

01. Billie jean
02. The way you make me feel
03. Black or white
04. Rock with you
05. She's out of my life
06. Bad
07. I just can't stop loving you
08. Man in the mirror
09. Thriller
10. Beat it
11. The girl is mine
12. Remember the time
13. Don't stop 'til you get enough
14. Wanna be startin' somethin'
15. Heal the world
16. Scream
17. They don`t care about us
18. Stranger in moscow
19. This time around
20. Earth song
21. D.S.
22. Money
23. Come together
24. You are not alone
25. Childhood : theme from `free willy 2`
26. Tabloid junkie
27. 2 bad
28. History
29. Little susie
30. 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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