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useppe Verdi, 1813∼1901
Nabucco / Act 3 - "Va, pensiero, sull'ali dorate"
베르디가 오페라 <나부코>를 작곡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순전히 스칼라극장의 지배인으로 있던 바르톨로메 메렐리의 집요한 설득덕분이었다. 당시 베르디는 1840년에 초연한 두 번째 오페라 <하루만의 임금님>의 완전한 실패로 실의에 빠져 있었다. 이 때 메렐리는 나부코 왕의 행적을 오페라 대본으로 만든 이탈리아 사람 솔레라의 작품을 들고 베르디에게 접근했다. 이 대본에 강렬한 애착을 느끼고 있던 메렐리는 처음에 오토 니콜라이(빈 필하모니의 창립자)에게 작곡을 의뢰했다가 거부당한 적이 있지만, 이에 포기하지 않고 다시 베르디를 찾았던 것이다.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오페라 대본을 받아든 베르디는 이 대본을 읽어본 후 의욕을 되찾아 작곡의 붓을 들었다. 그렇게 해서 1841년 말경에는 전곡을 완성하여 메렐리에게 넘겨줄 수 있었다.
베르디가 이 오페라에 푹 빠지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당시의 북이탈리아 사정이 오스트리아의 압제를 물리치고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전국민적인 애국운동으로 온통 술렁거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민족의식과 자유의지에의 열망이 베르디의 오페라 정신을 지배하고 있던 중 <나부코>의 대본을 읽고 완전히 매혹 당해 버린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고통과 환난, 그런 중에서도 민족의식과 신앙을 잃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는 그들의 강인한 결속력에 베르디 스스로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재기를 다져야 하는 절대적인 위기상황 속에서 <나부코>를 만났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메렐리의 끈질긴 설득과 권유가 큰 역할을 했지만 일단 작곡에 손을 댄 베르디는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방대한 스케일과 스펙터클한 무대규모를 마음껏 구사하면서 유대왕국의 멸망에 따른 나부코의 행적을 쫓는 그의 음악 정신은 뜨거운 불꽃을 피어 올리고 있었다. 뒷날 이탈리아의 시인 카루두치는 '패기 넘치는 베르디, 오페라 예술의 첫 고동' 이라고 써서 이러한 그를 찬양하기도 했다.
완성된 오페라 <나부코>는 1842년 3월 9일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감격적인 초연이 이루어졌는데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후 무려 67회나 연속 상연될 정도로 오페라 팬들을 열광시켰는데, 특히 제 3막에서 부르는 '노예들의 합창'은 단번에 이탈리아 국민들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것은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북이탈리아 국민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나아가 통일을 이룩하는 큰 힘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1901년 베르디가 죽었을 때 토스카니니가 이 합창을 지휘하여 대 작곡가의 영전에 레퀴엠으로 올려준 것은 또다른 감동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