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의 4일을 보내고 호텔 조식을 먹고 다음 여행지인 빈(Wien)으로 이동한다. 오스트리아의 수도로 1세기에 로마 제국의 군영지가 축조된 이래 20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빈(비엔나)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650년에 걸친 영광의 도읍지였으며, 과거의 화려한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 오페라극장, 대학등의 웅장한 건물을 간직하고 있다.
다뉴브강 연안에 위치해 있는 빈은 오스트리아의 수도로 행정, 금융, 상업의 중심지이다. 총면적 414㎢에 인구는 약 160만명 살고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고 있는 음악의 도시이다. 언어는 독일어이지만 영어가 널리 쓰여지며, 60%의 시민이 크리스쳔이다. 시민들은 일반적으로 느긋하고 우호적이고 친절하다.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환상도로를 따라 관광명소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도나우 운하가 통과한다. 관광지가 시내중심에 모여있어 거의 도보로 명소를 둘러볼 수 있다.
프하역에서 8시 48분 비엔나행 열차에 오른다. 오늘도 유레일패스를 이용해 1등석에서 편하게 간다.
열차안에는 식당칸이 따로 있었고 무엇보다 좌석에서 음식과 식음료를 주문하면 자리까지 갖다 준다는 것. 열차내에 메뉴판이 따로 비치되어 있어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기만 하면 된다. 계산은 식사후 나중에 따로 좌석으로 직원이 와서 받아가므로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
빈에 도착하니 12시 49분이다. 프라하에서 빈까지는 기차로 거의 4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고속급행열차이다. 빈역에 도착하니 빈역사는 엄청 규모도 크고 현대적이다.
빈역과 연결된 지하철역에서 지하철1호선으로 오늘 숙박할 호텔이 있는 목적지인 'Karlsplatz'역까지 이동한다.
Karlsplatz역에 도착해서 숙박호텔인 Hotel Motel One Wien Staatsoper에다 짐만 맡겨놓고 근처 구경 및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Hotel Motel One Wien Staatsoper에서는 early check-in이 되지 않고 3시나 되야 check-in이 가능했다)
호텔 바로 앞에 있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Wiener Staatsoper). 음악의 도시 빈을 대표하는 오페라 극장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0년에 걸쳐 정부, 시청, 시민들이 눈물겨운 협력을 한 보람으로 전쟁에서 재건되어 1955년 가을에 복구되어 개장하였다. 궁정 가극장의 후신인 이 극장을 사랑하는 빈 시민의 희망에 따라 외관은 옛모습대로 복원하였으며 외벽의 새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상당한 비용을 들여 고색창연한 옛모습의 아취를 살렸다. 그러나 시설은 최신식이며 객석의 3배나 되는 광대한 무대는 몇 개로 구분되어 짧은 시간에 자유롭게 움직여 장면 전환을 빨리 할 수 있도록 장치하였다. 객석은 2,200여개로 1층 뒤쪽에 입석이 있고 천장 객석에는 열렬한 팬들을 위해 악보를 볼 수 있도록 배려가 되어 있다. 예로부터 명지휘자와 많은 명가수가 이 곳에서 공연을 가졌으며 빈 필하모닉은 이 극장의 전속 관현악단이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을 지나 유명한 'Café Sacher Wien'를 찾았지만 마치 시설보수중이어서 인근해 있는 또 다른 맛집인 Café Mozart를 찾았다.
Café Mozart에서 간단히 요리 2개와 맥주, 그리고 Sacher Torte, 그리고 빈의 명물 비엔나 커피 EisKaffee와 Nuss-Krokant Becher를 시켜 먹었다. 비엔나커피는 생크림이 너무 많이 들어가 사실 한국인 입맛엔 별로이다.
Café Mozart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빈에서의 첫날 숙박 호텔인 Hotel Motel One Wien Staatsoper로 돌아가 check-in을 한다. 호텔 내부는 빈 중심가에 위치해서 그런지 굉장히 우아하고 예쁘다. 그런데 방은 너무 좁고 어메니티고 거의 없어 불편했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본격적인 빈 시가지 투어에 나선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을 다시 지나 카르트너 거리(Karntner Strasse)를 구경한다. 카르트너 거리는 한국으로 치면 명동 정도로. 슈테판 대성당 광장에서 국립 오페라 하우스에 이르는 600m 길이의 거리이다. 관광객이라면 꼭 한번은 들리는 관광 필수 코스이며, 비엔나 시민들도 여가시간이나 주말 시간을 보내는 번화가다. 쇼핑의 파라다이스라고 할 수 있는 거리로 세계 유명 디자이너의 상품, 가치있는 골동품 또는 재미있고 앙증스러운 기념품 등이 사람들의 시선을 멈출 수 없게 한다.
카르트너 거리를 지나면서 오이겐왕자의 겨울궁전(Winterpalais des Prinzen Eugen)을 한번 구경하고 빈의 대표적 관광명소인 슈테판 대성당(Domkirche St. Stephan)으로 향한다.
빈의 상징인 슈테판 성당은 137m에 달하는 첨탑이 있는 거대한 사원으로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양식의 건물이다. 그 웅장함에서 신에 대한 간절한 믿음과 노고의 땀을 엿볼 수 있다. 빈의 상징으로 65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약 1359년에 완성되었다. 사원의 내부는 석조 부조의 설교대가 있으며,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이 매우 아름답다. 1450년에 만들어진 지하묘지에는 흑사병으로 죽은 약 2,000구의 유골과 합스부르크 왕가 유해 가운데 심장 등의 내장이 보관되어 있다. 빈의 가장 번화한 거리인 케른트너 거리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으며, 모짜르트의 결혼식이 바로 이곳에서 있었기에 더욱 유명해졌다.
슈테판 성당 내부까지 둘러 보고는 페스트조일레(Wiener Pestsäule)로 향했다. 슈테판 성당 정문에서 대각선으로 걸어가다 오른쪽으로 그라벤 거리가 시작되는데, 그라벤 거리 중간쯤 페스트조일레이 위치해 있다. 그라벤의 페스트조일레은 아마 비엔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작품일 것이다. 1679년 비엔나에 대역병이 돌자 역병을 피해 비엔나를 떠나던 레오폴드1세 황제는 만일 역병이 곧 사라지면 감사의 탑을 세워 만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알리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역병이 물러난 1683년 레오폴드 황제는 거장 마티아스 라우흐밀러(Matthias Rauchmiller)에게 지시하여 정식으로 대리석 페스트조일레를 건립토록 했다. 그러나 라우흐밀러는 1686년 천사 몇 명만 조각해 놓은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기존의 설계에 대한 변경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후 높이 69피트의 페스트조일레은 몇 명의 조각가들이 분담하여 건설하게 되었다.
페스트조일레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들어가 있는 성 페터 광장에는 성 페터 성당(Katholische Kirche St. Peter)이 있다. 11세기에 건립된 성 페터 교회는 비엔나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서 18세기에 힐데브란트 등에 의해 개축되었다. 로드마이어가 그린 천장의 프레스코화 「마리아 승천」과 제단의 조각은 바로크 예술의 백미. 모차르트가 미사곡을 연주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성 페터 성당을 구경하고 나서는 되돌아 나와 오른쪽 길을 따라 조그만 직진하면 오스트리아 황제들이 기거했던 호프부르크 왕궁이 나온다.
현재는 대통령 공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호프부르크 왕궁은 비엔나 시민이나 일반 관광객들이 굉장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1220년경에 지어졌으며 거의 100년간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호프부르크의 건물은 시대별로 거처했던 군주들에 의해 다양한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예배당은 15C 중반, 아말리엔호프, 스탈부르크는 16C경, 레오폴트의 저택은 17C, 마리아 테레지아 저택은 18C, 네우 브르그는 19-20C에 만들어 졌다. 외관은 장엄하며 매우 간결하며, 주변의 조망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 황제가 기거했던 곳으로,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로 이용되고 있다. 미카엘 광장 방향의 반원형 문은 4개의 헤라클레스 조각상과 정면 좌측에 힘과 용기를 나타내는 2개의 큰 분수로 장식되어 있으며, 중앙에 위치한 아치는 금도금한 청동상들이 장식되어 있다.
왕궁앞 미하엘러 광장에는 관광객을 태우는 마차들이 대기하고 있고 광장 건너편에는 아돌프 루스(Adolf Loos)가 건축한 루스하우스가 있다. 미하엘러 광장에는 몇년전 로마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어 발굴 보존해 두고 있다.
황제의 아파트(Kaiserappertment). 황제의 아파트는 프란츠 요셉 황제와 엘리자베트 황비 등 역제 황제가 살았던 곳으로 지금은 20개의 방들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아파트 내부에는 침실, 회의실, 서재, 황제의 흡연실 등이 있으며 18세에 황제에 오른 프란츠 요셉은 무려 68년을 이곳에서 오스트리아를 통치했다. 아파트 마당에는 딸을 나폴레옹에게 시집보낸 프란츠 1세의 동상이 서 있다.
신 왕궁(Neue Burg). 반달 모양의 신 왕궁은 칼 폰 하센아우어(Carl von Hasenauer)와 곧프리드 셈퍼(Gottfried Semper)에 의해 1881년 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합스브루크 왕가의 종말이 가까웠던 1913년에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완성된 신 왕궁은 합스브룩에서는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1918년 왕가의 종말을 맞았다. 왕궁앞 영웅 광장(Helden Platz)은 지금까지도 국가의 대 소사를 치뤄 내고 있으며, 1938년 히틀러는 신왕궁 2층 테라스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합병을 선포한다. 히틀러의 합병 발표 당시 영웅 광장에는 30만의 인파가 모여들어 역사의 현장을 지켜 봤다.
신 왕궁앞 영웅광장은 합스브룩 통치시절 가장 강력한 군대와 넓은 영토를 소유하게 한 사보이 공국 출신의 오이겐장군의 동상과 나폴레옹과의 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칼 장군의 동상이 마주보며 서 있다. 현재 신왕궁에는 국립도서관, 악기 박물관, 민속 박물관, 무기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신 왕궁(Neue Burg)에서 신 왕궁의 정문격인 Äußeres Burgtor을 지나면
도로 하나를 건너면 바로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Maria-Theresien-Platz)가 보인다. 이 광장의 이름은 프란츠 1세의 아내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1717~1780)에서 딴 것이다. 테레지아는 오스트리아를 다스렸던 합스부르크 집안의 유일한 계승자였으며 남편 프란츠 1세와 사실상 나라를 공동으로 다스린 통치자였다.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 좌우로는 빈 미술사 박물관과 빈 자연사 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오스트리아의 황제였던 프란츠 요제프 1세(Franz Joseph I, 1830~1916)가 빈 자연사 박물관과 빈 미술사 박물관을 함께 세웠다. 두 박물관은 광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으며 모양도 같은 쌍둥이 건물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까지 관광을 마치고 무더운 날씨 탓에 호텔로 되돌아 왔다. 호텔에서 좀 쉬다가 날이 어두어지자 야경이 아름답다는 빈시청을 보려 나간다. 트램을 타고 도착하니 수많은 인파로 빈시청사앞이 발디딜 틈조차 없이 혼잡하다.
아래사진은 빈시청 맞은편의 왕궁 극장(Burgtheater). 왕궁 극장은 마리아테레지아시대 빈 최초 극장이었다가 1888년 신바로크 양식으로 개축되었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오페라 하우스와 마찬가지로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었다가 복구된 후 현재는 연극 전용극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괴테, 쉴러, 섹스피어 등 대문호들의 작품들이 최고의 배우들에 의해 공연 되며 85개의 입석을 포함해 1125개의 좌석이 있다.
예쁜 야경을 기대하고 갔는데 빈시청은 불이 꺼져 있다. 그리고 빈시청 앞 광장은 수많은 빈시민들로 만원. 모두 맥주와 가벼운 스낵을 들면서 시원한 여름밤을 즐기고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간 날이 빈 필름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날이었다. 빈시청 정문에 대형스크린이 설치되어 있고 스크린을 중심으로 수많은 빈시민들이 영화제를 즐기고자 기다리고 있었다.
빈시청 주변 공원에도 많은 빈시민들이 나와 맥주한잔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빠질수 있나? 맥주와 약간의 안주거리(소시지)를 사와서 공원에 앉아 먹었다. 맥주한잔을 하고 나서 우리는 다시 호텔쪽으로 걸었다.
아래사진은 빈시청 바로 옆에 있는 오스트리아 의회의사당. 야경이 멋지다
돌아오는 길에 호텔 바로 앞에 있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도 밤이 되니 더 멋있다.
이렇게 야경 투어를 마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내일 일정을 위해 푹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