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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누 리파티 (Dinu Lipatti, 1917~1950, Pianist)

想像 2010. 1. 7.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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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누 리파티 (Dinu Lipatti, 1917~1950)

1950년 10월 16일 프랑스 브장송에서 음악페스티발이 열리고, 콘써트 홀에 한 젊은 피아니스트가 창백한 얼굴에 힘겨운 표정을 하며 나타난다.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그는 이윽고 연주를 시작한다. 먼저 바흐의 파르티타를 첫곡으로 조용하고 엄숙하게 진행이 되는데, 모짜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와 슈베르트의 즉흥곡에 이어 마지막 쇼팽의 왈츠를 연주해 나간다. 그러나 끝곡인 왈츠2번을 남겨놓고 탈진상태에 이르러 결국은 무대를 내려올수 밖에 없었다. 그 피아니스트는 바로 디누 리파티 이다.

디누 리파티는 루마이아의 피아니스트로서 부친이 뛰어난 아마추어 바이올린 주자였으며 어머니도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였다. 3세 때 더듬거리며 일치감치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던 그는 자연스레 음악에 뜻을 두게 되었다. 몸이 약했기 때문에 집에서 폴로리아 무지체스쿠(피아노)와 미하일 조라(작곡)의 가르침을 받은 후 부카레스트 음악원에서 특별입학을 허가 받은 그는 많은 상을 받고 14세에 졸업하였다.

1933년 16살의 나이에 그는 빈 국제음악콩쿨에 참가하게 되는데, 월등한 실력임에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1등상을 놓치게 된다. 당시 심사위원중의 한사람 이었던 코르토는 화를내며 심사위원직을 사퇴하고는 이듬해 8월, 그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파리 고등음악원으로 리파티를 초청하게 된다.

파리에서의 생활은 리파티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큰 의미를 갖는데, 코르토 에게서는 피아노를, 뒤카 에게서는 작곡법을, 블랑제 에게서는 실내악을, 그리고 뮌시 에게서는 지휘법을 교육받게 된것이다. 즉 원숙한 연주자로서 성장할수 있는 계기가 된것이다.

1939년 고등음악원을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하루 12시간 이라는 피나는 연습을 통해 기량을 더욱 높여나갔다. 그러면서 독일,스위스,프랑스, 이탈리아 등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연주활동을 활발히 전개해 나갔다.

1943년, 2차대전이 한창 진행이되면서 정치적인 이유로 그는 스위스로 망명을 가게된다. 이러한 와중에 그에게는 불치의 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바로 백혈병 이었다. 병과의 싸움은 치열했지만, 그의 몸은 회복에서 점차 멀어지게 된다. 그는 죽음을 한해 남겨놓고 마들레느와 조촐한 결혼식을 갖는다. 그리고 이 브장송 페스티발을 마지막 연주로 하고  3달후 추운 겨울날 가족들에 둘러쌓여 눈을 감고 말았다.

그는 처음에는 새로운 곡목을 상상력과 기억에 의해 모든 가능한 연주스타일을 염두해 두면서 연주했고, 그 후 표현상의 염려는 일체 하지 않고 그것을 마디마다 세밀하게 분석했다. 대단히 길고 튼튼한 손과 허약한 체질과는 대조적으로 투사와 같은 어깨 덕분에 그는 어택과 터치를 가감하여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음의 뉘앙스를 연출하고 자신의 감정에 더할 나위 없는 순수한 모습을 연출하였다.

Chopin : Waltz for piano No. 10 in B minor, Op. 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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