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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경주월성과 석빙고 : 쳔년신라의 숨결이 느껴지는 왕궁터

想像 2009. 10. 3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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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월성과 석빙고 : 쳔년신라의 숨결이 느껴지는 왕궁터

경주월성

이 곳은 신라시대에 궁궐이 있었던 곳이다.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하여 '신월성(新月城)' 또는 '월성(月城)'이라 불렸으며, 임금이 사는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시대부터 반월성(半月城)이라 불려 오늘에 이른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瓠公)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석탈해왕(昔脫解王)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석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그 후 파사왕(婆娑王) 22년(101)에 여기에 성을 쌓고 옮긴 다음부터 역대 왕이 이 월성에 살게 되었다. 남쪽으로는 남천이 흘러 자연적인 방어 시설이 되었고, 동쪽·북쪽·서쪽으로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넓은 도랑인 해자(垓字)를 팠다. 남문, 북문, 인화문 등과 임해전(臨海殿)으로 통하던 임해문이 있었으며, 그 밖에 많은 부속 건물들이 있었다. 성 안에는 조선시대 얼음창고인 석빙고가 남아 있다.


경주석빙고

이 석빙고는 조선 영조(英祖) 14년(1738) 월성(月城) 안에 만든 얼음 창고이다. 월성 안의 북쪽 성루 위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길이 19m, 너비 6m, 높이 5.45m의 석실[돌방]은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졌는데 약 1000여 개의 돌이 쓰였고 천장 외부는 봉토의 형상이다.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천장에는 공기 구멍 셋이 있고, 바닥은 물이 빠질 수 있도록 홈을 파서 비스듬하게 만들었다. 출입구는 남쪽에 있고 계단을 통하여 출입하게 되어 있다. 석빙고 출입문 이맛돌에 "숭정기원후재신유추팔월이기개축(崇禎紀元後再辛酉秋八月移基改築)"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영조 17년(1741)에 옮겨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옆에 있는 석비(石碑)에는 "경주 부윤 조명겸(趙明謙)이 얼음 창고를 돌로 만들었다가 3년만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적혀 있다. 현재 석빙고 서쪽으로 약 100m 되는 곳에 옛터가 있다.

계림을 구경하고는 역대 신라왕들이 살았다는 월성으로 올라간다. 마치 성벽같은 북쪽 성루를 조금만 올라가면 평평한 대지가 넓게 펼쳐지는데 여기가 신라의 왕궁이 있던 곳이라 한다.

지금은 그냥 넓은 잔디밭밖에 안보이지만 옛 신라왕궁이 있던 자리라고 하니 하나하나가 무심코 지나치기가 힘들다.


월성 중간쯤에 유명한 석빙고가 있다. 근데 이 석빙고는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로 조선 영조(英祖)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에전에 나도 이 석빙고를 신라시대의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석빙고에서 동편 안압지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안압지와 월성은 서로 붙어 있어 월성에서 내려가 도로 하나만 건너면 된다.


월성에서 안압지쪽으로 내려가면 울창한 숲이 성루처럼 버티고 있고 앞으로 해자가 나 있는 것이 보여 1,000년전 이곳에 왕궁이 있었음을 증명해 준다.


월성에 내려와 불게 물든 가로수길을 걸어서 안압지까지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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