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생상스·브루흐·랄로·비제

생상스 : 교향시 "파에톤", Op.39 [Orchestre National de Lille, Jun Märkl]

想像 2024. 3. 2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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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éton - Symphonic Poem, No. 2, Op. 39
Camille Saint-Saens, 1835 ~ 1921


생상스은 열일곱 살 무렵 당대의 음악가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와의 만남을 계기로, 리스트가 창시한 장르인 ‘교향시’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파에톤”은 생상이 남긴 네 곡의 교향시 중 두 번째 작품에 해당합니다. 

 

파에톤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 헬리오스와 여신 크뤼메네의 아들, 또는 아폴론의 아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국인 프랑스의 문학 뿐 아니라 고대의 신화와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생상은, 자신의 작품에 신화나 성서 속 사건이나 영웅의 이야기를 도입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생상스가 남긴 네 편의 교향시 중에서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 Op.40, 1874)”를 제외한 나머지 세 곡은 모두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입니다. 특히 "파에톤"을 전후해 완성된 교향시 “옴팔레의 물레(Le Rouet d'Omphale Op.31, 1872)”와 “헤라클레스의 청년 시절(La jeunesse d'Hercule Op.50, 1877)”은 모두 고대 그리스의 영웅 헤라클레스를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생상스가 신화를 주제로 작곡한 교향시 "파에톤"은 아폴론 이전의 태양신 헬리오스의 아들 파에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다. 헬리오스의 혼외 자식이었던 파에톤은 아버지 없이 어머니의 손에 의해 양육된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태양신이라는 말을 들었던 파에톤은 어느 날 아버지 헬리오스를 찾아간다. 헬리오스는 성인이 되어 찾아온 아들에게 자신이 아버지라는 것을 인정하고 어떤 소원이든지 들어주겠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아버지가 모는 태양 마차를 몰게 해달라고 한다. 당시 헬리오스는 이른 아침마다 태양 마차를 몰고 동쪽 끝에서 솟아올라 세상에 빛을 뿌리다가 서쪽 바다로 뛰어드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 태양 마차를 모는 일은 제우스도 할 수 없는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헬리오스는 아들을 말렸으나 듣지 않았다. 아버지로서의 약속을 지켜야겠기에 그는 할 수 없이 파에톤에게 태양 마차를 몰도록 했다.

파에톤을 태운 태양 마차가 무한한 우주공간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말들이 짐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을 알고 앞으로 힘껏 돌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황한 파에톤은 그제야 아버지의 말에 손을 댄것을 후회했다. 고삐 풀린 말들은 제멋대로 공중으로 치솟았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태양의 뜨거운 열기로 강과 샘이 마르고, 풀과 나무들이 시들고, 추수한 곡식들이 화염 속에 타들어갔다. 큰 도시의 성곽과 탑이 무너져 내렸다. 파에톤은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되는 것을 보았다. 스스로도 열기 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

이것을 보고 제우스가 용단을 내렸다. 그는 우레 소리를 내고 번쩍이는 전광을 오른손에 쥐고 흔들다가 태양 마차를 몰던 파에톤을 향해 힘껏 던졌다. 머리에 불이 붙은 파에톤은 공중에 빛나는 줄을 그으면서 추락하는 유성과 같이 거꾸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죽은 파에톤의 무덤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졌다.

아버지 헬리오스의 태양 마차를 몰던 파에톤, 제우스의 벼락에 떨어져 이 돌 아래 잠들다. 태양 마차 모는 재간이야 헬리오스에 못 미치나 그 뜻만은 가상하지 않은가.

파에톤의 이야기를 들으면 몇 가지 광경이 떠오른다. 파에톤이 아버지의 태양 마차에 올라 우쭐해하는 모습과, 마차를 끄는 말들이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제멋대로 날뛰는 모습, 그리고 제우스의 벼락을 맞아 한순간에 땅바닥으로 추락하는 모습이다. 이 중에서 가장 강렬하게 예술가들의 창작욕을 자극한 것은 역시 드라 마틱한 추락의 순간이 아닐까 싶다. 미켈란젤로의 "추락하는 파에톤"은 마지막의 이 드라마틱한 순간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다.

 

The Fall Of Phaeton Michelangelo Buonarroti • Painting, 1533, 41×23 cm


생상스의 "파에톤"은 서자 콤플렉스를 가지고 어린 시절을 보낸 파에톤이 아버지의 태양 마차를 타고 스스로 태양신의 아들임을 보란 듯이 과시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짧지만 강렬한 서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마차가 달린다. 생상스의 음악에서 이 부분은 상식적인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일정한 템포로 순차적으로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음형의 반복은 말들이 힘차게 질주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때까지만 해도 파에톤의 태양 마차는 리드미컬하게 제 궤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말들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말들이 난무 하듯이 음악도 난무한다. 통제불능에 빠진 말들이 연출하는 우주의 난장판 쇼가 펼쳐진다. 이렇게 한바탕 쇼가 펼쳐진 후 음악이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든다. 이 느리고 조용한 분위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잠시 뒤에 일어날 파에톤의 재앙에 대한 불안감을 표현한 것일까. 아니면 파에톤의 추락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예비 음모일까. 곧 이어 말들이 다시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고 결국 파에톤은 추락하고 만다.

비록 죽음으로 끝날지언정 생상스의 음악 속에 등장하는 파에톤은 의기양양하고 역동적이고, 한편으로는 귀엽기까지 하다. 이 곡을 통해 생상스가 표현하고자 했던 파에톤은 결국 추락 하고 마는 파에톤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자신을 괴롭혀오던 서자 콤플렉스를 마침내 극복하고 보란 듯이 아버지의 마차를 타고 의기양양 우주 공간을 질주하는 파에톤이 아니었을까. 속도감 있는 생상스의 음악은 파에톤이 펼치는 우주의 드라마를 경쾌한 기분으로 감상하도록 만든다.


Saint-Saëns: Symphonic Poems ℗ 2017 Naxos

 

Orchestre National de Lille, Jun Mär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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