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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감상] 모네의 수련 연작(Les Nymphéas) , 1914~1926

by 想像 2022.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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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연작(Les Nymphéas), 1914~1926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1840~ 1926)

오랑주리 미술관 (Musée de l'Orangerie) 소장  

(https://www.musee-orangerie.fr/)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년 11월 14일-1926년 12월 5일)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로, 인상파의 개척자이며 지도자다.


파리에서 출생하여 소년 시절을 르아브르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부댕의 문하생이 되어 정식 미술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 후 1859년 파리로 나가 피사로·시슬레·르누아르·바지유 등과 사귀게 되었다. 마네의 밝은 화풍에 끌려 밝은 야외 광선 묘사에 주력하였다. 마네를 중심으로 르누아르 및 피사로·드가·세잔 등과 함께 신예술 창조에 전력하였다.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중에는 런던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터너 등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더욱 밝은 색조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귀국 후, 1874년 그의 동료 화가들과 함께 제1회 인상파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출품된 작품이 물체 본래의 색깔을 쓰지 않고, 신선하고 밝은 색채로만 그려진 데 대해 비난과 공격이 쏟아졌다. 특히 모네의 ‘인상, 해돋이’(1872)가 가장 심한 비난을 받았는데, ‘인상파’라는 말은 이때 모네의 작품을 야유한 데서 나온 말이다. 그를 인상파의 창시자, 인상파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다.

 

인상주의 그림과 함께 모네를 특징짓는 작업 스타일이 있는데, 바로 연작이다. 하나의 주제로 여러 점의 그림을 그리는 연작은 시리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모네의 작품세계에서 토대를 이루는 핵심 요소다. 모네는 1877년 무렵, ‘생 라자르역’ 연작을 시작으로 ‘포플러’ 연작, ‘루앙 대성당’ 연작, ‘수련’ 연작에 이르기까지 무려 50년 가까이 연작에 몰두했다. 그림 인생의 대부분을 연작 창작에 바친 셈이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수련’ 연작이다. 모네가 그린 ‘수련’ 작품들은 자연광선인 빛의 미묘한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색깔이 다르게 보이는 인상주의 그림의 특징을 완벽하게 구현한 걸작 중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모네는 첫 아내(카미유)와 상처한 지 4년이 지난 1883년 프랑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센 강변의 시골마을 지베르니에 정착하는데, 이곳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거의 30년을 ‘수련’ 연작에 몰두했다. 

 

지베르니의 모네의 집은 그가 지냈던 집과 작업실, 꽃과 나무로 이루어진 집 앞의 ‘꽃의 정원’, 그리고 연못이 있는 ‘물의 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작품 활동을 하며 부유해진 모네는 1895년 물의 정원 쪽 땅을 사 인공연못을 파고, 수련을 심고, 일본식 다리를 만들어 세웠다. 그는 죽기 전 삼십 여년 동안 이 연못에 피어 있는 수련을 그렸는데 그 양만 해도 250편에 달한다.

 

모네의 대표작 ‘수련’은 오랫동안 수련을 습작했고, 연못과 그 위의 수련, 연못 위에 비친 나무 그림자와 구름 그리고 빛에 따라 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오랫동안 관찰했다.  


빛과 반사가 만들어내는 자연의 변화를 오랫동안 관찰한 나머지 그의 시력은 망가지게 된다. 시력이 나빠지고 백내장에 걸린 그는 세 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청시증과 황시증에 시달리다 왼쪽 눈은 시력을 잃었다. 약하게 시력이 남은 오른쪽 눈만으로 말년에 ‘수련 대장식화’를 완성하고 프랑스 정부에 기증했다.

 

파리 콩코르드 광장 옆의 오랑주리미술관은 ‘수련’ 연작 중 만년에 그린 8점의 초대형 패널 작품(수련 대장식화)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오랑주리미술관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8점의 연작을 전시할 목적으로 지어졌는데, 정작 모네는 개관 5개월을 앞두고 사망해 아쉽게도 2개 전시실을 가득 채운 필생의 역작들을 보지 못했다.

 

모네는 친구이자 프랑스 총리인 조르주 클레망소(1841~1929)에게 1차 세계대전 종전을 기념하여 자신이 그렸던 '수련'을 국가에 국가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모네의 친구이기도 했던 클레망소는 모네에게 더 규모가 큰 장식화를 의뢰하게 된다. 그로 인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모네의 '수련' 연작.

 

모네는 클레망소의 의뢰를 받아들이면서 몇 가지 조건을 붙였었다. 작품은 시민에게 일반 공개할 것. 장식이 없는 하얀 공간을 통해 전시실로 입장하게 할 것. 작품은 자연광 아래에서 감상하게 할 것. 오랑주리 미술관은 모네의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탄생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모네로부터 기증받은 8개의 <수련> 회화 작품들은 현재 오랑주리 미술관 내 2개의 타원형 전시실에 소장되어 있다. 각 작품은 높이 2m, 넓이 91m로 전시실을 둘러싸고 있다.  8개의 작품 모두 동일한 연못을 그린 것이지만 조금씩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왜냐하면 모네는 계절, 일출, 일몰 등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연못의 모습을 표현했기 때문. 원근법은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물결, 꽃, 하늘, 나무에 생동감을 불어 넣고 자연의 무한함을 드러낸다. 또한, 캔버스에 색칠을 하고 이후 또 다른 색상을 겹쳐 발라 입체감을 살렸다. 

 

연못 위에 황금빛으로 꽃을 피운 수련이 햇빛을 받아 눈부신 자태를 뽐내고 있고, 축 늘어진 녹색 버드나무 가지도 인상적이다. 60대 중반 즈음부터 모네의 수련 그림들에서는 연못 주변의 풍경들이 차츰 사라지기 시작하는데, 이 작품을 포함한 수련대장식화 연작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림을 보면 풍경은 전혀 보이지 않고 수련을 중심으로 한 꽃과 나뭇가지, 햇빛에 반사된 형형색색의 물빛들만 화면을 채우고 있다. 특히 백내장 수술 후유증으로 시력 손상의 역경 속에서 미술사에 길이 남을 대작을 기어이 완성한 점이 놀랍다.

 

모네의 수련연작을 보면 그의 붓놀림이 매우 빠름을 볼 수 있다. 내일은 어떻게 빛이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가 항상 붓질을 시작한 첫 장소에서 무조건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그의 환경 조건이 필연적으로 그의 붓질을 빨라지게 했다. 또한 그는 팔레트에서 색을 섞지 않고 캔버스에서 색을 직접 혼합했는데 이것 역시 그림을 빠르게 완성시키기 위한 의도이기도 하고 선명한 색의 효과를 주기 위함이기도 했다.

 

모네는 당시 이 거대한 작업을 포기하고픈 유혹에 시달렸지만 사실 그가 제일 두려웠던 것은 백내장으로 시달리고 있어서 소중한 시력을 상실하지 않을까하는 염려였다. 수술을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결국 1919년 눈 수술을 받고 부분적이나마 시력을 회복하고 작업하며 위안하고자 애썼지만 1926년 86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났다.

 

모네 사망 후 정원을 돌보던 의붓딸이 죽자 이곳은 프랑스 정부의 소유가 되어 황폐해졌지만, 보존 의견이 일어나 20년간 복원이 이루어져 1980년 공개돼 현재에 이른다.

 

오랑주리 미술관
Reflets d'arbres (H. 200, L. 850 cm)
Les Nuages (H. 200, L. 1275 cm)
Le Matin clair aux saules (H. 200, L. 1275 cm)
Les Deux Saules (H. 200, L. 1700 cm)
Soleil couchant (H. 200, L. 600 cm)
Reflets verts (H. 200, L. 850 cm)
Matin (H. 200,&nbsp; L. 1275 cm)
Le Matin aux saules (H. 200, L. 1275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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