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 - 문정희
지상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
동백 피는 날 - 도종환
허공에 진눈깨비 치는 날에도
동백꽃 붉게 피어 아름답구나
눈비 오는 저 하늘에 길이 없어도
길을 내어 돌아오는 새들 있으리니
살아 생전 뜻한 일 못다 이루고
그대 앞길 눈보라 가득하여도
동백 한 송이는 가슴에 품어 가시라
다시 올 꽃 한 송이 품어 가시라
동백꽃이 질 때 - 이해인
비에 젖은 동백꽃이
바다를 안고 종일토록 토해내는
처절한 울음소리 들어보셨어요?
피 흘려도사랑은 찬란한 것이라고
순간마다 외치며 꽃을 피워냈듯이
이제는 온몸으로 노래하며
떨어지는 꽃잎들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거부하고 편히 살고 싶은 나의 생각들
쌓이고 쌓이면 죄가 될 것 같아서
마침내 여기 섬에 이르러 행복하네요
동백꽃 지고 나면 내가 그대로
붉게 타오르는 꽃이 되려는
남쪽의 동백섬에서!
동백꽃 - 김영탁
겨울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린 北風에
몸 내주며 시방 몸하고 있는
저 동백꽃
천 년, 천 번의 몸풀기!
긴 여정에서 돌아온 바람이
풀무질하면
상처에 길들여진 몸 그게 부끄러워
땅에 떨어지는 붉은
몸꽃
동백꽃 그리움 - 김초혜
떨어져 누운 꽃은
나무의 꽃을 보고
나무의 꽃은
떨어져 누운 꽃을 본다
그대는 내가 되어라
나는 그대가 되리
선운사 동백꽃 - 용혜원
선운사 뒤편 산비탈에는 소문 난 만큼이나 무성하게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고 많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가지가지마다 탐스런 열매라도 달린 듯
큼지막하게 피어나는 동백꽃을 바라보면
미칠 듯한 독한 사랑에 흠뻑 취한 것만 같았다
가슴 저린 한이 얼마나 크면
이 환장하도록 화창한 봄날에
피를 머금은 듯 피를 토한 듯이
보기에도 섬뜩하게 검붉게 검붉게 피어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