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기타작곡가

바르톡 : 피아노 협주곡 1~3번 [Géza Anda · Radio-Symphonie-Orchester Berlin · Ferenc Fricsay]

想像 2023. 5. 2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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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ano Concertos Nos.1-3

Bartók Béla, 1881~1945 


바르톡의 많은 피아노 솔로 작품들도 중요하지만, 작곡가-비르투오소의 전통을 잇는 예술가로서 바르톡의 위대함은 바로 피아노 협주곡에서 비롯한다. 그의 많은 장르의 작품들 가운데에서 어떤 특정한 작품을 독립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적합한 일은 아니지만, 이 피아노 협주곡은 그의 다른 작품들보다 특별한 시대적, 음악적, 역사적 중요성을 띠고 있다.

 

 

Geza Anda, Radio-Symphonie-Orchester Berlin, Ferenc Fricsay / Bartok: Piano Concertos Nos.1-3

Piano Concerto No. 1, BB 91, Sz. 83 
1. I. Allegro moderato - Allegro
2. II. Andante 
3. III. Allegro molto
Piano Concerto No. 2, BB 101, Sz. 95
4. I. Allegro
5. II. Adagio - Più adagio - Presto
6. III. Allegro molto
Piano Concerto No. 3, BB 127, Sz. 119
7. I. Allegretto
8. II. Adagio religioso
9. III. Allegro vivace


피아노 협주곡 1번, BB91

 

1926년 8월부터 11월 사이에 작곡된 것으로서 당시 바르톡은 그 밖에도 여러 다른 피아노 작품들(소나타와 야외, 9개의 피아노 소품들)을 작곡하고 있었다. 이 작품들은 앞으로 그가 맞이하게 될 새로운 창작시기에 대한 일종의 전주곡과도 같은 것으로서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양식을 예견하고 있다. 수 년 동안의 침묵을 거친 뒤 그는 전혀 새로운 방향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 그는 작곡과 오케스트레이션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완성하고 있었고, 당시 음악 경향에 대한 분석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거쳤으며, 특히 바로크 초기 작곡가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옛 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26년 이후 작곡된 그의 피아노 작품들의 상당 부분은 실질적인 목적에서 작곡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자신의 연주회 목록을 보다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비롯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피아노 협주곡으로 인해 그는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어떻게 하다보니... 오랜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소. 나는 마치 오랜 시간을 침대 위에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있던 환자가 팔과 다리를 겨우 움직여서 일어난 뒤 한두 발을 내딛으려고 하는 것과 다름이 아니오. 이러한 인간은 하르마샤타르 동산에 설 수 없는 법이지. 어찌 되었던 나 역시 되도록 천천히 움직여야만 한다오. 그래서 나는 피아노 작품 몇 개만을 가까스로 작곡할 수 있었소. 아직도 나에게는 모든 것이 벅차기만 하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1927년 7월 1일 바르톡의 피아노 연주와 푸르트뱅글러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바르톡은 이 악보의 초판을 초연날짜에 겨우 맞추어 완성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많은 오류가 있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재판본을 편집했지만 이 역시 일관되지 못한 면들과 여러 잘못 인쇄된 부분들로 완벽하지 못했고, 결국 또 다시 수정하여 새로운 판본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을 연주하는 데에는 상당한 주의와 신중한 준비가 필요하다.

 

피아노 협주곡 2번, BB101

 

바르톡이 이 작품을 작곡하기 시작한 것은 1930년 10월과 다음해 10월 사이 부다페스트에서였다. 1939년에 그는 이 작품의 작곡 경위와 이 작품에 대한 자신의 견해에 대해 이례적으로 상세한 글을 남겼다. “나는... 두 번째 협주곡을 첫 번째 협주곡의 단점을 상쇄할 목적으로 작곡하리라 결심했다. 나는 오케스트라를 보다 쉽게 다루어 주제들을 한층 흥겹게 만들고자 했다. 나는 이러한 목적으로 인해 대부분의 주제들을 훨씬 더 대중적이고 쉽게 만들었다...” 초연은 1933년 2월 프랑크푸르트에서 한스 로즈바우트의 지휘와 작곡가의 피아노 연주로 이루어졌고, 바르톡의 바람대로 청중은 전작보다 훨씬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오늘날 바르톡 피아노 음악은 그 해석에 있어서의 많은 오류로 왜곡에 가까운 시련을 겪고 있다. 바르톡은 CBS에서 남긴 ‘미크로코스모스 레코딩’의 경우 자신이 악보에 남긴 지시와는 전혀 다른 해석을 레코딩으로 남긴 바 있다. 탁월한 피아니스트로서 뛰어난 해석가이기도 했던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운 리듬의 향연과 정교한 앙상블을 통한 구조의 현대적인 이미지 창출, 여기에 연주자 자신의 독창적인 감수성이 어우러지며 전혀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특히 [2번 협주곡]은 지나칠 정도로 고난도의 테크닉과 원시적인 효과에 집착하여 민속적인 리듬감이 주는 소박하면서도 운무적인 성격을 잃어버리곤 해 왔다. 언젠가부터 라흐마니노프의 저 찬연한 낭만주의가 희미해진 감상성으로 변질되었듯이, 바르톡의 남성적이고 무곡적인 에너지 또한 가학적이고 파괴적인 피아노 타격으로 망가진 측면이 많다.

 

피아노 협주곡 3번, BB127

 

바르톡은 이 작품을 1945년 봄에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오케스트라 반주를 수반한 피아노 작품으로서는 최초로 작곡가 자신이 직접 연주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었다. 대신 그는 아내가 초연시 독주를 할 것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병으로 인해 독주자로서 활동을 더 이상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아내에게 이 작품을 초연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작품의 초연은 자신의 제자인 죄르지 산도르의 독주와 유진 오먼디의 지휘로 1946년 2월 8일에 이루어졌다. 이 작품의 판권이 누구에게 주어졌는가는 오늘날까지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이에 아랑곳 하지 않은 바르톡의 아내 디타 파츠토리는 이 작품을 1960년대부터 연주하기 시작했고 음반도 녹음했다.

 

바르톡은 이 작품의 모든 설계를 끝마쳤지만 마지막 17마디의 오케스트레이션만을을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마지막 오케스트레이션이 완성되지 못한 17마디는 티보르 셸리가 완성시켰다. 오늘날 사람들은 바르톡의 오리지널 악보를 거의 완성본으로 간주하지만, 버르톡은 사실 이 작품의 표현 및 템포 기호에 대해 최종적인 점검을 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머리 속의 음악을 악보에 옮겨낼 수는 있었지만 이에 살아있는 표정까지를 입히지는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3번 협주곡]은 바르톡의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가장 자주 연주되는 명곡으로 사랑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세기를 대표하는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하나로 존경받고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바르톡, 피아노 협주곡 1~3번 [Bartok, Piano Concerto No.1~3] (클래식 명곡 명연주, 박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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