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
The Hebrides (Fingal's Cave) , Op.26
1829년 4월, 멘델스존은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런던에서 그는 연이은 무도회와 연회 참석, 연극 및 오페라 관람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고, 한편으론 자신의 교향곡을 직접 지휘한 연주회로 대성공을 거두고 필하모니 소사이어티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약관의 천재 음악가는 영국인들의 환대에 크게 고무되었고, 이후 아홉 차례나 더 영국을 방문하며 헨델과 하이든에 비견되는 거장으로 대접받게 된다.
같은 해 7월 말, 멘델스존은 런던에서의 즐거웠던 추억을 뒤로 하고 내친 김에 스코틀랜드까지 돌아보기 위해 길을 떠났다. 스코틀랜드는 그를 한껏 고무시켰다. 깎아지른 바위 위의 ‘아서왕의 자리’에 올라가 에든버러의 지평선 너머로 펼쳐진 멋진 풍경을 자신의 스케치북에 담았고, 메리 스튜어트 여왕의 비운이 서려 있는 홀리루드의 폐허를 방문하여 [스코틀랜드 교향곡]의 도입부 악상을 떠올렸다.
여정은 계속해서 하일랜드 지방까지 이어졌고, 그는 때로는 마차나 짐마차를 타고, 때로는 걸어서 바위산과 폭포수, 황무지를 누비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8월 7일, 헤브리디스 제도를 향하여 출항한다.
배는 거친 파도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넘실대는 파도 저편으로 차츰 헤브리디스의 군도들이 시야에 들어왔고, 멘델스존 일행은 뱃멀미와 폭풍우를 견뎌내며 스태퍼 섬에 도착했다. 마침내 들어선 핑갈의 동굴은 압도적인 인상으로 그들을 덮쳐왔다.
멘델스존은 그 자리에서 하나의 주제를 떠올려 스케치했고, 나중에 그 여행에 관하여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그 악보를 동봉했다. 그리고 이 때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그는 한 편의 연주회용 서곡을 작곡한다. 그 서곡은 이듬해 로마에서 ‘외로운 섬’이라는 제목으로 일단 완성되었으나, 그 후 개정을 거쳐 ‘헤브리디스’라는 제목으로 런던에서 발표되었다. 이 곡이 바로 오늘날 [헤브리디스 서곡] 또는 [핑갈의 동굴 서곡]이라 불리는 작품이다.
서곡 [핑갈의 동굴]은 ‘음의 풍경화가’로 일컬어지는 멘델스존의 절묘한 작곡기법이 가장 잘 발휘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변화무쌍한 바다의 모습을 담은 한 폭의 풍경화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넘실거리는 파도, 불어오는 바람, 외로이 떠있는 섬과 바위들, 푸른 바다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시커먼 동굴, 그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 떼 등등…. 이 모든 광경이 마치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음악은 은근한 일렁임으로 시작된다. 처음에 파곳, 비올라, 첼로로 제시되는 b단조의 중심주제는 파도를 연상시키는데, 이 주제는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며 곡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이 파도가 점차 진폭을 확장해 가는 동안 목관악기에서 흘러나오는 또 하나의 선율은 그 위에 떠있는 바위의 모습을 떠올리는 듯하다. 이제 바람이 점점 더 세차게 불어오고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모습이 묘사된다.
이 파동이 잠시 가라앉으면 이윽고 파곳과 첼로가 D장조의 칸타빌레 주제를 차분하게 꺼내놓는다. 느긋하게 노래되는 이 선율은 잔잔해진 바다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배의 모습, 또는 항해하는 나그네의 객수와 기대감을 드러내는 듯하다. 하지만 이내 바다는 다시 거칠어지고 코데타에 등장하는 새로운 주제는 마치 배를 뒤엎어 버리기라도 할 듯이 격렬한 기세로 휘몰아치는 폭풍우와도 같다.
전개부로 들어가면 갖가지 의성음이 들려오며 배가 섬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바닷새의 울음소리, 바다표범의 포효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부서지는 파도와 물보라 소리, 어디선가 홀연히 불어와 귓가를 스치는 한 줄기 바람의 감촉도. 이후 음악은 계속해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변화무쌍한 바다의 모습과 그 항해 동안 멘델스존이 체험했던 긴박한 순간과 바다의 운치, 또 핑갈의 동굴에서 느꼈던 강렬한 감흥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준다.
순수한 기악음악을 통해서 회화적⋅문학적⋅철학적 내용을 표현하는 표제음악은 낭만주의 시대에 가장 중요하게 대두된 장르 가운데 하나였고, 그 중에서도 [핑갈의 동굴]처럼 단악장으로 이루어진 ‘연주회용 서곡’은 1850년대 리스트가 창시하게 되는 ‘교향시’의 원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