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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정리중/여행

[대구여행] 시대의 추억을 더듬다《대구 근대골목 투어》

by 想像 2018.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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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대골목 투어 은 대구의 골목을 걸으며 살아있는 역사를 만나는 체험여행이다. 대구는 한국전쟁 당시 다른 지역에 비해 피해가 크지 않았다. 덕분에 근대문화유산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편. 


대구 근대골목 투어는 [제1코스 경상감영달성 길],[제2코스 근대문화골목],[제3코스 패션한방길],[제4코스 삼덕봉산문화길],[제5코스 남산100년향수길] 등 5개 코스로 나뉘는데 그중 가장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코스는 동산선교사주택~3.1만세운동길~계산성당~이상화·서상돈고택~계산예가~에코한방웰빙체험관~제일교회~약령시한의약박물관~영남대로~종로~진골목~화교소학교로 이어지는 [제2코스 근대문화골목]코스이다



본인은 당일치기로 대구여행을 갔다 왔는데 제일 먼저 들러본 곳이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대구 근대골목 투어》. 동대구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반월당 지하철역에서 내린후 진골목부터 시작해서 동산청라언덕까지 골목골목을 누비면 시대여행을 했다.


반월당네거리 주변은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대형 쇼핑센터를 비롯한 고층 빌딩이 즐비하다. 백화점을 비롯해 각종 상가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반월당 지하철역에서 내려 진골목을 찾아가가는 길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대구의 명물 빵집 2군데를 만나게 된다


근대골목단팥빵과 삼송빵집


근대골목단팥빵과 삼송빵집이다. 단팥빵과 마약빵으로 유명한 빵집이다. 동대구역에도 분점이 있지만 역시 본점에서 사먹는 것이 제맛. 


진골목


단팥빵과 마약빵을 하나씩 사먹은 후 진골목으로 향한다. 진골목은 한일극장네거리 쪽으로 걷다 중앙시네마 옆 조그만 골목으로 들어서면 만날 수 있다. 골목 초입은 동성로의 번잡한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마치 시골 읍내의 골목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진 골목은 긴 골목이란 말의 경상도 사투리다. 진골목의 ‘진’은, ‘길다’의 경상도식 발음 ‘질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폭 2m에 길이 200여m인 진골목에는 대구 최초의 2층 양옥과 옛 부호들의 저택이 늘어서 있다. 대구의 일명 ‘유지’들이 진골목을 따라 건너 건너에 살았다고 한다. 


구불구불한 진골목을 따라 걷다보면 ‘정소아과의원’이라는 간판을 단 2층집을 만날 수 있다. 현존하는 대구 최고(最古)의 양옥건물이다. 담벼락 위로 우뚝 솟아오른 소나무가 당시의 영화를 말해주는 듯하다. 정소아과의원 외에도 진골목 곳곳에 들어선 식당과 다방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약령시장 


진골목이 끝나는 지점에는 약령시장이 있다. 구약령시는 조선조 효종 연간에 한약재와 약초를 파는 시장으로 개설되었다. 과거에는 봄과 가을에 한 달씩 열렸지만 오늘날에는 상설화된 전통시장이다.



약령시한의약박물관


약령시장 끝에 위치한 약령시한의약박물관에 가면 약전골목의 역사와 문화를 좀 더 깊이 알아보고 체험할 수 있다. 



대구제일교회


약령시한의약박물관 바로 옆에는 대구제일교회가 있다. 대구제일교회는 경북지방에 처음 생긴 기독교회로, 선교사들이 이 지방을 개화시키기 위해 근대적 의료 및 교육을 전개했던 곳으로 선교사들이 근대적 의료 및 교육을 전개하였던 거점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 곳이다.  건물의 전체적인 양상은 평면이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이고, 앞면 중앙에 현관을 두고 오른쪽에는 종탑을 세운 간결한 고딕 건물이다. 대구 제일교회는 대구의 수많은 교회 건물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고, 기독교가 근대화에 기여한 상징물로서 근대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예쁜 카페와 찻집


대구제일교회에서 이상화고택으로 가는 길 주변에는 예쁜 카페와 전통찻집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서상돈고택과 이상화고택


대구제일교회에서 조금 더 가다보면 서상돈고택과 이상화고택을 만날 수 있다. 서상돈은 조선 말기의 기업인이자 관료였고 민족 독립운동가였다. 대구에서 지물 행상과 포목상으로 성공한 인물로, 정부의 검세관이 되어 조세곡을 관리하기도 하였다. 1907년 정부가 일본에 빚을 많이 져 국권을 상실한다고 생각하여 대구 광문사 사장인 김광제와 함께 금연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을 벌였다, 대구시는 계산동 이상화 고택 옆에 있었던 서상돈의 생가를 복원하였고 국채보상공원을 조성하고 동상을 세우는 등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이상화는 유명한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지은 대구출신 시인으로,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아픔과 향토적 세계를 시로 노래했다. 현재 고택은 고층빌딩과 주택 사이에 위치했는데, 1999년 이상화 고택을 보존하자는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으로 현 모습을 지킬 수 있게 된 사례를 가졌다. 이상화고택 바로 옆에는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가 위치해 있는데 영상관(영상실, 전시관), 한옥 전시실 및 편의시설 등을 마련해 중구 도심골목투어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정보와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이상화고택에서 계산성당으로 가는 골목길 벽면에 근대골목에 관한 안내판과 이상화벽화와 함께 그의 대표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적혀 있다. 



계산성당

골목길을 나와  서성로, 달구벌대로, 명륜로, 재마루길이 만나는 계산오거리를 우회전하면 횡단보다가 나오고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계산성당과 대구제일교회가 마주 보고 서있다. 계산성당은 언뜻 보아선 서울의 명동 성당과 닮았다. 설계는 프랑스의 로베르 신부가 했지만, 건립에 명동 성당 공사를 담당했던 중국인이 참가했다. 이 건물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 번째로 세워진 고딕양식 성당으로, 당시 대구에 처음 세워진 서양식 건물이다. 현존하는 1900년대의 성당건축물로 유일한 것이어서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계산성당 맞은편에는 새로 신축해 이전한 대구제일교회 본당이 청라언덕위에 웅장하게 서 있다



3·1운동계단 

계산성당에서 건널목을 건너 대구제일교회로 올라가는 언덕엔  긴 계단길이 보이는데 ‘90계단’ 또는 ‘3·1운동계단’으로 불리는 명소이다. 1919년 3·1만세운동을 하기 위해 신명학교, 성서학교, 계성학교 등의 학생들이 이 오솔길을 통해 서문시장으로 이동하였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동산청라언덕과 동산선교사주택


3·1운동계단을 올라가면 동산청라언덕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로 시작되는 가곡 “동무생각”에 나오는 언덕이 바로 대구 동산동에 있는 청라언덕이다. 대구의 몽마르트르 언덕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는 눈에 띄는 서양가옥 세 채가 있다. 선교사 스윗즈 주택(대구 유형문화재 제24호), 챔니스 주택(대구 유형문화재 제25호), 블레어 주택(대구 유형문화재 제26호)으로, 이들은 대구에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때 선교활동을 한 미국인들이다. 지금은 이 건물을 각각 선교, 의료, 교육역사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선교박물관(스윗즈 주택)은 대구에서 본격적인 선교활동이 이루어지던 1910년경 건축된 사택으로 전통 한식과 양식의 조화가 잘 어우러져 있다. 특이하게도 대구읍성을 허물면서 생긴 성돌을 사용해 이 건물의 기반석으로 사용했다. 현재 1층에는 각종 선교유물, 기독교의 전래 과정의 사진 자료와 2층에는 이스라엘의 구약·신약 관련 소품 등이 전시돼 있다.


의료박물관(챔니스 주택)은 1800년대부터 1900년대에 이르는 많은 동서양의 의료기기 등이 소장돼 옛 의학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교육역사박물관(블레어 주택)은 다양한 민속자료와 조선시대 이후부터 1차~6차 교육과정까지 시대별 교육서적과 서당, 초등학교 교실 등을 볼 수 있는 교육역사관 그리고 대구3.1운동의 발자취와 일제만행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 등이 전시된 대구3.1독립운동 역사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동산선교사주택의 주변은 아기자기한 풍경과 이국적인 건물 덕분에 화보, 영상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다. 조경도 관리가 잘돼 차분하면서 여유 있는 공원 분위기가 좋다. 이런 곳이 예전에는 볼품없는 작은 동산일 뿐이었다. 경사진 땅에 사람들이 살기는 어려웠으니 인적이 드물고, 묏자리를 마련할 돈이 없던 사람들이 이 둔덕에 고인을 묻었던 장소였다고 한다.



《대구 근대골목 투어》을 하다 보니 기대이상으로 대구지역의 근대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기쁘다. 진골목에서 동산청라언덕까지 대구근대골목투어를 하면서 100년을 거슬러 올라 옛 대구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만 느껴 볼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겨울이 아닌 봄이나 가을에 한번 더 이곳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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