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작품 해설] 렘브란트(Rembrandt)의《야간순찰 (The Nightwatch)》

想像 2015. 7. 26.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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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연도 : 1642경

사조 : 바로크

종류 : 유화

기법 :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크기 : 363 x 437 cm

소장처 :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야간순찰 (The Nightwatch)'은 렘브란트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야간순찰’의 장면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한낮에 일어나는 일로, 부관의 명령 아래 부대가 출격하는 장면이다. 이는 1940년까지 그림에 덧칠한 바니시가 산화하면서 그림이 검게 변해서 이 그림을 「야간순철」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작품에는 ‘프란스 반닝코크 대위의 중대’라는 제목이 더 알맞을 테지만, 사람들에게 ‘야간 순찰’이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네덜란드 황금 시대의 절정이었던 1642년에 완성되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민병대의 구성원인 대장 프란스 반닝 코크(Frans Banning Cocq)와 대원들이 작품 제작비용을 모금하여 렘브란트에게 그들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주문하였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에 새롭게 지어진 그들의 회의실에 걸기 위해서 이 그림을 의뢰한 것이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1638년 프랑스 왕비 마리 드 메디치(Marie de Medici)의 암스테르담 방문을 기념하여 화가들에게 그림을 주문하는 과정에서 렘브란트에게 이 그룹초상화를 의뢰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군중 가운데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중요한 세 인물을 꼽자면, 중앙의 두 신사와 왼쪽 배경에 있는 작은 소녀를 들 수 있다. 중앙의 두 사람은 붉은 허리띠와 검은 옷을 입고 있는 프란스 반닝코크(Frans Banning Cocq)대위와 흰색 허리띠와 노란 옷을 입고 있는 빌렘 반 라위턴뷔르흐(Willem van Ruytenburch)중위이다. 이 두 사람의 지휘 아래 총으로 무장한 민병대원들이 출격하고 있으며, 그들의 뒤에는 중대의 깃발이 있다. 렘브란트는 그림에서 자연스럽게 중대의 전통적인 상징을 표시해놓았다. 배경에 금발 머리에 진주로 장식을 하고 노란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등장한다. 중대의 심볼인 수탉을 허리춤에 차고 민병대의 잔을 들고 있는 소녀는 그 자체로 하나의 마스코트가 된다.


이 작품은 그 스타일과 엄청난 크기로부터 바로크양식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원래는 이것보다 더 큰 그림이었으나 일부분을 잘라 그림의 크기를 줄여서 부대가 배경의 큰 아치 통로를 통해 걸어와 중앙에 이르게 되는 장면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렘브란트는 캔버스 안에 18명의 민병대원들과 더불어 어린아이나 북 치는 사람을 비롯한 16명의 가상의 인물들을 더 넣었다. 많은 인물들 가운데 부관과 소녀는 환한 빛 속에 있다. 그들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머리만 조명을 받은 채 모두 어둠 속에 있다. 이 수수께끼와 같은 빛은 다른 햇빛이나 횃불이라기보다는 인물 자체에서 나와 밝게 빛나고 있다. 보면 볼수록 인물은 더욱 살아있는 것 같고 더욱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관람자들로 하여금 비전(vision)을 보는 듯한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한다.


이처럼 햇빛과 그림자의 효과적인 사용을 통해 화가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잘못 붙여진 제목 때문에 작품의 시대가 오해되기도 하였으나 흐리고 훼손된 부분을 복원하고 세척해서 결국 작품이 가진 원래의 의미를 밝혀내었다. 렘브란트는 어두스름한 뜰에서 눈부신 햇빛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한 무리의 병사들을 묘사한 낮의 광경을 그렸던 것이다. 주문자들은 밝게 빛나는 배경 속에 자신들이 아름다운 옷을 차려입은 채 영웅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초상화를 아름답게 보이도록 그리지 않았고, 사람들 중 몇몇은 어둠에 가려지거나 희미하게 처리되어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고, 렘브란트에게 각자의 몫을 지불하지 않으려 하기도 했다.


이 그림은 시민 민병대의 그룹초상화이지만, 렘브란트는 대원들의 그룹을 이례적인 방식으로 묘사했다. 이 그림을 통해 렘브란트는 인물들을 그룹 짓거나 줄을 세우는 등의 방식이 아니라, 그만의 역동적인 방식으로 초상화를 그렸다. 이러한 구성은 깔끔하게 줄을 맞춰 그린다거나 연례행사에서 앉아있는 모습으로 그리는 전통적인 구성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캔버스 안에서 동일한 중요도를 갖고 비슷한 공간을 차지하여 나타나는 인물들을 질서정연하게 보여주는 대신에, 렘브란트는 사람들을 저마다의 행동에 분주한 그룹으로 그리고 있다. 그는 거대한 이 그룹초상화 안에서 전체 부대의 개성을 포착하고 있으며, 관람자는 각자의 임무를 행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활기를 느끼게 된다. 렘브란트는 2차원의 캔버스 안에 많은 움직임을 만들어내었다. 그는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민병대 그룹은 방금 동작을 취해 이제 막 행진을 하려는 듯 보인다. 대장 코크와 대원들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나, 그들의 창과 총이 이쪽 저쪽으로 비스듬히 향해있다. 그룹초상화임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는 어수선한 동작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장면들에 생기를 불어넣어 그림을 그렸고, 등장 인물들이 앞으로 전진하는 동작을 암시하였다. 즉 렘브란트는 전통적인 네덜란드 초상화를 눈부신 빛, 색, 운동으로 가득 찬 화면으로 구사해냈고, 이제까지의 초상화에서 요구되었던 모든 요소들을 더 복잡하게 구성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롭고 통일된 화면을 창조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군대를 동원하는 극적인 순간을 격렬한 혼돈의 장면으로 나타냄으로써 초상화에 극적인 효과를 부여함과 동시에 역사 속에서 그룹초상화의 지위를 드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렘브란트의 새로운 시도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 그림을 그린 후 렘브란트에겐 더 이상 그림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고 그의 경제 사정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그는 대부분의 재산을 아들에게 양도한 뒤, 1669년 죽을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답지 않게 가난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렘브란트의 걸작 '야간순찰 (The Nightwatch)'은 그 유명세 때문인지 영화의 소재로도 종종 사용되었다. 1995년 데이비드 잭슨 감독이 유엔 반범죄기구 요원이 도난당한 명화 '야간순찰 (The Nightwatch)'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나이트워치>를 제작했고 2000년에는 「'야간순찰 (The Nightwatch)' 모조작을 둘러싼 음모와 사건을 그린 <인코그니토>가 제작되기도 하는 등 렘브란트의 이 거대한 작품은 영화인들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거리 렘브란트 광장에는 렘브란트의 동상뿐 아니라 실제 크기로 「야경」을 조각한 작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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