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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대교 : 한국전쟁과 이산, 실향 등 우리나라 근대사의 산 증인

想像 2024. 12. 3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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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이산, 실향 등 우리나라 근대사의 중요한 역사를 간직한 국내 유일의 도개교였던 부산 영도대교. 정식 명칭은 영도대교지만 부산 사람들은 영도다리라고 많이 부른다.

 

일제강점기부터 부산시민과 애환을 함께 해 온 영도대교는 8.15해방과 6.25전쟁 이후 생활고에 지친 피난민들이 애환과 망향의 슬픔을 달랬었던 장소였다. 전쟁 당시 영도대교에 가면 친인척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영도대교 인근은 피난민으로 가득 메웠고, 이들의 사연을 듣고 상담하는 점집들이 성업하는 등 우리나라 근대사와 함께 해온 구조물인 동시에 근대 부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는 다리이다.

 

영도대교는 일제시대인 1934년 건설됐다. 영도다리로 불리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도개 기능 즉 다리를 들어 올렸다 내리는 기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리를 들어 올려 밑으로 키가 높은 배가 지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개 시설이 낡고 무엇보다도 송수관이 다리에 설치되면서 1966년 도개 기능이 중단됐다.

 

그러다 2013년  47년 만에 도개(跳開) 기능이 복원돼  지금은 일주일 한번 다리가 올라간다.  영도대교의 도개 시간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14:00)부터 15분간입니다. 도개 행사는 사이렌이 울리며 교각 양방향의 교통이 통제되고 다리가 올라가는 행사이다.  

 

 

60년대 영도대교의 모습

아래사진은 60년대 까지 다리를 들어 올렸다 내렸다 했던 옛날 영도대교의 모습이다.

 

 

 

현재 복원된 영도대교의 도개(跳開) 기능 

 

 

 

낮에 본 영도대교의 모습

 

 

 

밤에 본 영도대교의 모습

 

 

 

영도대교위에서 바라다본 부산 야경

 

 

 

현인동상과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

영도대교 끝자락에는 가수 현인의 동상과 현인의 곡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가 서 있다. 이유는 굳세어라 금순아'의 배경이 영도다리이기 때문이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 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철의 장막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를 간들
천지 간에 너와 난데 변함이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다오 북진통일/남북통일 그날이 되면
손을 잡고 울어 보자 얼싸 안고 춤도 추어 보자.

 

 

"영도대교는 그냥 가면
평범한 다리이다.
하지만 그 역사를 알고 가면
새롭게 다가오는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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