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문학작품

매화에 관한 시 모음

想像 2024. 3. 1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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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매화 / 서정주


매화에 봄 사랑이 알큰하게 펴난다
알큰한 그 숨결로 남은 눈을 녹이며
더 더는 못 견디어 하늘에 뺨을 부빈다
시악씨야 하늘도 님도 네가 더 그립단다
매화보다 더 알큰히 한 번 나와 보아라
매화 향기에서는 가신 님 그린 내음새
매화 향기에서는 오는 님 그린 내음새
갔다가 오시는 님 더욱 그린 내음새
시악씨야 하늘도 님도 네가 더 그립단다
매화보다 더 알큰히 한 번 나와 보아라

 

 

 

 매화나무 곁을 지나다 /  양문규

 

이른 봄날, 매화나무 곁을 지나는데,
여자가 흙 담장에 걸린 꽃가지를 꺾고 있다
하늘이 구름을 내려 꽃을 피우는가
그 여자 매화의 가지에 얹혀 흐느끼듯 꽃을 단다
지난 날들은 뒤돌아보지 마라
기우려진 몸이 헛되지 않았다고
속살이 열린, 하얀 꽃송이 허공 속으로 들어간다
햇살 따뜻해 바람 환한 날
사랑하고 싶어 매화나무 속을 엿보는데
매화나무 안에서 그녀가 옷을 벗고 있다.

 

 

 

매화 앞에서  /  이해인

 

보이지 않게
더욱 깊은
땅 속 어둠
뿌리에서
줄기와 가지
꽃잎에 이르기까지
먼 길을 걸어 온
어여쁜 봄이
마침내 여기 앉아 있네
뼛속 깊이 춥다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이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하던
희디흰 봄햇살도
꽃잎 속에 잡혀 있네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따스하여라
"살아갈수록 겨울은 길고
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 거란다
그래, 알고 있어
편하게만 살순 없지
매화도 내게 그렇게 말했단다."
눈이 맑은 소꿉동무에게
오늘은 향기 나는 편지를 쓸까
매화는 기어이
보드라운 꽃술처럼 숨겨두려던
눈물 한 방울 내 가슴에 떨어뜨리네

 

 

 

매화 讚 / 복효근

 

가령
이렇게 섬진강 푸른 물이 꿈틀대고 흐르고
또 철길이 강을 따라 아득히 사라지고
바람조차 애무하듯 대숲을 살랑이는데
지금 이 강언덕에 매화가 피지 않았다고 하자
그것은, 매화만 홀로 피어있고
저 강과 대숲과 저 산들이 없는 것과 무에 다를 거냐
그러니까 이 매화 한 송이는
저 산 하나와 그 무게가 같고
그 향기는 저 강 깊이와 같은 것이어서
그냥 매화가 피었다고 할 것이 아니라
어머, 산이 하나 피었네!
강 한 송이가 피었구나!  할 일이다
내가 추위 탓하며 이불 속에서 불알이나 주무르고 있을 적에
이것은 시린 별빛과 눈맞춤하며
어떤 빛깔로 피어나야 하는지와
어떤 향기로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고 연습했을진대
어머, 별 한 송이가 피었네! 놀랄 일이다
벙긋거릴 때마다
어디 깊은 하늘의 비밀한 소식처럼이나 향그로운 그것을
공짜로 흠흠 냄새 맡을 양이면
없는 기억까지를 다 뒤져서 늘어놓고
조금은 만들어서라도 더 뉘우치며
오늘 이 강변에서
갓 핀 매화처럼은 으쓱 높아볼 일인 것이다

 

 

 

 매화 풍경 / 박종영

 

겨울 강을 건너온 매화 꽃잎 한 개
절정을 위해 상큼한 바람 앞에 서서
백옥의 여인이다
이내 펄럭이는 치맛자락
그때마다 하얀 속살이 좀처럼 인색하게
붉게 퍼진다
낡은 세월 모두 밀어내는
그대 향기 같아
그 추억의 허리춤을 살며시 당기면
저절로 안겨오는 그리움을 어쩌랴

 

 

홍매화  / 도종환

 

눈 내리고 내려 쌓여 소백산자락 덮어도
매화 한송이 그 속에서 핀다
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질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
어이하랴 덮어버릴 수 없는
꽃같은 그대 그리움
그대 만날 수 있는 날 아득히 멀고
폭설은 퍼붓는데
숨길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가슴 속 홍매화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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