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o Concerto No. 1 in B-Flat Minor, Op. 23
Pyotr Ilich Tchaikovsky, 1840∼1893
▒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초연된 지도 어느 새 150년을 바라보고 있지만, 작품에 대한 애정과 유명세는 점점 더 증폭되어왔지 단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차이콥스키의 이 대곡은 ‘피아니스트’라면 응당 연주할 수 있고, 연주해야만 하며, 이 곡을 통해 비로소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을 정도로 프로 연주자로서의 가능성과 예술성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차이코프스키는 총 세 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지만 이 가운데 1번 협주곡만이 유독 유명하다.
차이코프스키는 절망과 불행한 상황 속에서 이 곡의 작곡을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엔 감동적이고 성공적인 작품으로 발전되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러시아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철인 3종경기에 맞먹을 만한 강인한 지구력과 원자폭탄과 같은 폭발력, 목가적이고 가요적인 정서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러시아적인 멜랑콜리가 이 곡의 매력이다. 무엇보다도 피아니스트의 마법적인 음색과 초인적 비르투오시티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이 작품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차이코프스키의 얼룩진 삶에 끈질기게 실처럼 따라다녔던 것은 신경쇠약 증세였다. 성공보다는 실패에 더 민감했던 차이코프스키는 그가 음악의 구세주라고 생각했던 모차르트와 자기 자신을 비교하며 형식미와 구성력의 부족함을 특히 한탄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항상 비판하고 회의했던 그는 이 [피아노 협주곡 1번]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의 스승이자 당시 러시아 피아니즘의 대부로 손꼽히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Nikolay Rubinst ein)에게 이 작품을 보냈고 그의 의견을 기다렸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루빈스타인은 이 작품을 엉뚱하고 기괴하며 거북스럽기 그지 없는, 한마디로 구제불능의 곡이라고 신랄한 평을 서슴치 않았다. 문제는 연주하기에 너무 어렵고 악정들은 너무 잘게 조각 나 있으며 서투르게 취급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이런 2류 작품은 반드시 대대적으로 수정을 해야만 자신이 연주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차이코프스키가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에게 쓴 편지에 대체적으로 정확하게 적혀 있다.
격분한 차이코프스키는 독일의 명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low)에게 이 작품을 헌정했다. 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했던 뷜로는 이 곡을 미국 연주회 도중 1875년 10월 25일 벤저민 존슨 랑의 지휘와 함께 보스턴에서 초연했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같은 해 모스크바에서도 연주해 호평을 받게 되었다. 결국 3년 뒤에는 루빈스타인이 직접 화해를 구하게 되었고 두 사람의 우정은 다시 회복되었다고 한다.
이후 차이콥스키는 이 작품에 수정을 가하여 모스크바의 유르겐슨 출판사를 통해 세 개의 판본을 발표했다. 첫 번째는 1875년에 완성한 ‘오케스트라 반주의, 혹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피아노 협주곡’이고, 두 번째는 1879년 9월 개정된 판본, 마지막 세 번째는 1889~90년에 개정된 판본이다.
I. Allegro non troppo e molto maestoso
웅장하고 풍부한 색채로 시작하는 1악장은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조성과 전개가 자유로운 편이다. 오히려 환상곡적인 느낌까지는 이 1악장은 오케스트라의 강렬함과 화려하고 육중한 피아노가 서로 대결하는 듯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특징으로서, 장대한 1주제와 낭만적인 2주제의 뚜렷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II. Andantino semplice - Prestissimo - Tempo primo
느린 안단테 악장과 스케르초 악장을 뒤섞어놓은 듯한 혁신적인 악장.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잠이 드는 아기의 평온함으로 시작하여, 프레스티시모로 질주하는 환상 속의동화를 꿈꾸다가 첫 자장가로 돌아오는 모습은 지극히 전원적이고 평화로운 모습을 연상시킨다.
III. Allegro con fuoco
피아노 협주곡 역사상 가장 맹렬하고 장대하며 스펙타클한 악장으로 손꼽힌다. 오케스트라의 네 마디 서주 후부터 펼쳐지는 피아노의 굵고 거친 슬라브 무곡풍의 론도 주제와 이어지는 간결한 가요적인 부주제가 잇달아 펼쳐지며 서정과 기교의 긴박감 넘치는 조화와 대비를 이룬다. 특히 마지막 피아노 코다 부분에서의 빠르고 강렬하며 비르투오시티 넘치는 옥타브와 이어지는 오케스트라 총주의 터질 듯 벅차오르는 사운드는 러시아의 호방함과 저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