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작사·작곡의 노래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매우 오랫동안 수난 당했고 그 때문에 전혀 다른 존재방식으로 긴 생명력을 유지했다.
대중가요로서의 「아침이슬」은 양희은이 1971년 그의 첫 독집음반에서 발표한 후, 그해 가을 창작자인 김민기의 첫 독집음반에도 수록되어 알려졌다. 1972년 봄 김민기의 음반은 법적 근거 없이 판매가 금지되었으나, 양희은의 음반 등을 통해 이 노래는 계속 판매되었다. 그러나 1973년은 조영남이 음반과 방송 등에서 ‘태양은 묘지 위에’를 ‘태양은 대지 위에’로 바꾸는 등의 수난을 겪다가 1975년 말에 공식적인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대중매체와 음반 시장에서 사라졌으나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이 노래는, 이후 구전 등을 통해 대학생과 지식인 사이에서 널리 애창되는 대표적인 민중가요가 되었고, 시위 현장에서도 많이 불려졌다.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5년부터 1980년대까지는 사람 많은 곳에서 「아침이슬」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시위로 간주될 정도였다.
이렇게 민중가요로 존재방식이 바뀐 이 노래는,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수용자들에 의해 그 ‘시련’과 ‘나 이제 가노라’의 선언이 민주화운동의 그것으로 적극적으로 해석되었고, 창작자 김민기는 이 노래만으로도 오랫동안 합법적 활동이 불가능한 불온한 인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이 노래를 불온시할수록 이 노래의 높은 인기는 계속 유지되었다. 1980년대 초중반, 김민기의 1971년 음반은 중고음반 시장에서 최고가로 거래되었고, 「아침이슬」은 1990년대 초까지 각종 설문조사에서 한국의 대학생과 젊은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로 꼽혔다. 1987년 6월시민항쟁으로 약간의 민주화 조치가 이루어질 시점 이루어진 「아침이슬」의 해금이 민주화 조치의 상징으로 이야기될 정도로, 이 노래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노래가 되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 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 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 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