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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클래식지식사전 95

마우리치오 폴리니 (Marurizio Pollini, 1942 ~ 2024)를 추모하며

마우리치오 폴리니 Marurizio Pollini, 1942 ~ 2024 이탈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23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2세. 코리에레 델레 세라 등 현지 매체들은 폴리니가 북부 도시 밀라노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아내 말리사, 아들 다니엘레가 임종을 지켰다고 한다. 현존하는 피아니스트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연주를 들려주는 인물로 꼽히는 피아니스트인 마우리치오 폴리니는 미켈란젤리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 피아니스트의 계보를 잇고 있다. 이탈리아 피아니스트로 비르투오조의 기량과 다양하고 대담한 레퍼토리는 마우리치오 폴리니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이다. 마우리치오 폴리니는 1942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음악을 좋아하는 건축가였는데 이..

빈 신년음악회 역사와 빌리 보스코프스키(Willi Boskovsky)

빈 신년음악회 역사와 빌리 보스코프스키(Willi Boskovsky) 음악회 청중과 TV 시청자들의 수효로 볼 때 , 신년 음악회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기획된 가장 대중적인 음악회라고 할 수 있다. 1984년 오스트리아 라디오 방송사의 집계에 따르면 약 4억의 사람들이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 신년 음악회를 시청한다고 한다. 게다가 1990년에는 위성중계덕분에 중국인들에게도 그 프로그램이 송신되어 시청자의 수효가 무려 1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수치를 초과하게 되었다니, 신년 음악회를 시청하는 사람들은 어림잡아 8억에서 12억 정도 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으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는 전세계의 수 많은 청취자들을 끌어 들이는 정기 연주회가 되었다. 오스트리아로서는 신년 음악회가 ..

파블로 카잘스에 의해 200년만에 세상에 다시 나온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파블로 카잘스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876년 12월 29일, 바르셀로나에서 60km 쯤 떨어진 작은 마을 벤드렐에서 태어난 파블로 카잘스는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11살 때 바르셀로나 음악원에 입학하였고 1899년에 파리에서 라무뢰 교향악단과 협연하여 큰 명성을 얻었다. 이 무렵부터 그는 자크 티보(바이올린), 알프레드 코르토(피아노)와 함께 황금의 트리오 활동을 펼쳐 유럽 문화의 중심지가 된 파리 음악계 중심인물이 되었다. 피카소가 그랬듯이, 유럽 문화의 변방 스페인 지역의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파리로 모여들던 시대였다. 첼리스트 카잘스의 이름은 오늘날 바흐 음악의 성자이며 첼리스트에 영혼을 부여한 사람으로 통하고 있는데, 그것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 때문이다. 그의 나이 ..

동성애자였던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와 그의 음악

동성애자였던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와 그의 음악 19세기 위대한 작곡가중 하나인 차이코프스키는 동성애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동성애에 대한 당시 사회적 편견이 두려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철저히 은폐했고 이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현대에서 동성애는 아직도 법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분위기이지만, 특히 그가 살았던 당시에 동성애는 도덕적인 문제뿐 아니라 그것을 말하거나 기록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한 시절이었으니 그의 인간적 고뇌가 얼마나 깊었을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후대의 사람들은 1877년 서른일곱의 나이에 자신의 제자인 스물여덟의 안토니나 미류코바라는 여성과 결혼하는데 이조차도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숨기기 위한 것이었으며 미류코바의 결혼을 통해 그의 ..

나치의 선전도구로 활용된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나치의 선전도구로 활용된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Der Meistersinger von Nürnberg)는 바그너의 오페라 제목이다. Meistersinger의 뜻은 Meister와 Singer의 합성어로, 직업적인 가수가 아니라 노래를 잘하는 우두머리 장인을 뜻한다. 이 오페라의 줄거리는 16세기 중반 뉘른베르크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다룬다. 그 당시 뉘른베르크는 자유도시로 북유럽 르네상스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독일 바이에른 주의 뉘른베르크는 중세 말기에는 영주에 속해있지 않은 시민계급으로 구성된 제국 직속도시였다. 이 오페라의 주인공은 실제 인물인 한스 작스다. 1494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나서 1576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한스는 뉘른베르크에..

바그너와 반유대주의, 그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히틀러와 나치

바그너와 반유대주의, 그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히틀러와 나치 20세기 동안, 바그너의 꼬리표에 따라 다녔던 것이 그의 반유대주의, 이스라엘에서의 그의 음악 연주 금지, 그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히틀러 및 나치이. 그가 반유대주의적 성향을 지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가 비판받게 된 대부분의 사건들은 그의 사후에 일어난 것들이다. 즉 바그너가 죽고 한참 지난 1930년대에 그의 음악을 나치 당이 전용함으로써 필요이상으로 바그너의 반유대주의가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바그너는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유대인, 특히 유대인 작곡가가 독일의 해로운 외래 요소라고 비난했다. 그의 반유대인 수필 중 처음이자 가장 찬반 논란이 큰 것은 1850년에 "K. Freigedank"("자유로운 생각")이라는 필명으로 Neue ..

마리아 조앙 피레스(Maria João Pires)와 베스트 연주 감상

마리아 조앙 피레스(Maria João Pires) 포르투갈 출신의 피아니스트. 대표적인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 마치 그녀의 눈매처럼 온화한 톤을 가진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피레스는 1944년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이란 나이로 첫 연주회를 가졌는데 이때 연주한 곡이 모차르트의 협주곡이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이후 40여 년에 이르는 그녀의 연주생활에서 모차르트는 언제나 중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스본 음악원을 거쳐 독일로 유학한 피레스는 하노버에서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 이름높은 카를 엥겔을 사사하며 자신의 색깔을 확립하게 된다. 1970년에 열린 베토벤 탄생 200주년 기념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공식적으로 데뷔한 후 그녀는 주로 모차르트와 슈..

캉캉춤에 얽힌 이야기와 캉캉 음악

캉캉춤에 얽힌 이야기와 캉캉 음악 캉캉(Can-can)’은 ‘스캔들’이라는 뜻으로 캉캉 춤은 곧 외설적인 춤사위의 쇼킹한 춤을 뜻했다. 롱스커트 아래 페티코트(속치마의 일종)를 걸치고 검정스타킹을 신은 고혹적인 무희들의 역동적 춤인 캉캉은 스커트를 들어올려 늘씬한 다리를 돌리거나 힘차게 발차기하는 야한 춤사위로 사내들의 얼을 쏙 빼는 그야말로 에로틱 댄스의 극치였다. 우리가 흔히 듣는 캉캉 음악은 독일 출신의 오페라 작곡가로 파리에서 활동한 자크 오펜바흐(1819~1880)의 오페레타(희극적 오페라) ‘저승의 오르페우스’ 2막에 등장하는 '지옥의 갤럽'이라는 원무에서 따온 것이다. 오펜바흐는 당대 파리 오페라계를 주름잡던 인물로 코믹하고 아름다운 스토리를 가벼운 선율에 실은 단막 오페라로 대중적 명성을 ..

미하일 플레트네프 (Mikhail Pletnev)와 대표음반 감상

미하일 플레트네프 (Mikhail Pletnev, 1957 ~ )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지휘자, 작곡가 미하일 플레트네프는 1957년 4월 14일,러시아(구 소련)의 아르한겔스크(Arkhangelsk)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모두 음악가였고,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13세때 유소년 초기 음악교육을 담당하는 Central Moscow music school 입학해서 피아노를 배웠다.불과 4년만인 1974년에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여 야코프 플리에르(Yakov Flier)와 레프 블라셍코(Lev Vlasenko)에게 사사하였다. 1978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우승하였고,이를 계기로 구 소련 지역을 벗어나 영국,독일,스칸디나비아,프랑스,이탈리아,미국,일본 등지로 연..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와 베스트 연주감상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 20세기 가장 뛰어난 첼로 연주자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 1927년 3월 27일 ~ 2007년 4월 27일)는 소련 아제르바이잔에서 태어난 러시아인 첼로 연주자이자 지휘자이다. 뛰어난 기교 및 해석능력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새로운 곡들을 소화하는 면모를 보여, 20세기 가장 뛰어난 첼로 연주자로 손꼽힌다. 특히 드보르작과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에 대한 해석이 유명하다. "슬라바"(Slava)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모스크바 동쪽 10시간 거리의 오렌부르크로 옮겨 거주하다가 1943년 모스크바에 정착했다. 이후 1970년대에 정치적 이유로 시베리..

니콜라이 루간스키(Nikolai Lugansky)와 대표음반 감상

니콜라이 루간스키(Nikolai Lugansky) 러시아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 연주는 현존하는 피아니스트들 중 최고로 평가 ‘가장 선구적이고, 유성 같은 연주자.’ 세계적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이 러시아 출신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Nikolai Lugansky, 1972~)를 두고 한 말이다.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루간스키는 파워풀하고 완벽한 기교, 섬세하고 우아하며 깊이 있는 연주를 들려준다. 러시아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서 낭만주의와 러시아 레퍼토리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특히 라흐마니노프 연주는 현존하는 피아니스트들 중 최고로 평가받는다.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를 사사한 그는 20세 나이로 라흐마니노프의 ‘회화적 연습곡’ 전곡 음반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

바네사 메이(Vanessa Mae)와 대표곡 감상

바네사 메이(Vanessa Mae) 팝과 클래식을 넘나드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Vanessa Mae는 1978년 10월 27일(196년 전 Paganini가 태어난 날이어서 같은 날에 천재가 또 탄생했다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었다.) Singapore에서 태어났다. 태국출신의 아버지와 중국인인 어머니를 둔 그녀는 4살 때 영국의 런던으로 건너간 클래식을 접하기 시작한다. 82년 그녀가 처음 배우기 시작한 악기는 피아노였다. 런던 왕립 음악원을 다니며 피아노를 배우던 그녀는 84년 6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함께 배우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연주 실력을 보여준 그녀는 역사적인 천재 뮤지션들과 비교될 정도의 극찬을 받으며 'Child Prodigy(신동)'로 대접 받았고 당대 최고의 음악 학교에서 ..

바로크 시대 음악과 꼭 들어야 할 명곡들

바로크 시대의 음악에 대하여 ‘바로크(Baroque)’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대략 1600년부터 1750년 사이의 유럽 예술 양식에 대한 개념이다. 그 용어가 가리키는 것은 르네상스 시대와 고전주의 시대 사이의 시기이며, 세기로 따지면 17세기에서 시작해 18세기 중반에 끝난 예술사조인 것이다. 원래 ‘바로크’라는 말은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어인 ‘바로코(barroco)’에서 온 것인데 이 용어가 예술사에서 맨 처음 사용된 것은 17세기의 건축, 회화, 조각에 대해서였다. 물론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바로크’란 용어는 이전의 르네상스 시대의 균정한 고전적 양식에 비해 불균형적이고 타락했다는 뜻으로 그 시대의 미술 양식을 폄하하며 쓴 것이었다. 바로크 양식이 그런 부정적인 인식을 벗어나 그..

포스터(Stephen Foster, 1826 ~ 1864) : 미국민요의 아버지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미국 민요를 많이 작곡한 스티븐 포스터는 1826년 7월 4일 미국 동부 피츠버그에서 태어났습니다. 포스터는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천성적으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악기를 혼자서 익혔고, 어떤 곡이든 한 번만 들으면 연주를 할 수 있었습니다. 불과 14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한 그는 23살 때인 1849년 첫 번째 큰 인기를 끈 노래 "오 수재너"를 발표했습니다. 포스터는 1840년대와 50년대, 200곡이 넘는 노래를 작곡했습니다. 그가 작곡한 노래 중에는 사랑에 관한 것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갈색머리의 지니(Jeannie With Light Brown Hair)’입니다. 한국에서는 ‘금발의 제니’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공주병 디바' 캐슬린 배틀 (Kathleen Battle, 1948 ~ )과 대표곡 감상

캐슬린 배틀(Kathleen Battle, 1948 ~ )는 미국의 소프라노 가수이다. 독특한 음역과 음색으로 유명한 미국의 오페라 소프라노이다. 미국의 1940년대 시골, 가난한 가정, 흑인부모라는 배경은 딱 밑바닥 인생으로 가버리기 십상의 조건인데, 탁월한 재능은 그녀를 세상 중심으로 데려갔다. 음악교사의 도움으로 신시내티 음대를 졸업한 배틀은 세계적인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눈에 들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원이 된다. 미국인 최초로 영국판 토니상인 로렌스 올리비에상, 다섯 차례의 그래미상 등을 수상하며 제시 노먼, 바바라 핸드릭스와 함께 3대 흑인 소프라노로 불리웠다. 배틀은 도도한 여자 하인 연기가 전문이다.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의 제르비네타..

[명화와 클래식] 클로드 로랭 - 디도에게 작별을 고하는 아이네아스

CLAUDE LORRAIN Aeneas's Farewell to Dido in Carthago 1676 Oil on canvas, 120 x 149,2 cm Kunsthalle, Hamburg 클로드 로랭은 광활한 자연 속에 인물을 절묘하게 녹여내는 ‘분위기 있는 풍경화’로 많은 사랑을 받아 온 17세기 프랑스 화가다. 서양회화가 가진 매력의 요체인 빛을 십분 활용해 아스라한 느낌을 배가시키고, 디테일한 풍경 묘사와 풍경화 속 담긴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한 장면을 그대로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작품 ‘디도에게 작별을 고하는 아이네아스’ 또한 이런 매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 보는 풍경은 아름다운 카르타고 항구에서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떠나는 남자를 배웅하는 여인의 모습이다. 남자..

송영훈(Song Young-Hoon)과 대표음반 감상

국내∙외 유수 오케스트라와의 꾸준한 협연, 독주회, 실내악 연주자로서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첼리스트 송영훈. 그는 완벽한 기교와 따뜻한 감성을 겸비한 한국 음악계의 대표 연주자이다. 솔리스트로서 잉글리쉬 챔버 오케스트라와 하이든 콘체르토 협연 실황을 녹음하였으며 그 외에도 뉴욕 챔버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챔버 오케스트라, 타피올라 챔버 오케스트라, 앙상블 가나자와,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핀란드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도미니칸 내셔널 오케스트라, 요미우리 도쿄 심포니, 북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야나첵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뉴저지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의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다. 최근 일본에서의 활동 영역을 넓히며 아시아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베스트 60

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베스트 60 1. 미뉴엣 String Quintet in E Major, G. 275 - III. Menuetto Luigi Boccherini, 1743 ~ 1805 18세기 이탈리아의 고전파 작곡가로 활약한 음악가 보케르니의 작품. 프랑스 궁중에서 쓰였던 가볍고 우아한 4분의 3박자 의 춤곡으로, 17세기경 프랑스의 농촌에서 무도곡으로 시작되어 급기야 궁중의 화려한 무도회의 음악으로 각광 받은 작품. 은 피치카토 반주를 타고 연주되는 우아하고 품위 있는 대표적인 미뉴엣이다. 2. 경기병 서곡 Light Cavalry - Overture Franz Von Suppe, 1819∼1895 희가극 중 특히 서곡의 작곡가로 유명한 주페는 오스트리아 빈 스타일의 우아한 리듬과 맑은..

Glenn Gould (글렌 굴드) : 기행으로 점철된 피아니스트

이미 살아있을 때부터 전설로 분류된 사람. 평생 결혼하지 않고 50년의 생애를 보내면서 일생동안 온갖 기행으로 점철된 피아니스트.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1964년(32세) "고통일 뿐인 속임수"라며 돌연 모든 콘서트 일정을 취소하고 그후론 단 한 차례도 공개된 장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았던 굴드. 피아니스트 아닌 피아니스트가 되기 까지의 글렌 굴드 1932년 9월 25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출생한 글렌 굴드. 그의 아버지 러셀 허버트는 모피제조공이었고, 또한 아마추어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그의 어머니 플로렌스도 한때 직업 연주자를 꿈꾸었을 만큼 뛰어난 피아노 실력을 지닌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다. 글렌 굴드의 외가쪽 먼 친척 중 작곡가 에드바르트 그리그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이야기가 얼만큼 ..

아이보리 지틀리스 (Ivry Gitlis, 1922~2020)와 대표곡 감상

아이보리 지틀리스 (Ivry Gitlis, 1922~2020) 이스라엘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아이보리 지틀리스 (Ivry Gitlis, 1922~2020)는 이스라엘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유네스코 친선 대사였다. 1922년 이스라엘 하이파(Haifa)에서 러시안계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난 아이보리 지틀리스 (Ivry Gitlis)는 5살에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여 9살에 처음으로 공개 연주회를 가졌다. 10살 때 지틀리스는 유태인 출신의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브로니슬로브 후베르만(Bronislaw Hubermann ; 제 2 차 세계대전후에 이스라엘 필하모니 교향악단 창립에 헌신적으로 공헌하였다.)앞에서 연주를 하여 기틀리스의 연주를 듣고 감명받은 후베르만은 그를 파리로 보내서 국립 음악원에서 공부..

레이철 포저(Rachel Podger, 1968 ~ )과 대표음반 감상

레이철 포저(Rachel Podger, 1968 ~ ) 바로크 음악의 스페셜리스트 비발디나 바흐로 대변되는 바로크 음악은 오늘날 화려하고 풍성한 음악에 비해 담백한 편이다. 하지만 일단 그 매력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철현으로 연주되는 오늘날의 현악기와 달리 바로크 시대 악기들은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거트현(gut strings)이다. 철현보다는 소리가 작고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잦은 조율이 필요하지만 철현에 비해 음색에 깊이와 따뜻함이 있고 복잡한 배음을 소화하는 장점이 있다. 세월 저 너머의 작곡가들의 숨결을 듣는 맛도 적지 않다. 눈길을 끄는 화려한 테크닉은 없지만 서서히 마음을 파고드는 우아한 서정성이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최근 바로크 시대의 향취를 재현해내려는 현악기 연주자가 많이 등..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Vladimir Ashkenazy, 1983~ )와 대표곡 감상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Vladimir Ashkenazy, 1983~ ) Pianist & Conductor 피아노 주자이기도 하며, 소련 출신이지만, 현재는 아이슬란드의 국적을 가진 세계 유수의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이다. 모스크바(모스코) 서쪽의 도시 고리키에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원 이름은 블라디미르 다비도비치 아슈케나지이다.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다음해에는 일찍이 학생 오케스트라와 공연하여, 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였을 정도로 눈부신 재능을 보였다. 그 후 방송에도 출연하였는데, 9세 때 모스크바 음악원 부속의 중앙음악학교에 입학하여 산베티안 여사에게 배웠다. 1955년 18세의 나이로 10년제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바르샤바의 쇼팽 국제 콩쿠르에 나가 2등으로 입상하..

바이올린 명기 : 스트라디바리우스 vs. 과르네리

바이올린 명기 : 스트라디바리우스 vs. 과르네리 세계적으로 수많은 제작자들이 있지만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바이올린은 1566년 제작된 아마티를 비롯하여 17~18세기 스트라디바리우스, 과르네리 루제리, 테스토레, 토노니, 과다니니, 그란치노, 스토리오니, 갈리아노, 고프릴러 등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대략 20만달러 이상에서 거래되고 있다. 19세기의 체루티, 프레젠다, 로카, 안토니아치 등도 10만~30만달러 이상에서 거래되는 명기다. 그중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는 명품 악기의 대명사로 통한다. 뛰어난 음색과 희소성의 가치 때문에 대당 수십억원을 호가한다. 소더비, 크리스티 등 영국과 미국의 경매장에서 이 악기들의 경매 가격은 매년 10% 이상 뛰고 있다. 대체 이 악기들은 어떤 소리를 ..

피셔 디스카우 (Dietrich Fischer-Dieskau, 1925~2012)와 대표곡 감상

피셔 디스카우. 지난 92년 공식적인 은퇴 공연을 가졌던 그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그의 공로와 업적은 오페라, 바흐, 현대곡 초연, 그리고 음악저술의 영역에서도 빛나고 있지만 그가 20세 최고의 리트 가수라는 데는 아무도 이견을 달지 못할 것이다. 베를린의 유력한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나치와 히틀러의 치하와 전쟁의 와중에서 보냈다. 이미 전쟁이 진행 중이던 41년, 게오르크 발터에게 성악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이듬해 베를린 고등음악학교에서 헤르만 바이센보른을 사사했다. 전쟁이 극에 달하던 1943년, 불과 18세이던 그는 징집되어 전쟁터에 나가게 된다. 성악가의 꿈을 접어두고 총을 잡은 그는 다행히 죽음으로 내몰리지는 않았다. 이탈리아 전선에서 미군의 포..

린지 스털링(Lindsey Stirling, 1986~ )과 대표곡 감상

린지 스털링(Lindsey Stirling, 1986~ )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퍼포먼스 아티스트 및 작곡가 린지 스털링(Lindsey Stirling, 1986년 9월 21일~ )은 캘리포니아 주의 샌타애나에서 태어났으며, 애리조나의 길버트에서 자랐다. 그녀는 유타의 프로보로 이주해 브리검영 대학교에서 치료 레크리에이션을 배웠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를 전도하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가, 2009년 프로보로 돌아와서 계속해서 대학을 다녔다. 그녀는 그곳에서 2012년 12월까지 거주하다가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애리조나로 돌아갔다. 5살 때 아버지가 틀어준 클래식 음악에 영향을 받아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12년간 개인적으로 레슨을 받았다. 그녀가 16살때 친구들과 메스키트 고등학교의 S..

라흐마니노프 (Sergei Rachmaninoff, 1873∼1943)와 대표명곡

러시아 작곡가·피아니스트·지휘자. 세모노보의 귀족집안에서 태어났다. 페테르부르크음악원을 거쳐서 모스크바음악원에서 공부했으며 18세 때 피아노과, 19세 때 작곡과를 졸업했다. 그 무렵 작곡한 피아노를 위한 《전주곡 C단조》로 이름을 떨쳤으며,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도 전개했는데, 자신이 초연(初演)한 《피아노협주곡 제 2 번 C단조(작품 18, 1901)》로 글린카상을 받고 명성을 확립했다. 1904년부터 2년간 볼쇼이극장의 지휘자가 되었으며, 1906년에는 자작 오페라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를 초연했다. 1906년 드레스덴으로 옮겨가 그곳에서 작곡한 《교향곡 제 2 번 E단조(작품 27, 1907)》로 두번째 글린카상을 받았다. 1909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듬해까지 피아니스트로서 활약했으며, 1909년..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David Oistrakh,1908 - 1974)와 대표곡 감상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David Oistrakh,1908 - 1974) 야사 하이폐츠와 함께 20세기 바이올린의 양대산맥 20세기 바이올린의 양대산맥을 꼽으라면, 야사 하이폐츠(Jascha Heifetz, 1901-1987)와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를 선택하는데 이견을 없을 것이다. 오이스트라흐는 개성있는 명인들이 활동했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중반까지 하이페츠와 함께 자신만의 바이올린 제국을 구축한 인물이다. 연주스타일에 있어서도 하이페츠와 함께 후배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하이페츠가 차갑고 냉정한 연주라는 평가에 비해,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인간미 넘치는, 그리고 깊이 몰입해 갈 수 있는 연주라는 평을 듣는다. 오이스트라흐는 1908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오데사 태생으로, 오데사..

김동규와 대표곡 감상

바리톤 김동규는 1991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성악 콩쿨인 제31회 베르디 국제 성악 콩쿨에서 1위로 입상하였다 그 후 모든 성악인들이 동경하는 이태리 밀라노의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 오디션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통과하여 오페라 『바다의 분노』를 시작으로 유럽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후 유럽 각지에서 오페라 『크리스토버 콜롬보』, 『마법사의 딸』, 『오텔로』, 『사랑의 묘약』, 『일 트로바토레』,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주역으로 출연하였다.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도니제티의 오페라 『린다 디 샤모니』로 세계적인 소프라노 에디타 그루베로바와 첫 음반제작을 시작으로 독일 뮌헨에서 오페라 『청교도』로 그루베로바와 두 번째 음반을 제작하였다. 이태리 도리노 왕립오페라 극장에서 『운명의..

안드레아스 숄(Andreas Scholl)과 대표곡 감상

1967년 11월 10일, 비스바덴에서 아주 가까운 독일의 엘트빌(Eltville)에서 태어나 키드리히(Kiedrich)에서 어린 시절을 지냈다. 7살 때부터 6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독일에서는 두 번 째로 오래된) '키드리히 코르부벤(Kiedrich Chorbuben)소년 합창단'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숄의 10대 시절은 클래식보다는 파퓰러 쪽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실제로 친구들과 독일 락큰롤 컨테스트에 나가는가하면 2매의 팝 싱글 음반을 발표할 만큼 파퓰러 음악에 열광한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음반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숄은 스위스 바젤로 가서 스콜라 칸토룸 바젤에 입학하고 성악과 고음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발성법이라든지 음악을 ..

안드레아스 숄(Andreas Scholl,1967~) : 단아하고 깊이 있는 음악성으로 단연 돋보이는 카운터테너

19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수퍼맨'의 외모를 갖추었다면 가장 남성다운 늠름한 모습일 것이다. 헨델의 ‘옴브라 마이 푸’를 부드럽고 화사한 고음으로 처리할 수 있다면 가장 여성다운 목소리일 것이다. 가장 남성적인 육체와 가장 여성적인 목소리를 한데 모으면 어떤 모습이 나올까. 카운터테너들 가운데 선두주자로 꼽히는 안드레아스 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80년대 이후 불어닥친 ‘원전 연주(바로크시대 당시의 악기와 기법으로 연주하는 것을 말함)’의 새로운 흐름을 타면서 각광받기 시작한 카운터테너는 흔히 ‘제3의 성’으로 불린다. 외모는 남성인데 목소리는 선이 고운 여성이기 때문이다.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투명한 소리를 자랑하는 카운터테너들은 원전 연주 붐과 더불어 80년대 이후 각광받고 있다. 안드레아스 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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