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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20세기 러시아음악 142

하차투리안 : 모음곡《가면무도회》[Kiril Kondrashin · RCA Victor Symphony Orchestra]

Aram Il'ich Khachaturian,1903 ~ 1978 Masquerade Suite 사회주의 시절 소련에서 인민 예술가 칭호를 받고 무대 감독으로 활동하던 루벤 시모노프 (Ruben Simonov, 1899 - 1968)는 러시아 시인이며 극작가이었던 미하일 레르몬토프 ( Mikhail Lermontov, 1814 - 1841)의 작품 "가면무도회 (Masquerade)"를 같은 제목으로 무대에 올리면서 아람 하차투리안 (Aram Khachaturian, 1903 - 1978)에게 무대 음악을 의뢰하였다. 이 작품은 1941년 6월 21일 "가면무도회 (Masquerade)"라는 제목으로, 그 성공 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모스크바의 바흐탄코프 (Vakhtangov) 극장에서 초연되었지만..

하차투리안 : 발레음악《가이느(Gayane)》중 "자장가" [St. Petersburg State Symphony Orchestra]

Aram Il'ich Khachaturian,1903 ~ 1978 Gayane: Lullaby 1942년에 발표된 발레음악 '가이느(Gayane, 가야네라고도 한다)'는 짙은 향토색과 원시적인 멜로디,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담고 있는 4막 5장의 발레작품으로 아르메니아의 국경 부근의 집단농장에서, 밀수꾼이자 성격이 포악한 남편에게 살해당할 뻔한 아내 가이느가 자기를 구해준 경비대장 카자코프와 맺어진다는 줄거리로 되었으며 194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되었다. 발레음악 가운데서 '장미소녀들의 춤' '자장가' '칼의 춤'등 3곡을 따로 떼어서 관현악모음으로 편성했는데 이 곡이 오늘날 널리 연주되고 있다.

라흐마니노프 : 교향곡 제3번 A단조, Op.44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 Vladimir Ashkenazy]

Sergei Rachmaninoff, 1873~1943 Symphony No. 3 in A Minor, Op. 44 그의 최후의 교향곡인 이 곡은 1935-6년에 걸쳐 작곡되었다. 여기에 사용된 테마는 모두 슬라브적인 색체가 짙은 것으로서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러시아적이다. 이는 그의 고국에 대한 회상이며 옛일을 그리워함이 잠재해 있어 꿈에 차 있다. 1. Lento - Allegro moderato 주된 악장은 알레그로 모데라토이다. 제 1테마는 오보의 연주로 제시된다. 어느 좁은 음역에 같은 모티브를 반복하는 러시아의 어두움을 지닌 테마이기도 하다. 제 2테마는 첼로가 연주하는데 E장조로 나타난다. 이는 소나타 형식에 따라 발전된다. 2. Adagio ma non troppo 이 악장에서 그 테마 ..

라흐마니노프 : 교향곡 제2번 E단조, Op.27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 Vladimir Ashkenazy]

Sergei Rachmaninoff, 1873~1943 Symphony No. 2 in E Minor, Op. 27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보통 피아니스트 또는 피아노 음악 작곡가로 기억된다. 물론 그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후기낭만주의 비르투오소 피아니즘의 연장선상에서 현란한 연주기교가 부각되는 피아노 음악을 다수 남겼다. 오늘날 공연장에서 주로 접하게 되는 그의 작품들을 꼽아보면 이런 이미지는 더욱 굳어진다. [전주곡], [회화적 연습곡], [피아노 소나타 제2번], [피아노 협주곡 제2번], [피아노 협주곡 제3번],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등 대개 피아노 독주곡 내지는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작품이다. 반면에 라흐마니노프가 관현악 분야에 남긴 대작들..

라흐마니노프 : 교향곡 제1번, Op.13 [Royal Concertgebouw Orchestra · Vladimir Ashkenazy]

Sergei Rachmaninoff, 1873~1943 Symphony No.1 in D Minor, Op.13 교향곡 제1번 D단조 작품 13 는 러시아의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가 처음으로 완성시킨 교향곡 이다. 1895년 8월 30일 에 완성되고 2년 후인 1897 년 3 월 15 일 에 페테르부르크에서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 지휘 러시아 심포니 학회에 의해 초연되었다. 라흐마니노프는 일찍부터 교향곡의 작곡에 의욕을 보이고, 모스크바 음악원 재학중인 1891 년에 최초의 D단조 교향곡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이 시도는 제 1 악장을 완성시킨 시점에서 좌절하고 미완성 인 채로 끝났다. 이 작품은 현재 유스 심포니로 알려져있다. 그는 졸업 후 1895년 들어 다시 동일한 D단조 교향곡의 작곡을 시작..

쇼스타코비치 : 첼로 협주곡 2번, Op.126 [Mischa Maisky · London Symphony Orchestra · Michael Tilson Thomas]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Cello Concerto No.2, Op.126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Dmitri Shostakovich, 1906 - 1975)의 두 번째 첼로 협주곡 사 장조 (Cello Concerto No.2 in G Major, Op. 126)"는 첫 번째 협주곡 (Cello Concerto No. 2 in E flat Major, Op.107)과 마찬가지로, 당시 소련 최고의 첼로 비루투오조라 추앙 받았던, 미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Mstislav Rostropovich, 1927 - 2007)를 위하여 쓴 작품으로 1066년 봄 크리미아의 휴양지에서 완성되었다. 의 60 번째 생일을 맞는 1966년 9월 25일에 모스크바 음악원 (Moscow C..

쇼스타코비치 : 첼로 협주곡 1번, Op.107 [Mischa Maisky · London Symphony Orchestra · Michael Tilson Thomas]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Cello Concerto No.1, Op.107 1959년 여름은 쇼스타코비치에게 있어서 운명적인 시기였다. 그는 당시 레닌그라드(현재는 원래 지명인 성 페테르부르크로 바뀌었다) 근교에 위치한 코마로보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1953년 이곳에서 그는 스탈린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교향곡 10번]을 작곡한 바 있다. 이 독재자의 죽음이 작곡가의 삶이 극단적인 종말을 향하도록 변화시켰다는 것은 사실이다. 2년 뒤 죽음의 사자가 쇼스타코비치의 가족을 찾아와 1954년 말 그의 부인인 니나 바르사르가 결국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쇼스타코비치에게는 병마가 찾아와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마르가리타 카이노바라는 젊은 여인과의 새로운 사랑과 결..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5번, Op.141 [Moscow Radio Symphony Orchestra · Maxim Shostakovich]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15 in A major, Op. 141 15번 교향곡은 음악적 형식으로 본다면 전형적인 교향곡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시 1번 교향곡의 뉘앙스를 풍기면서 두 교향곡이 서로 맞물고 있는 특이한 형태를 차지하고 있다. 즉 절대 음악적 성격을 띄고 있으며 이는 음악적 퇴행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그 기나긴 교향곡의 길에 마지막 이정표를 세우고 영원한 음악적 순환의 굴레로 만들었다. 15번 교향곡의 이런 작품적 특징은 그의 마지막 작곡의 시기에 위치해서, 작품 내면 못지 않게 시기적으로도 매우 아이러니컬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15번 교향곡이 쇼스타코비치 전체 교향곡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바로 그의 모든 교향곡에 대한 ..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4번, Op.135 [Moscow Chamber Orchestra·Rudolf Barshai]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14, Op. 135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역사에서 대담하고 독창적인 개혁을 이루어냈다, 그 중에서도 노래를 삽입한 4곡은 각기 특이한 존재로 자리 잡았으며,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곡들이라고 할수있다,특히 만년에 작곡한 제13번과 제14번은 그가치를 인정받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계열의 정상에 우뚝서게 만든 걸작이다. 특히 제14번은 완성도와 형식 형태의 독창성으로 쇼스타코비치가 만들어낸 15곡 교향곡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11개의 악장은 각각 스페인(2),프랑스(6),러시아(1),독일(2) 등 4명의 시인이 쓴 시를 바탕으로 작곡되었다. 1-2악장 스페인의 가르시아 로르카 (1889-1936) , 3-8악장..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3번《바비 야르》,Op.113 [Moscow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 Kirill Kondrashin]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13 in B flat minor, Op. 113 "Babi-Yar" 1956년 제20회 당 대회에서 그 유명한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비판 폭로 연설이 있은 후, 소비에트에서는 소위 "해빙"이 시작되었다. 쇼스타코비치도 그 자리에서 그의 연설에 지지를 보내며 '음악 창작에 관한 두세가지 긴급한 문제'라는 논문을 "프라후다'에 게재하고, 젊은이들에게 과감한 혁신을 호소했다. 그러나, 그가 이후에 발표한 제11, 12번은 보수적 기법에 근거한, 혁명을 다룬 표제 음악이었다. 그에 반해 제13번은 "해빙"의 시기에 소비에트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유대인 문제를 대담하게 다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회 고발성 짙은 작품이라고 할수 있으..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2번《1917년》,Op.112 [Moscow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 Kirill Kondrashin]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12 in D Minor, Op. 112 "The Year of 1917" 11번에 이어 구소련의 혁명 정신을 나타낸 작품입니다. 1917년은 레닌의 주도로 공산당이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켜 황제 “차르”의 권위를 묵살하고 황제의 지배를 벗어나게 만든, 말 그대로 혁명의 해였지요. 쇼스타코비치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 곡을 작곡하게 되고 이 곡 첫머리에 “레닌의 회상에 바친다 - To the Memory of Lenin”라는 표제를 쓰게 됩니다. 1악장은 "혁명의 페트로그라드"인데, 혁명 전야의 페트로그라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머리부터 비장한 저현의 흐름이 인상적입니다. 바순과 클라리넷, 바이올린 등이 비장한 주제를 계속해서..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1번《1905년》,Op.103 [USSR State Symphony Orchestra · Konstantin Ivanov]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11 in G minor, Op. 103 "The Year 1905" 1905년 1월 9일, 안개가 자욱히 낀 일요일 오후, 페테르부르크 거리에서 노동자들이 황제의 거처인 '동궁전'을 둘러싸고 마치 파도치듯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황제에게 탄원하기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聖像 (성상)과 깃발을 든 채로 걷고 있었던 것이다. 전혀 무방비 상태였던 민중들에게 황제의 군대가 갑작스럽게 일제 사격을 가함으로써, 수 많은 사상자를 낸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의 각 도시의 노동자들이 저항에 나섰고, 에이젠슈타인의 영화로 잘 열려진 군함 포촘킨의 반란도 일어난다. 이것이 러시아 제1차 혁명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0번, Op.93 [Leningrad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 Yuri Temirkanov]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10 in E Minor, Op. 93 교향곡 10번은 전체 쇼스타코비치 생애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교향곡 9번부터 천천히 되새겨볼 필요가 있기에 불필요한 것 같은 언급들을 삭제할 수 없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작곡된 7번과 8번으로 인해서 한껏 부풀어 오른 스탈린에 대한 맹목적인 추대와 숭상 (공산주의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와중에서 당연히 쇼스타코비치의 외형적인 면도 우선은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음을 이해하여야 한다)이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9번 교향곡에 대해서 스탈린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9번이 상당히 명랑하면서 밝..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9번, Op.70 [Gennady Rozhdestvensky ·USSR Ministry of Culture Symphony Orchestra ]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9 in E flat major, Op.70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비로소 7번부터 이어지던 전쟁 교향곡의 대미를 이 9번으로 장식한다. “승리의 교향곡”으로도 불리어졌지만 이 9번은 이전의 7번과 8번의 드러난 애국주의 경향이 희석되었다는 평가를 받아 악명높은 안드레이 주다노프의 비판의 희생물이 되자 결국 쇼스타코비치는 의도적으로 공산당을 찬양하는 “숲의 노래”를 작곡하면서 10번 교향곡과 다소 멀어지게 된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교향곡이란 장르는 서서히 쇠퇴해지고 말았다. 그 이전에는 교향곡 자체는 조성의 튼튼한 골격하에서 이루어지는 구조체라는 것이 지배적인 인식이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조성을 파괴하는 경..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8번, Op.65 [Yevgeny Mravinsky, Leningrad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 8 in C Minor, Op. 65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7번에 이어 2차 세계대전중인 1943년에 작곡되어 같은 해에 므라빈스키에 의해 초연된 작품으로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침통한 마음을 표현한, 비관이 바닥에 짙게 깔려있는 무거운 작품입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비애와 우수의 정점을 묘사했던 차이코프스키의 6번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유명한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와 함께 전쟁 교향곡이라 불리는, 나치독일에 의하여 포위된 레닌그라드에서 작곡된 작품. 7번이 나치에 맞서 용감히 싸운 승리의 기록을 묘사하고 있다면 8번 교향곡은 절제절명의 위기와 절망의 순간에 처한 인간의 심층을 처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곡의 전체적인 짜임은 전통적인 4악장의 구성..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7번《레닌그라드》, Op.60 [Evgeny Svetlanov, USSR State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 7 in C Major, Op. 60 "Leningrad"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7번교향곡은 2차대전의 한 고비로 유명한 1941년의 레닌그라드 전투 당시에 작곡되었다. 당시에 레닌그라드는 나치독일군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빠져있었다. 결국 레닌그라드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 포위에서 풀려나는데 쇼스타코비치는 이 포위된 도시에서 7번 교향곡을 완성한다. 그해 12월에 완성된 이 곡은 레닌그라드시에 헌정되었고 발표되자마자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연주되었다. 전쟁중 쓰여진 7번과 8번, 그리고 9번 교향곡을 전쟁 교향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중에서는 이 7번이 가장 유명하다. 쇼스타코비치는 당시 실제로 레닌그라드에 살고 있었는데, 전쟁이 일어나자 쇼스타코비..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6번, Op.54 [Yevgeny Mravinsky, Leningrad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 6 in B minor, Op.54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쇼스타코비치는 역작 을 발표한 지 2년여 만에 을 발표했다. 제5번이 劇詩(극시)적이며 인간적인 데 비해 은 서정적이고 자연적이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청아하고, 구름 한점 없는 부드러운 태양 빛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곡은 '작곡가 자신의 예술 생활을 소비에트 연방의 새로운 생활과 연합해 가는 노력'을 보여준 대표작으로 까지는 주로 자신의 내면 생활에 눈을 돌렷던 그가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이후의 작품에서는 주요 소재를 사회사상으로 바꾸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교향곡은 하나의 과도기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 싶다. 이 곡은 그 양식상 매우 특이한 성격을 띠고 있다. 전통적인 교향곡이 소나..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5번《혁명》, Op.47 [Evgeny Svetlanov, USSR State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 5 in D minor, Op. 47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다. 이 작품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유일하게 공연이 된 공산권 음악이었다. 작곡가건 연주자건 간에 당시엔 공산국가 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작품은 절대로 공연을 하지 못했다. 물론 음반들의 국내 반입도 끔찍할 수준으로 차단했었다. 당시 므라빈스키나 콘드라신의 쇼스타코비치 판을 듣기 위해서는 독립운동을 하는 비밀 지하조직의 구성원들 처럼 판을 가지고 있는 사람 집에 은밀하게 모여 작은 소리로 틀어놓고 숨죽여 들어야만 했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쇼스타코비치의 LP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어놓기도 하고. 1970년대 후반, 뉴..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4번, Op.43 [Kirill Kondrashin, Moscow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 4 in C minor, Op.43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단악장이었던 2번과 3번과는 달리 고전적 형식을 그대로 답습한, 교향곡의 전형과도 같은 작품이다. 특히 이 4번은 초연을 앞두고 “므첸스크의 멕베드 부인” 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초연이 취소됨은 물론 26년 후에나 빛을 보게 된다. 이 은 교향곡1번을 만든지 10년째 되던 1935년, 29세 때 작곡, 이듬해인 1936년에 완성되었다. 같은 해 4월에 예정되었던 첫 공연은 몇 차레의 리허설까지 마친 찻태에서, 작곡자인 그가 레닌그라드 필의 지휘대 위에 직접 올라가 총보를 집어 들고 퇴장하는 해프닝이 벌어져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이 일로 인해 이작품은 빛을 보지 못햇으나, 1961년 12월 3..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3번《5월 1일》,Op.20 [Kirill Kondrashin · Moscow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 Alexander Yurlov Russian State Academic Choir]

Symphony No. 3 in E-Flat Major, Op. 20 "The First of May"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표제에 나와 있듯이 이 작품은 쇼스타코비치가 구소련 정부(정확히는 국립 도서 출판소 음악국)의 요청으로 “10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쇼스타코비치는 구소련의 체제에 물든 목적성을 가진 작품들을 쏟아내게 됩니다. 특히 2번과 3번은 쇼스타코비치 스스로도 자신이 추구하는 작풍과 맞지않다고 여겼고 그의 아들인 막심에게도 결코 지휘를 맡기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2번《10월》,Op.14 [Kirill Kondrashin · Moscow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 Alexander Yurlov Russian State Academic Choir]

Symphony No. 2 in B Major, Op. 14 "To October"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표제에 나와 있듯이 이 작품은 쇼스타코비치가 구소련 정부(정확히는 국립 도서 출판소 음악국)의 요청으로 “10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쇼스타코비치는 구소련의 체제에 물든 목적성을 가진 작품들을 쏟아내게 됩니다. 특히 2번과 3번은 쇼스타코비치 스스로도 자신이 추구하는 작풍과 맞지않다고 여겼고 그의 아들인 막심에게도 결코 지휘를 맡기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번, Op.10 [Gennady Rozhdestvensky · The USSR Ministry Of Culture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 1 in F Minor, Op. 10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19세 소년 쇼스타코비치는 페테스부르크 음악학교의 졸업작품으로 제1번 교향곡을 완성하게 되는데 1번과 2번을 초연했던 ‘니콜라이 말리코’에 의해 서구에 알려지자마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후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표제적인 경향이 아직은 나타나지 않고 이전의 고전주의 작풍의 영향이 보이는 것이 다른 번호의 교향곡들과 차이점이랄 수도 있겠지만 그의 4번이나 마지막 교향곡인 15번에서도 뚜렷한 고전 양식을 취한 것을 봐선 그의 마음에는 늘 목적성 없는 순음악을 동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됩니다. I. Allegretto - Allegro non troppo II. Allegro..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제3번, Op.30 [Martha Argerich · Radio-Symphonie-Orchester Berlin · Riccardo Chailly]

Sergei Rachmaninoff, 1873~1943 Piano Concerto No.3 In D Minor, Op.30 확고한 자기스타일을 확립한 라흐마니노프가 충분한 여력으로 정성들여 완성시킨 곡이며, 세련된 수법을 찾아볼 수 있으나, 그런대로 개성적인 요소는 희박해진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개개의 가락은 아름답고, 전체에 감도는 감미로운 분위기와 러시아적인 정서, 피아노의 기교의 묘미는 이 곡을 매력있는 것으로 하고 있다. 피아노협주곡 제3번 중 D단조 1악장은 영화 "샤인(Shine)"에서 OST로 실제 연주됨으로써 이 영화를 더욱 감동적으로 만든 그야말로 유명한 곡이다. 이 협주곡은 1909년 그가 모스크바의 러시아 음악 협회 부회장 겸 교향악 연주회의 지휘자로 활약하고 있을..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제2번, Op.18 [Krystian Zimerman · Boston Symphony Orchestra · Seiji Ozawa]

Sergei Rachmaninoff, 1873~1943 Piano Concerto No.2 In C Minor, Op.18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로도 유명하지만, 그 자신이 아주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 그는 아주 손이 크고 테크닉도 뛰어나, 힘과 기교를 겸비한 빼어난 연주를 하였다. 그의 피아노 곡들은 당연히 직접 연주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작곡되었느니, 연주하는데 피아니스트의 엄청난 기량이 필요하다. 관객들에게는 피아노의 능력을 극대화한 명곡이지만,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을 절망에 빠뜨리는 난곡들이기도 하다. 그는 평생 4개의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했는데, 그 중 2번과 3번이 가장 유명하다. 1번은 10대 후반에 작곡했다가 나중에 전면적으로 수정해서, 실질적으로는 이 2번이 첫 번째 협주곡이라고 보아도 큰 무리..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제1번, Op.1 [ Krystian Zimerman · Boston Symphony Orchestra · Seiji Ozawa]

Sergei Rachmaninoff, 1873~1943 Piano Concerto No.1 in F sharp minor, Op.1 우리에게 익숙한 유명한 작곡가들 가운데 작품 번호 1번으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한 사람은 아마도 라흐마니노프가 유일할 것이다. 더군다나 실내악이나 독주곡도 아니고 관현악에 대한 이해와 피아노에 대한 노련함을 수반해야 하는 피아노 협주곡을 자신의 첫 출판작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어지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10대의 라흐마니노프는 세상을 향해 포효하듯 피아노 협주곡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에 앞장섰다. 작곡가는 학생 시절이던 1890년(불과 17세)부터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성했는데, 특히 2악장과 3악장은 불과 이틀 반 ..

카발레브스키 : 코미디언 모음곡, Op. 26 [Armenian Philharmonic Orchestra · Loris Tjeknavorian]

Dmitri Kabalevsky, 1904 - 1987 The Comedians Suite, Op.26 드미트리 카발레프스키 (Dmitri Kabalevsky, 1904 - 1987)의 모음곡 "코미디언 (The Comedians)"은 1941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오늘날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는 작품들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태계 소련 출신의 작가 마크 다니엘 (Mark Daniel)이 쓴, 독일의 과학자 구텐베르크 (J Gutenberg, 1400 - 1468)와 한무리의 떠돌이 코미디언들이 만들어내는 페이소스를 그린 희곡이 "과학자와 코미디언 (Inventor and Comedian)"이란 제목으로 모스크바의 중앙 어린이 극장의 연극 무대에 올려지자, 는 이 연극 공연을 위..

하차투리안 : 발레음악《가이느(Gayane)》중 "칼의 춤" [The Philadelphia Orchestra · Eugene Ormandy]

Gayane, Ballet in 4 Acts. - 1. Sabre Dance Aram Il'ich Khachaturian,1903 ~ 1978 1942년에 발표된 발레음악 '가이느(Gayane, 가야네라고도 한다)'는 짙은 향토색과 원시적인 멜로디,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담고 있는 4막 5장의 발레작품으로 아르메니아의 국경 부근의 집단농장에서, 밀수꾼이자 성격이 포악한 남편에게 살해당할 뻔한 아내 가이느가 자기를 구해준 경비대장 카자코프와 맺어진다는 줄거리로 되었으며 194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되었다. 발레음악 가운데서 '장미소녀들의 춤' '자장가' '칼의 춤'등 3곡을 따로 떼어서 관현악모음으로 편성했는데 이 곡이 오늘날 널리 연주되고 있다. 지금 듣는 일명 "칼의 춤" 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

하차투리안 : 발레음악《가이느(Gayane)》중 "장미소녀들의 춤" [The Philadelphia Orchestra · Eugene Ormandy]

Gayane, Ballet in 4 Acts. - 3. Dance of the Young Maidens Aram Il'ich Khachaturian,1903 ~ 1978 1942년에 발표된 발레음악 '가이느(Gayane, 가야네라고도 한다)'는 짙은 향토색과 원시적인 멜로디,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담고 있는 4막 5장의 발레작품으로 아르메니아의 국경 부근의 집단농장에서, 밀수꾼이자 성격이 포악한 남편에게 살해당할 뻔한 아내 가이느가 자기를 구해준 경비대장 카자코프와 맺어진다는 줄거리로 되었으며 1942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되었다. 발레음악 가운데서 '장미소녀들의 춤' '자장가' '칼의 춤'등 3곡을 따로 떼어서 관현악모음으로 편성했는데 이 곡이 오늘날 널리 연주되고 있다.

스트라빈스키 : 발레음악《페트루슈카》(오케스트라 버전) [The Cleveland Orchestra · Pierre Boulez]

Igor Stravinsky,1882~1971 Petrushka, ballet (burlesque) in 4 scenes for orchestra (1947 version) 디아길레프가 신예 작곡가인 스트라빈스키에게 대규모 오케스트라용 발레음악인 를 위촉한 도박에 가까운 모험이 커다란 성공을 거두자 숨 돌릴 겨를도 없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전투를 벌이는 듯한 일종의 발레-콘체르트슈튀크(Ballet-Konzertstück)를 작곡해 달라고 작곡가를 설득했다. 이에 1910년 여름 스위스에 머물고 있던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의 꼭두각시 인형인 페트루슈카(영국에서는 Punch, 프랑스에서는 Polichinelle, 이탈리아에서는 Pulcinella)라는 제목을 떠올리게 되어 1장의 러시아 춤과 2장 대부..

스트라빈스키 : 불새 (The Firebird) (모음곡버전) [Israel Philharmonic Orchestra · Leonard Bernstein]

The Firebird - Suite (1919) Igor Stravinsky,1882~1971 1910년 6월 25일 파리 오페라 하우스에서 러시아 발레단에 의해 초연된 [불새]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스트라빈스키는 여러 차례 커튼콜을 받았다. 대위법을 사용하지 않은 채 멜로디를 집요하게 이어나가는 모습, ‘카셰이 왕의 지옥의 춤’에서 등장하는 격렬한 리듬의 불규칙한 향연으로부터 강렬한 색채감과 이국적인 정취를 느꼈던 파리 청중의 환호에 의해 스트라빈스키는 하루아침에 진정한 작곡가이자 시대의 스타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다. 작품의 인기에 부응하고자 작곡가는 1911년에 발레의 장면들을 떼어내어 오케스트라를 위한 연주회용 모음곡을 만들었고 유럽 각지에서 발레 이상의 커다란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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