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탐방

[2010 부산비엔날레] 관람후 꼭 추천하고픈 작품 10선

想像 2010. 9. 19.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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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개막한 부산비엔날레는 '진화속의 삶(Living in Evolution)'이라는 주제에 집중해 23개국의 현대미술작가 작품들을 모아놓은 예술축제다. 오는 11월 20일까지 71일간의 대장정을 이어간다.

부산시립미술관, 요트경기장, 광안리해수욕장 등에 주제에 충실한 160여점의 작품이 전시됐고, 부산문화회관, 부산시청 전시실에서는 관람객들이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극사실주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2010 문전성시 프로젝트와 연계한 부전시장 ‘시장통 비엔날레’도 행사를 찾은 관광객들에게 손짓한다.

2010 부산비엔날레의 주전시장인 시립미술관, 광안리해수욕장, 요트경기장의 작품들 보고와서 개인적으로 꼭 봐야 할 주요 작품 10선을 뽑아 보았다.

1. 타위싹 씨텅디의 '달러 009' (광안리 해수욕장)

회화와 그래픽에서 출발한 작가 씨텅디는 "롤래이(Lolay)"(태국어로 ‘형’이라는 뜻)라고 불린다. 현재 그는 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하는 한편, 직접 아티스트 북 등을 제작하고 있기도 하다.

씨텅디는 주로 인물들을 그리는데, 그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고찰이다. 그는 그림을 그림으로써  인간에 대한 고찰을 거듭하며, 또한 그림 속 세계의 수많은 캐릭터들을 만들어 냈다. 최근 그는 입체 인물상을 제작했는데, 그것은 마치 그의 그림에서 고스란히 세상 밖으로 뛰쳐나온 것 같다. 그가 만드는 인물상은 미술관 안에 갇혀 전시되기보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열려진 장소에 전시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일상적인 공간에 놓여짐으로써, 오히려 한층 더해지는 인간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의 단절로 인한 어떤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달러 009(Dollar 009)>는 방콕 문화예술센터(Bangkok Art & Culture Centre)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써 제작된 작품으로, 지금까지 그가 제작해온 인물상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이 작품은 방콕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지역에 위치한 방콕 문화예술센터의 정면에 설치하도록 제작되었다. 희고 매끄러운 피부와 우주인과도 같은 신체 비율을 가진 “그녀”, <달러>는 이름 그대로 소비를 멈추지 않는 인간을 우습게 보는 존재이다. 첫 발표 이후에도 <달러>는 방콕 각지를 방문해서는 그 곳의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이번 전시에서 <달러>는 부산의 광안리해수욕장에 전시되는데, “그녀”에게는 첫 해외여행이며, 처음으로 바다를 보는 것이다. 또한 전시회 기간 중 그녀는 본전시장 중  한군데인 미술관 앞 광장으로 이동될 예정이다. 그녀는 처음으로 보는 지구의 바다와 그 바다를 즐기는 인간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2. 김정명의 '머리시리즈 2001-05' (광안리 해수욕장)

김정명은 세계미술과 인류문명의 신화적 역사에 대한 유쾌한 뒤집기를 통해 우리의 삶과 욕망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 표현양식으로는 팝(Pop)적이고 유머러스한 요소가 묻어나거나 개념적 작업 성향을 보이면서도 형상을 구축하는 방식 즉 조형적 접근방식에도 충실한 면모를 보인다. 재료의 물성과 수(手)작업을 존중하는 그는 이번 비엔날레에서도 수년간에 걸친 작업공정을 통해 제작된 브론즈 조각 작품 <큰머리>시리즈를 출품하였다. 원래 총 12가지의 주제 중에서 만화캐릭터들과 자본의 소산인 상표(브랜드)를 제외한 10개의 작업이 설치된다. 인간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건축물, 동물적 본능과 성의 쾌락, 지적 연구와 사회적 욕구를 반영하는 상(賞, award)과 책들, 세계와 운명을 관장하는 별자리와 십이지(十二支), 종교, 담기고 비워지는 사유의 장소인 포켓과 손가락, 욕망과 잉여의 소산인 쓰레기를 인간의 머리 형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광안리 해변에 설치되어 마치 이스터 섬의 모아이상이나 스톤헨지와 같은 유적을 연상시키는 이 작업들은 그 규모나 내용면에서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청동이라는 질료에서 전해지는 육중함과 기념비적인 규모임에도 작품 곳곳에는 그 특유의 위트와 일상의 오브제들이 숨어있다. <큰머리>작품은 근접해야만 그 위에 표현된 개별적 이미지들은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작가는 작품 사이사이에서 발견되는 틈/공간을 통해 머리가 비어있는 형상이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드러냄으로 원경에서 파악된 우리의 선입견을 반전시킨다. 따라서 관객은 작품과 최대한 가까이 만나서 숨은 그림들을 찾는 경험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과거 그의 작품제목에서도 ‘1만년’이라는 시간단위를 사용할 정도로 역사를 대하는 시선의 폭이 광대한데 만약 1만년 후에 이 작업이 폐허 속에서 발굴된다면 혹은 인류가 아닌 다른 생명체들에 의해 발견된다면 이 브론즈 상은 어떻게 해석될 것인지 엉뚱한 상상을 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3. 자독 벤 데이비드의 '진화와 이론'(부산시립미술관)

자독 벤 데이비드는 자연과 생명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관찰하여, 그것들을 아주 심플한 기법으로 시각화 하는 아티스트이다. 철판으로부터 인물이나 일일이 식물의 실루엣 등을 세세한 선으로 잘라내어 그것들을 바닥에 세워 전시하는 그의 작품은, 보는 이에게 자각의 기쁨과 놀라움을 선사해 주는 동시에,  생명에 대한 깊은 고찰의 길을 안내한다. 최근 이 기법을 이용하여 대규모의 설치작품을 제작, 각지의 사람들에게 실물을 보여주고자 매우 활발한 순회전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마치 시각의 트릭을 이용한 마술사 혹은 전도사 같기도 하다. 1991년부터 발표해 오고 있는 작품 <진화와 이론, Evolution and Theory> 또한, 그러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전시회에 따라 그 규모는 상이하나, 가로 약 30미터에 달하는 흰 벽면을 배경으로, 원숭이로부터 시작하여 진화를 거친 유인원의 모습이 섞이고, 또한 인간이 이 세계를 탐구하고자 사용해 온 갖가지 기구들이 마치 선으로 묘사된 그림처럼 부유하고 있다. 그 곳에서 부유하고 있는 유인원 등의 도상들은 각각 다양하게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며 설치되어 있어, 관람객은 위치를 이동함에 따라 복잡하게 중첩되는 여러 도상들을 볼 수 있다. 마치 빅토리아 시대의 과학 서적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한 이러한 시각적 체험은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이 단지 지금까지의 진화를 설명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산업 혁명 이후의 수많은 발명이나 연구자들에 의해 획득된 이론들이 공유됨으로써 지적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지금 또한 그러한 진화의 과정 속에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자신들 또한 그러한 진화 속을 살아가고 있음을 강하게 인식시켜 준다.


4. 자독 벤 데이비드의 '검은 들판'(요트경기장)

자독 벤 데이비드의 또 다른 전시작품 <검은 들판, Black Field>은 작품 주변을 한 바퀴 돌며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장방형의 공간에 펼쳐진 모래바닥을 위로, 수천 개의 세세한 식물들의 실루엣이 서있다. 그것들은 앞에서 보면 모두 검은 색으로, 마치 핵전쟁 후와도 같은 죽음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식물들의 실루엣 뒷면에는 각각 색칠이 되어 있어, 관객이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일제히 각양각색의 색으로 넘실대는 공간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렇듯 화사한 식물들이 번성한 공간은 생명력으로 가득차 있다. <검은 들판>은 전후일체의 생과 사를 화사한 대조로서 표현한 작품으로  2004년부터 세계 각지에서 순회전시되고 있는 작품이다.


5. 코노이케 토모코의 '지구아이' (시립미술관)

현재 코노이케는 회화 뿐 아니라 입체 및 설치 작품 등 다방면으로 작품 제작하고 있는데, 그 근원에 있는 것은 바로 “놀기”이다. 코노이케는 대학 졸업 후 완구기획회사에 입사하여 완구를 제작하게 되면서, “놀기“의 진정한 의미와 즐거움을 알게 된다. “놀기”라는 개념은 타자를 “놀게 하기”라는 것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또한 코노이케의 작품에는 왠지 이 세상과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타자”들이 다수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이 세상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타자는 바로 “사자(死者)”일 것이다.

그녀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일관적 특징은 현실과 비현실이 기묘하게 결합된 듯한 세계를 집요할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낸다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은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모를 두려움을 느끼게 하며 가까이 갈 수 없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코노이케의 회화의 세계에 몰입하다 보면, 그림 속의 다양한 모티브들이 단순히 현실과 격리된 비현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초월한 생과 사의 순환, 문명 이전의 원초에 대한 기억, 그리고, 우리가 태어나 돌아갈 “어딘가”라는 곳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관객들이 딛고 서 있는 그 땅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코노이케는 2009년 그림책을 출판했는데, 그것 또한 그녀가 “타자”와의 관계에서 커다란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책 뿐 아니라 그녀의 모든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야기”라는 “놀이터”를 제공해 준다.

2009년 제작한 <지구아기(Earth Baby)>는 그녀의 설치 작품 중에서도 그 크기가 가장 큰 작품 중 하나이다. 중앙에서 회전하는 기형의 아기는 우주공간에 떠있는 혹성, 즉 지구를 연상시킨다. 또 동시에 마치 지구의 일부가 부풀어 올라 태어나버린 기형아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이 아기의 엄마는 코노이케 자신일지도 모른다.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만이 가까이 가 만질 수 있다. 그 대신 아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상에서 자기 혼자 떨어져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 꿈틀대는 파도같이 굵직굵직한 로프들을 지면에 고정시켜 놓았다. 이 고독한 기형의 아기와 우리는 어떻게 놀아주면 좋을까?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혹성, 지구는 누구와 함께 놀면서 자라갈까?


6. 딘 큐 레의 '농부와 헬리콥터' (부산시립미술관)  

현재 딘 큐 레는 호치민을 거점으로 작품 제작에 힘쓰고 있으며, 그 뿐 아니라 대안공간을 운영하면서 베트남의 젊은 작가들을 이끌고 있다. 그는 베트남계 아메리칸이 그러했듯, 베트남 전쟁이 종결을 고한 1978년, 그가 10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캘리포니아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뉴욕에서 사진을 배운 그는, 전쟁과 이민 문제에 관한 작품들을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제작해 오고 있다.
딘 큐 레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헬리콥터는 베트남에 있어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현재와 같은 형태의 헬리콥터가 개발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30년대 후반이지만,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이 바로 베트남 전쟁 이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인들에게는 커다란 프로펠라를 회전시키며 그들의 토지에 거센 바람을 날리는 헬리콥터야 말로, 전투기 이상의 공격과 침략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베트남 전쟁을 체험한 이들에게는 헬리콥터는 아직도 공포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헬리콥터 그 자체는 군사적 목적만을 위해 개발된 것이 아니다. 현재 일부 베트남의 젊은층 사이에서는 헬리콥터를 직접 제작하여 농업에 유효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3면 스크린을 이용하여 보여주는 그의 영상작품, <농부와 헬리콥터(Farmers and Helicopters)>에는 헬리콥터를 두려워하는 노인들과 젊은 헬리콥터 개발자를 취재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여기에는 역사라는 틀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베트남 전쟁과 그 역사 속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농부와 헬리콥터>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피해 의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그의 작품은 딘 큐 레 자신의 미국 생활을 반영하는 것일까, 그 영상미가 헐리우드 영화 못지않게 세련되었고 스펙터클하다. 실제로 딘 큐 레는 헐리우드에서 제작한 유명한 베트남 전쟁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플래툰(Platoon)” 등에서 가장 전투적인 장면들을 모아 자신의 작품에서 인용하고 있다. 그러한 장명들은 보기에도 스펙타클하지만 헬리콥터를 두려워하는 농민들의 진지한 인터뷰와 그 사이에 삽입되어 있는 전투장면들을 보고 어떤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마는 사람들은 마치 그 자신들 또한 ‘가해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질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에서는 영상과 함께 베트남 농민들이 자체 제작한 헬리콥터의 실물을 전시한다. 영상과 실물의 헬리콥터를 보면서, 쓰라린 역사를 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7. 로랑스 데르보의 <인간 심장이 24시간에...>(부산시립미술관)

로랑스 데르보는 인체를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인체를 대상화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이 작가에게 조각의 핵심 단위는 생명을 상징하는 체액을 밀폐된 유리 용기 안에 담아내는 것이다. 인체는 기계적 구조와 달리 신체 기관들과 사지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짐으로써 그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반면 로랑스 데르보의 신인동형론적 조각은 체액을 담은 유리 오브제들을 집적함으로써 형성될 뿐 어떤 유기적 구조도 암시하지 않는다. 인체의 생명은 단지 살과 피를 연상시키는 유리와 붉은 체액으로 상징될 뿐이다. 오히려 그의 조각에서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다. 밀폐된 유리 용기에 담겨 있는 피는 순환이 멈춘 채로 고여 있는 상태다. 단지 이를 영구히 보존하는 행위는 인간 생명의 유한성을  극복하고픈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

이번 출품작 가운데 하나인 <인간 심장이 24시간에 7000리터의 피를 사출하는 것을 기준으로 이 조각은 1시간 28분 동안 사출된 피의 양을 재현합니다By means of 7000 litres of blood pumped by the human heart in 24 hours, this sculpture represents the quantity of blood pumped in 1 hour and 28 minutes>는 다양한 종류의 유리 용기들을 여러 층으로 쌓아 만든 조각이다. 약 800여개의 용기들은 밝은/어두운 아니면 맑은/탁한 상이한 색조의 혈액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밀폐된 용기 안의 응축되어 가는 혈액은 끔직한 느낌을 주지만 이 조각에서는 철저하게 물상화됨으로써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외양의 대상으로 변모한다.


8. 차기율의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사이'(부산시립미술관)

차기율은 경건한 태도로 ‘자연’에 대해 고찰하는 작가이다. 그에게 있어서 자연이란 인간 문명과 대립하는 것이 아닌,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그러한 그의 사상이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이 설치와 회화로 구성된 <순환의 여행/방주와 강목사이(The journey of circulation/a period between Ark & Kangmok)>이다. 나무, 돌, 물, 때로는 동물의 두개골 등의 자연에서 채집한 소재들과 철, 전선, 고무 그리고 비닐 등의 인공적이 소재들이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구성되어 있는 전시공간은, 그러한 소재들 간에 어떤 힘이 순환하고 있는 것 같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있다. 또한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복잡하게 구부러진 나뭇가지들은 인체가 변용된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타이틀의 일부인 “아크(Ark)”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를 뜻하며, “강목(Kangmok)”이란 16세기말 중국에서 편찬되어 약초와 한방약 등에 대한 방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도감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따온 것이다. 성서에 의하면, 노아의 방주는 대홍수라는 자연의 위협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인류 최고(最古)의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신의 창조물로서의 대자연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대자연 위에 문명을 세워온 유럽적 사상을 상징하는 것이다. 한편 "본초강목"은 대자연을 인간의 생명력, 치유력의 근원으로 삼는 동양적 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작품의 타이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차기율의 작품은 앞서 언급한 두 시각을 모두 내포하고 있으며 인간창조에서 시작되는 동, 서양의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깊이 있게 고찰하고 있다. 즉, “순환의 여행(The journey of circulation)”이란 장대한 시간의 축 안에서 반복되는 생과 사,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사상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차기율의 작품에서 동양과 서양이 융합되는 것은, 그가 태어난 곳이 경기도 화성으로 한국의 카톨릭 역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지역이라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설치 공간에 나열된 그의 드로잉 작품 또한, 작가가 말하는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강하게 느끼게 해준다. 드로잉 작품은 설치작품의 밑그림과도 같아 보이는데, 자연과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를 거듭하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 삶을 상징하는 식물, 그리고 죽음을 상징하는 두개골 등이 자주 등장한다. 그 외에도 근대의 전쟁을 연상케 하는 병기와 현대 소비사회를 상기시키는 패션 사진 등의 콜라주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것들 모두가 지금 우리들이 경험하고 있는 이 시대 또한 언젠가는 태고의 유물로 변해간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듯하다. 이렇게 묵묵히 계속되는 차기율의 작품, 그 자체가 동양과 서양, 태고와 현재를 넘어선 끝없는 사색의 궤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9. 신무경의 '현대인-부산'(부산시립미술관)

신무경은 모터장치와 센서 등의 간단한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일상적 오브제의 반복적 움직임을 통해 문명과 사회현상의 단면을 해학적으로 나타내는 작가이다. 작가는 이전 개인전에서 금속성 손가락들이 금속판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음을 내도록 장치된 인터랙티브 설치작품을 통해 몰개성화(沒個性化, deindividuation) 되어가는 현대인의 반복되는 일상을 표현하였다. 금속으로 제작된 손가락들 전체가 일률적으로 움직이는 이 작업은 현대인의 초조와 지리멸렬한 일상, 그 와중에 소음 속으로 파묻혀 버리는 개별적 존재들 그리고 익명의 자의식이 처한 위기와 나약함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작가의 설치에서 운동이 도입된 것은 2000년 있었던 <일상적 범죄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당시 작가는 주변의 과자봉지, 성인용 전단지, 껍데기만 남은 인간형상, 휴지통 등을 반복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이 작업으로 서로에 대해 무감각과 무관심이 빚어내는 현대인들의 상처, 도시의 어두운 곳에서 일어나는 불법적 행위 등 일상적 상황과 망각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였다. 하지만 작가는 단순한 선적 표현으로 만들어진 비행기, 자동차와 같은 운송수단을 통해 꿈과 이데아를 제시하면서 삶에 내밀하게 존속하는 모종의 희망을 폐기하지 않는다. 유년의 욕망을 연상시키는 프로야구 어린이 회원증과 사전과 같은 오브제들과 단순한 형태의 운송수단을 병치시켜 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계장치를 이용한 움직임과 운송수단, 일상적 오브제 외에도 그의 작업 전반에는 몇 가지 요소들이 일관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먼저, 작은 전구 혹은 스폿 라이트같이 불빛이 대부분의 작업에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과거를 조명하는 기억의 반추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미래와 꿈에 대한 조명을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 관객에 의해 작동되도록 하기 위한 센서 또한 그가 즐겨 이용하는 장치인데 이것은 그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심각하고 무거운 방식 보다는 특유의 유머와 가벼운 터치로 작업을 이루어낸다. 이러한 로우테크를 활용한 작업은 다양한 계층이 작업에 참여하도록 하면서 무엇보다 어린이들의 참여를 염두엔 둔 것이다.

이번 비엔날레에 출품되는 작업도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손가락 작품을 발전시킨 작업으로 관객을 둘러싸고 놓인 책상과 그 책상을 두드리는 손가락들이 빛과 함께 무 규칙적으로 작동하도록 설치되었다. 위에서 내려 보듯이 설치된 책상들은 획일화된 교육, 제도와 개인과 같은 여러 사회적 관계를 연상시키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으며, 반복적이고 몰개성화 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존재와 꿈과 이상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10. 나와 코헤이의 <픽셀_채도#3>와 <도트-무비(Dot-Movie)>(부산시립미술관)

2000년도에 들어 본격적인 작품 발표를 시작한 나와의 작품들은 간단히 말해, 유기체적인 인상을 준다. 그러나 거기에 숨어 있는 컨셉을 살펴보면 그의 작품에는 테크놀로지, 나아가서는 금세기의 디지털 기술이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중에서도 <픽셀(PixCell)>이라는 타이틀의 조각 시리즈는 정보 혁명의 진화를 몸소 겪어온 나와의 그러한 컨셉이 결실을 맺은 작품이다. “픽셀(PixCell)”은 디지털 영상에서 그 화상의 정밀도를 나타내는 “픽셀(Pixel)”과, 생물학적 세포를 뜻하는 “셀(Cell)”을 합성하여 그가 만들어낸 단어이다. <픽셀>시리즈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박제와 일상용품, 그 외 오브제들의 표면을 투명한 구슬로 뒤덮은 조각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을 가까이 가서 살펴보면, 구슬로 덮인 오브제의 표면이 그 구슬의 빛의 굴절에 의해 하나하나 확대되고 왜곡되어 보이는데 그것은 곧 구슬 하나하나가 분리된 단위, 즉 세포 단위와 같이 보여지는 것도 같다. 또한<픽셀>시리즈에서 사용하고 있는 오브제는 모두 인터넷상의 옥션 등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다시 말해 인터넷의 화면, 즉 디지털 화소를 통해 본 소재들에게 새로운 생물적 세포 단위를 부여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목적인 것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픽셀_채도#3(PixCell_Saturation#3)>시리즈는 생명의 생성을 나타내듯 액체(실리콘 오일)가 운동을 계속하고 그것들이 디지털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점들과도 같이 정연하게 배열되어 끊임없이 그 운동을 반복한다. 그 운동은 오일의 점도와 압축기의 움직임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얻어지는 것인데, 보는 이로 하여금 태초의 생명의 발생을 생각게 한다.

또한, 최근 그가 도전하고 있는 것은 <도트-무비(Dot-Movie)>라는 영상작품이다. 지면에 투영되는 무수한 점들이 규칙적으로 중첩되어, 줌인과 줌아웃을 반복한다. 이것들은 컴퓨터에 의한 제어로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방대한 양의 점들을 직접 손으로 드로잉한 집결체이다.

나와의 작품들은 테크놀로지와 물질 등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우리들로 하여금 생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러한 특징은 그의 드로잉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림을 그리는 소재(혹은 그 소재에 어떤 촉매를 섞은 것)들이 화면상에서 보여주는 운동의 궤적을 압축기 등의 테크놀로지에를 사용하여 정착, 고정시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인체, 혹은 생명까지도 어떠한 테크놀로지에 의해 실현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작품 해설 출처 : 부산비엔날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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