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사라 브라이트만 내한공연 스케치(출처 : 벅스뮤직)

想像 2009. 3. 2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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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브라이트만 내한공연 스케치(출처 : 벅스뮤직)


2009년 3월 13일 오후 8시.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의 두 번째 내한공연 <2008-2009 Symphony World Tour>가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렸다. Karma(숙명)를 콘셉트로 한 본 공연은, 최고의 가창력과 최신 기술의 무대연출이 함께 어우러진 종합 예술 퍼포먼스였다.

하필이면 때마침 찾아온 꽃샘추위로 강풍이 불어제쳤고 장소는 휑하기 그지없는 올림픽 체조 경기장이었다. 공연장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들어차며 조금은 어수선했고, 당초 시작 시간인 저녁 8시를 넘겨서도 이어지는 지각생 관객들의 입장으로 공연 시작은 20분 가까이 지연되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을 맞은 찬 마음 탓이었을까. 공연을 즐기러온 여유로운 사람들이라기엔 조금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공연 지연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장내 라이트가 꺼지고, 무대 트러스 위에 매달린 조명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붉고 몽환적인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이어 스피커에서는 맑은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오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수선했던 관객들은 낮게 숨을 죽이고 무대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곧 그녀가 걸어 나올 그 곳을. 잠시 후, 붉은 빛의 드레스를 휘감은 매혹적인 사라 브라이트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5년만의 인사

사라 브라이트만의 2008-2009 심포니 월드 투어 무대의 화려한 오프닝을 장식하는 검붉은 에너지의 곡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첫 곡은 지난해 발표된 앨범에 실린 'Gothica'. 공연을 시작한 그녀는 ‘팝페라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답게 강렬한 카리스마로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첫 곡을 열창하며 붉은 드레스의 양 끝을 휘날리던 독특한 퍼포먼스는 자신만의 세계, 자신만의 공간인 이 무대에 ‘내가 왔노라’ 천명하는 몸짓이었다. 강렬하고 뜨거웠던 첫 곡을 마치고, 한국의 팬들에게 5년만의 인사를 전하고자 가만히 멈춰 섰다. 가쁜 숨을 누르며 어색한 한국어 한 마디를 건넸다. “아름다운 밤입니다.”



한국에 다시 방문하게 되어 기쁘다는 말을 덧붙인 짧은 인사말이 끝나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라며 'Let It Rain'을 소개했다. 첫 곡의 강렬함은 간 데 없고 관객들을 싱그럽고 신비로운 초록 숲에 데려다 놓는 드라마틱한 음색의 변화. 울창한 나무 영상을 배경으로 청명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그녀를 보며 그제야 눈앞에서 사라 브라이트만의 무대를 보고 있음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곡들은 그녀의 무대에 완전한 몰입을 경험하게 했다. 다른 원작자의 곡을 사라 브라이트만의 환상적인 컨셉과 보컬로 재해석한 세곡의 레퍼토리가 이어졌다. Louis Amstrong의 'What a Wonderful World', Kansas의 'Dust in The Wind', Ennio Morriconne 'Nella Fantasia'.

그녀는 환상동화 속 녹색의 숲에서 날아다니는 요정의 모습으로 'What a Wonderful World'를 노래하고 있었다. 일상에 찌들어 있던 관객들에게 바로 지금 이 순간이 Wonderful - 최고의 순간이라는 메시지가 전해졌다. 'Dust in The Wind'에서는 수 천년을 살아왔을 거대하고도 따듯한 고목들과 그 주변을 나는 반딧불이들 사이로 노래하는 사라를 볼 수 있었다. 영원을 살 것 같은 요정의 모습을 한 채 ‘Nothing Lasts Forever(영원한 것은 없어요.)’라는 가사를 읊는 모습은 마음을 찌르는 하나의 역설이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이 노랫말이야말로 오늘 공연의 콘셉트인 인간의 ‘숙명’을 가장 잘 표현한 곡이 아닐까. 사라의 감미로운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자칫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노랫말이 그저 '모든 것은 부질없다'는 냉소적인 말로 닿지는 않았다. 그녀의 속삭임은 ‘영원하지 않기에 이 순간이 더 의미 있고 아름답다’ 는 희망歌로 가슴에 내려와 앉았다. 그리고 이 레퍼토리의 마지막, Ennio Morriconne의 'Nella Fantasia'. 성악가나 팝페라 가수들이 유명한 팝을 부르는 것은 이미 일반적인 일이 되었고, 이 곡 역시 사라가 음반에 취입한 이후 여러 번 다른 보컬로 불린 바 있다. 이미 존재하는 음악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소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몹시 어려운 일이 된다. 뚜렷한 본인만의 색깔이 없는 한 그 시도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있어 사라 브라이트만의 'Nella Fantasia'는 그 어떤 보컬의 시도에서 가장 뛰어나다. 쉽게 곡의 사용을 허락하지 않는 Ennio Morriconne에게 여러 차례 수정을 더해가며 결국 허가를 받아낼 만큼 원곡자의 의도를 존중했으며, 원곡 분위기에 아주 조화롭게끔 자신이 지향하는 ‘꿈과 같은 환상‘ 콘셉트를 입혀냈다. 이처럼 그녀의 색이 훌륭하게 녹아든 이 곡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재현되면서 노래가 가진 100%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나의 환상 안에는 따뜻한 바람이 있었습니다.”라는 꿈결 같은 가사를 담은 'Nella Fantasia'는 수많은 이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최고의 곡이다.



환상적인 밤의 이미지는 계속되었다. 어두운 밤 달빛이 반짝이는 물결 속에서 'Hijo De La Luna'을 노래했다. 댄서들은 그녀를 빙 둘러싼 채 마치 달빛에 제의를 올리듯 춤을 추며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음악의 느낌을 더했다. 3D 영상 기법을 이용한 새로운 무대를 보며 관객들은 탄성을 질렀다. 이어진 곡은 ‘Canto Della Terra'였다. 사라와 뜨거운 눈빛을 나눌 ’사라의 남자‘를 만나는 순간이 다가올 터였다. 앨범에서는 안드레아 보첼리와 듀엣을 나눈 곡. 무대에서 그 역할 해줄 그는 누구일까. 사라의 소절이 끝나자 묵직하게 눌러오는 테너의 음성이 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알레산드로 사피나(Alessandro Safina). 2001년 데뷔앨범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이탈리아 태생 팝페라 가수인 그가 이번 심포니 투어에서 사라와 열정적인 조화를 이루어준 파트너였다.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대지의 노래’를 열창하던 두 사람에게 관객 모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환호를 보냈다. 그가 무대 뒤로 사라지고, 홀로 남은 사라 브라이트만의 청아한 음성의 'Attesa'가 뜨거운 열기를 가라앉히며 1부가 마무리 되었다.

크리스틴에서 크리스마스 인형까지

2부가 시작되자 "Karma"를 상징하는 붉은 빛깔의 풍선을 들고 앉은 여인들 사이로 사라가 등장했다. 독특하고 리드미컬한 ‘You Take My Brath Away' 특유의 멜로디가 들려오고 그녀는 무대 위에 누운 채 노래하기 시작했다. 수천 명의 관객들 앞에서 무대에 몸을 뉘이고 그토록 편안하고 순수한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무대라는 거창한 이름에 구속되거나 의식하지 않은 자유로운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시키는 인간 카드들과 각종 캐릭터들의 재미난 동작, 공중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 별 반짝이는 하늘에서 그네를 타는 등 동화 같은 연출이 등장, 아기자기하면서도 비현실적인 환상의 이미지로 눈은 호강을 만끽할 수 있었다.


드디어 심장이 쿵쿵 뛰는 순간이 찾아왔다. 우리가 기다려온 순간. 사라 브라이트만의 팬이라면 처음과 마지막 순간까지 항상 염원할 그 노래, 바로 'Phantom of Opera'. 긴장감 넘치는 도입부를 지나 크리스틴이 노래를 시작했다. “잠결에 꿈결에 노래했죠. 그가 날 불러요. 내 이름을. 이것도 꿈? 환상? 이곳에 오페라의 유령이 있어. 내 마음에...(후략).” 긴 시간 숱한 크리스틴이 우리 곁을 오갔지만, 사라 브라이트만의 크리스틴은 영원성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바로 크리스틴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앳된 크리스틴은 아니지만 대신 발전을 거듭해온 폭발적인 음성으로 소름 돋은 관객들을 압도했다.

무대에서 여왕과 요정까지 변신을 거듭하던 그녀는 크리스마스 오르골 인형의 모습을 하고 어느 새 공연의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겨울과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껏 느껴지는 'I've Been This Way Before', 'First of May','I Believe in Father Christmas' 세 곡을 선보이는 그녀의 뒤로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배경으로, 마치 눈처럼 종이 꽃가루들은 오르골 인형 같은 그녀의 머리위로 쏟아 내리고 있었다. 공연 대부분을 구성하던 리드미컬하고 때론 경쾌한 혹은 신비로운 곡들 가운데서 차분히 울려퍼진 'First of May'는 천상의 목소리다운 그녀의 음성과 함께 가사까지 마음에 와 닿았다. “묻지 말아요. 많은 시간들이 우리 곁을 지나갔고 저 먼 곳으로부터 다른 누군가가 이 자리를 채워가겠지요.” 지나가버린 날들에 대한 담담한 가사가, 지극히 아름다운 음성으로 불리던 순간 왜 그렇게 가슴이 시리던지. 이 노래가 울려 퍼지던 동안 마치 시공간이 정지한 듯 아무런 미동도 없던 공연장의 풍경이 가슴에 한 장의 사진처럼 남았다. 반짝거리는 듯 사랑스러운 그녀의 크리스마스 멜로디가 지난 겨울과 크리스마스를 추억하게 했다.

무대 위를 어지럽히던 크리스마스의 눈은 머지않아 멈추었다. 사라가 관객들을 응시했다. 그리고 공연을 시작한 첫 마디처럼, 잠시 호흡을 고르고 마지막 한 마디를 건넸다. “It's time to say goodbye." 아쉬움이 가득한 관객들의 탄성을 뒤로 하며 'Time to Say Goodbye'의 익숙한 전주가 시작됐다.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두 시간이 흐른 것은 글자 그대로 ‘어느새‘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하나의 드라마 같은 이 곡에 실어 보내며 열창을 해준 그녀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관객의 끊이지 않는 갈채에 그녀는 곧 다시 나타나 마지막 순간까지 흐트러짐 없는 두 곡 'Deliver Me','Running'으로 완벽한 앙코르를 선사하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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