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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 37

[클래식명곡] 쇼스타코비치 : 피아노 협주곡 제2번, 2악장 안단테

Piano Concerto No. 2 in F Major, Op. 102: II. Andante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1957년, 쇼스타코비치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콘체르티노를 바탕으로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완성한다.이 피아노 협주곡 2번은 1번이 쓰여진 지 무려 24년이 지난 1957년도에 작곡 되었습니다. 모두 3악장으로 구성되었고, 전체적으로 힘있고 활달한 분위기이지만 안단테의 2악장은 모짜르트나 다른 대가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작품에 비겨 그 고요하고,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마음을 적시는 고요하고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하드한 힘과 분위기 묘하게 잘 조화되어 있는 곡 입니다. 마음을 적시는 고요..

쇼스타코비치 : 피아노 협주곡 제2번, Op.102 [Leonard Bernstein ·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Piano Concerto No. 2 in F Major, Op. 102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이 곡은 첫 번째 협주곡과 상당한 시간차를 두고 작곡되는데, 두 번째 협주곡의 탄생에 결정적인 모티브를 제공한 것은 작곡가의 아들 막심 쇼스타코비치이다. 1938년 태어난 막심은 아버지를 닮아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에 상당한 재능을 보인다. 드미트리는 자신이 아버지를 여윈 나이와 자신의 아들이 같은 나이가 되던 1954년, 아들과의 피아노 연탄용으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콘체르티노 작품 94를 작곡했다. 물론 남다른 의미가 있었던 이 작품에 대해 무척이나 정성을 들인 흔적이 남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장중한 서주로 시작해 육중한 걸음걸이로 나가던 곡은 갑자기 분위기를 일신..

쇼스타코비치 : 피아노 협주곡 제2번, Op.102 [Dmitri Shostakovich Jr. · I Musici de Montréal]

Piano Concerto No. 2 in F Major, Op. 102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이 곡은 첫 번째 협주곡과 상당한 시간차를 두고 작곡되는데, 두 번째 협주곡의 탄생에 결정적인 모티브를 제공한 것은 작곡가의 아들 막심 쇼스타코비치이다. 1938년 태어난 막심은 아버지를 닮아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에 상당한 재능을 보인다. 드미트리는 자신이 아버지를 여윈 나이와 자신의 아들이 같은 나이가 되던 1954년, 아들과의 피아노 연탄용으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콘체르티노 작품 94를 작곡했다. 물론 남다른 의미가 있었던 이 작품에 대해 무척이나 정성을 들인 흔적이 남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장중한 서주로 시작해 육중한 걸음걸이로 나가던 곡은 갑자기 분위기를 일신..

쇼스타코비치 : 현악4중주 8번, Op.110 [Borodin Quartet]

String Quartet No. 8 in C Minor, Op. 110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쇼스타코비치는 1938년에서 1975년까지 15개의 현악 4중주곡을 작곡했다. 15곡의 교향곡과 더불어 그의 작품 세계를 대표한 이 곡은 작곡된 시기의 러시아의 사회상이 잘 반영되어져 있다.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도 변화가 많아 서정적인 것, 극적인 것, 이성적인 것 등 다양하다. 1960년에 작곡된 쇼스타코비치의 현악 4중주 작품 중 8번은 그 원작뿐만 아니라 보로딘 쿼텟의 창단 멤버였던 루돌프 바르샤이의 현악 합주단용 편곡 작품까지도 매우 유명하다. 현악 4중주 8번은 바쳐진 작품이다. 이미 작곡된 교향곡 제1, 5, 10번, 피아노 3중주곡, 첼로 협주곡 제1번 및 오페라..

쇼스타코비치 : 현악 4중주 전곡 [Brodsky Quartet]

The String Quartets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쇼스타코비치는 1938년에서 1975년까지 15개의 현악 4중주곡을 작곡했다. 15곡의 교향곡과 더불어 그의 작품 세계를 대표한 이 곡은 작곡된 시기의 러시아의 사회상이 잘 반영되어져 있다.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도 변화가 많아 서정적인 것, 극적인 것, 이성적인 것 등 다양하다. 표현은 대체로 간결, 명쾌하며 반음계 진행이 많고 그리이스 선법, 유태 선법, 러시아 민요 선법 등을 사용하는 독창성을 나타내 보였다. 01. Shostakovich : String Quartet No.1 in C major Op.49 : I Moderato 02. Shostakovich : String Quartet No.1 in C ..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전곡 [Emerson String Quartet]

The String Quartets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쇼스타코비치는 1938년에서 1975년까지 15개의 현악 4중주곡을 작곡했다. 15곡의 교향곡과 더불어 그의 작품 세계를 대표한 이 곡은 작곡된 시기의 러시아의 사회상이 잘 반영되어져 있다.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도 변화가 많아 서정적인 것, 극적인 것, 이성적인 것 등 다양하다. 표현은 대체로 간결, 명쾌하며 반음계 진행이 많고 그리이스 선법, 유태 선법, 러시아 민요 선법 등을 사용하는 독창성을 나타내 보였다. 01. String Quartet No.1 in C, Op.49: 1. Moderato 02. String Quartet No.1 in C, Op.49: 2. Moderato 03. String Quar..

쇼스타코비치 : 축전 서곡, Op. 96 [Gustavo Dudamel · Simón Bolívar Youth Orchestra of Venezuela]

Shostakovich: Festive Overture, Op. 96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소련 당 중앙 위원회가 1954년 제 37회 혁명 기념일을 위하여 위촉되어진 곡으로 작곡가의 내면에서 나온 순수 음악이 아니고 일종의 목적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곡은 소비에트를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즐거운 분위기로 넘치는 밝은 내용 때문에 취주악용으로 편곡되어 전세계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서두에서 나오는 트럼펫의 팡파르는 상쾌한 느낌을 주고 이어서 나오는 혼과 바이올린 등의 반주를 타고 흐르는 클라리넷의 선율은 작곡가의 오라트리오 에서 사용된 바가 있다. 이곡의 감상의 요점은 다양한 관악, 타악기의 매력을 맛보는데 있다.

쇼스타코비치 : 등에 모음곡, Op.97 - 로망스

The Gadfly Suite, Op. 97a: VIII. Romance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이 곡은 쇼스타코비치가 원래 '등에(The Gadfly; 소나 말 등의 가축에 붙어서 기생하며 괴롭히는 곤충)'라는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작곡했던 것이다. 영화 제목은 합스부르크 통치하에 있던 이탈리아에서의 한 혁명가를 비유한 것이었는데, 쇼스타코비치는 이 음악으로 소비에트 체제에 계속 반항하던 자신의 처지를 빗댄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Romances'는 悲哀와 아름다움이 함께 공존하는 유려한 선율의 흐름이 매우 인상적인 곡이다. 음악 자체가 대단히 로맨틱하기 때문에 항상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는 명곡이다. Alexander Feinzimmer가 감독을 한 영화 The Gadf..

쇼스타코비치 : 피아노 3중주 2번, Op.67 [Emanuel Ax · Isaac Stern · Yo-Yo Ma]

Piano Trio No. 2 in E Minor, Op. 67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음악해설 1944년 여름에 기고하여 같은 해 8월 13일에 이와노바 근처 이라는 곳에서 완성했다. 이 곡은 이 해 2월에 죽은 친구인 평론가요, 음악학자인 ‘솔레르틴스키의 추억’으로 바쳐진 것이다. 작곡연대는 제1현악 4중주곡 작품 49 및 1941년 스탈린 상을 받은 유명한 피아노 5중주곡 작품 57의 뒤를 이어 제6, 제7, 제8교향곡 및 제2현악 4중주곡 작품 69와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작품이다. 극히 간결한 수법으로 쓰여졌으며, 특히 피아노는 아주 빈번하게 2옥타브를 격하여 양손이 유니즌으로 움직인다. 1944년 11월 9일, 모스크바의 에서 작곡자 스스로의 피아노, 드..

쇼스타코비치 : 24개의 전주곡과 푸가, Op.87 [Tatiana Nikolayeva]

24 Preludes & Fugues, Op. 87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쇼스타코비치의 초기 피아노 작품은 그가 직접 연주하려는 목적에서 작곡되었다. op. 34의 프렐류드는 1933년 다급히 작곡되었고, 이후 얼마 동안 그는 공연에 시간을 더 할애하기를 원했다. 24개의 프렐류드와 푸가 op. 87은 초기의 피아노곡들보다 더 높은 음악적 도전에 다가가는 상당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쇼스타코비치가 젊은 러시아 피아니스트 타티아나 니콜라예바의 바흐 연주를 듣고 영감을 얻지 않았다면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을 1950년 10월 10일부터 1951년 2월 25일 사이에 작업했지만 당시 상황이 호의적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1948년의 주다노프 탄압에 ..

쇼스타코비치 : 24개의 전주곡과 푸가, Op.87 [Alexander Melnikov]

24 Preludes & Fugues, Op. 87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작품 번호 87번 '24 전주곡과 푸가'는 악명 높은 지다노프 비판(Zhdanov Decree) 직후인 1950-1951년에 작곡되었다. 이 작품은 21세기 피아노 문헌의 이정표와 같은 작품 중 하나인데, 쇼스타코비치가 바흐의 음악, 특히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공부하면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다양한 형식 속에서 광범위한 감정을 표현하는 이 작품은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타탸니야 니콜라예바(Taiana Nikolaeva)에게 헌정되었다. 1951년 작곡가 동맹에 제출되었는데, 추상적인 작품이었으므로 거센 비판이 뒤따랐다. 당국의 간섭에 얼룩지지 않는 순수한 예술적 영역에 들어서려는 의도에서 연주되기를 ..

[클래식명반] Riccardo Chailly · Concertgebouworkest [Shostakovich: The Jazz Album]

Shostakovich: The Jazz Album Riccardo Chailly · Concertgebouworkest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앨범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지고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바로 이 앨범이다. 이 앨범이 쇼스타코비치 재즈앨범의 스탠더드라고 불리는 이유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로얄 콘서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깔끔한 연주와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의 서정적이고 풍부한 음색 표현이 음반 전체를 아우르며 청자를 사로잡기 때문이다. 1988-91년 녹음, Decca. '재즈'라고는 하여도 이 음반에 실린 음악들은 사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재즈와는 거리가 있다. '재즈 모음곡'이라고 이름 붙은 곡들에서조차도 그러하다. 그저 가벼운 대중적인 음악 장르 어법의 영향을 받았다는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

[클래식명곡] 쇼스타코비치 :《재즈모음곡 2번》중 '왈츠 II'

Jazz Suite No.2, Op.50b VI. Waltz II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 태생으로 그가 삶을 마감했을 때 "공산당의 충성스런 아들인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소비에트 음악의 발전과 사회주의 휴머니즘 및 인터내셔널리즘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전 생애를 바쳤다.”라고 소련 공산당이 그의 죽음을 추모했을 정도로 러시아(구 소련)의 대표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중에 재즈 모음곡 1,2번이 있다. 재즈 모음곡은 만족되지 않은 음악적인 호기심에 충만했던 학생시절, 구 소련을 방문한 서방 재즈 뮤지션들의 연주회에 종종 참석했었던 쇼스타코비치가 재즈에 대한 깊은 관심을 작품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서방의 음악이었던 ..

쇼스타코비치 : 첼로 협주곡 2번, Op.126 [Mischa Maisky · London Symphony Orchestra · Michael Tilson Thomas]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Cello Concerto No.2, Op.126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Dmitri Shostakovich, 1906 - 1975)의 두 번째 첼로 협주곡 사 장조 (Cello Concerto No.2 in G Major, Op. 126)"는 첫 번째 협주곡 (Cello Concerto No. 2 in E flat Major, Op.107)과 마찬가지로, 당시 소련 최고의 첼로 비루투오조라 추앙 받았던, 미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Mstislav Rostropovich, 1927 - 2007)를 위하여 쓴 작품으로 1066년 봄 크리미아의 휴양지에서 완성되었다. 의 60 번째 생일을 맞는 1966년 9월 25일에 모스크바 음악원 (Moscow C..

쇼스타코비치 : 첼로 협주곡 1번, Op.107 [Mischa Maisky · London Symphony Orchestra · Michael Tilson Thomas]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Cello Concerto No.1, Op.107 1959년 여름은 쇼스타코비치에게 있어서 운명적인 시기였다. 그는 당시 레닌그라드(현재는 원래 지명인 성 페테르부르크로 바뀌었다) 근교에 위치한 코마로보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1953년 이곳에서 그는 스탈린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교향곡 10번]을 작곡한 바 있다. 이 독재자의 죽음이 작곡가의 삶이 극단적인 종말을 향하도록 변화시켰다는 것은 사실이다. 2년 뒤 죽음의 사자가 쇼스타코비치의 가족을 찾아와 1954년 말 그의 부인인 니나 바르사르가 결국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쇼스타코비치에게는 병마가 찾아와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마르가리타 카이노바라는 젊은 여인과의 새로운 사랑과 결..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5번, Op.141 [Moscow Radio Symphony Orchestra · Maxim Shostakovich]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15 in A major, Op. 141 15번 교향곡은 음악적 형식으로 본다면 전형적인 교향곡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시 1번 교향곡의 뉘앙스를 풍기면서 두 교향곡이 서로 맞물고 있는 특이한 형태를 차지하고 있다. 즉 절대 음악적 성격을 띄고 있으며 이는 음악적 퇴행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그 기나긴 교향곡의 길에 마지막 이정표를 세우고 영원한 음악적 순환의 굴레로 만들었다. 15번 교향곡의 이런 작품적 특징은 그의 마지막 작곡의 시기에 위치해서, 작품 내면 못지 않게 시기적으로도 매우 아이러니컬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15번 교향곡이 쇼스타코비치 전체 교향곡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바로 그의 모든 교향곡에 대한 ..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4번, Op.135 [Moscow Chamber Orchestra·Rudolf Barshai]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14, Op. 135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역사에서 대담하고 독창적인 개혁을 이루어냈다, 그 중에서도 노래를 삽입한 4곡은 각기 특이한 존재로 자리 잡았으며,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곡들이라고 할수있다,특히 만년에 작곡한 제13번과 제14번은 그가치를 인정받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계열의 정상에 우뚝서게 만든 걸작이다. 특히 제14번은 완성도와 형식 형태의 독창성으로 쇼스타코비치가 만들어낸 15곡 교향곡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11개의 악장은 각각 스페인(2),프랑스(6),러시아(1),독일(2) 등 4명의 시인이 쓴 시를 바탕으로 작곡되었다. 1-2악장 스페인의 가르시아 로르카 (1889-1936) , 3-8악장..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3번《바비 야르》,Op.113 [Moscow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 Kirill Kondrashin]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13 in B flat minor, Op. 113 "Babi-Yar" 1956년 제20회 당 대회에서 그 유명한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비판 폭로 연설이 있은 후, 소비에트에서는 소위 "해빙"이 시작되었다. 쇼스타코비치도 그 자리에서 그의 연설에 지지를 보내며 '음악 창작에 관한 두세가지 긴급한 문제'라는 논문을 "프라후다'에 게재하고, 젊은이들에게 과감한 혁신을 호소했다. 그러나, 그가 이후에 발표한 제11, 12번은 보수적 기법에 근거한, 혁명을 다룬 표제 음악이었다. 그에 반해 제13번은 "해빙"의 시기에 소비에트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유대인 문제를 대담하게 다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회 고발성 짙은 작품이라고 할수 있으..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2번《1917년》,Op.112 [Moscow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 Kirill Kondrashin]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12 in D Minor, Op. 112 "The Year of 1917" 11번에 이어 구소련의 혁명 정신을 나타낸 작품입니다. 1917년은 레닌의 주도로 공산당이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켜 황제 “차르”의 권위를 묵살하고 황제의 지배를 벗어나게 만든, 말 그대로 혁명의 해였지요. 쇼스타코비치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이 곡을 작곡하게 되고 이 곡 첫머리에 “레닌의 회상에 바친다 - To the Memory of Lenin”라는 표제를 쓰게 됩니다. 1악장은 "혁명의 페트로그라드"인데, 혁명 전야의 페트로그라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머리부터 비장한 저현의 흐름이 인상적입니다. 바순과 클라리넷, 바이올린 등이 비장한 주제를 계속해서..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1번《1905년》,Op.103 [USSR State Symphony Orchestra · Konstantin Ivanov]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11 in G minor, Op. 103 "The Year 1905" 1905년 1월 9일, 안개가 자욱히 낀 일요일 오후, 페테르부르크 거리에서 노동자들이 황제의 거처인 '동궁전'을 둘러싸고 마치 파도치듯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황제에게 탄원하기 위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聖像 (성상)과 깃발을 든 채로 걷고 있었던 것이다. 전혀 무방비 상태였던 민중들에게 황제의 군대가 갑작스럽게 일제 사격을 가함으로써, 수 많은 사상자를 낸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의 각 도시의 노동자들이 저항에 나섰고, 에이젠슈타인의 영화로 잘 열려진 군함 포촘킨의 반란도 일어난다. 이것이 러시아 제1차 혁명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0번, Op.93 [Leningrad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 Yuri Temirkanov]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10 in E Minor, Op. 93 교향곡 10번은 전체 쇼스타코비치 생애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교향곡 9번부터 천천히 되새겨볼 필요가 있기에 불필요한 것 같은 언급들을 삭제할 수 없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작곡된 7번과 8번으로 인해서 한껏 부풀어 오른 스탈린에 대한 맹목적인 추대와 숭상 (공산주의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와중에서 당연히 쇼스타코비치의 외형적인 면도 우선은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음을 이해하여야 한다)이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9번 교향곡에 대해서 스탈린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9번이 상당히 명랑하면서 밝..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9번, Op.70 [Gennady Rozhdestvensky ·USSR Ministry of Culture Symphony Orchestra ]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Symphony No. 9 in E flat major, Op.70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비로소 7번부터 이어지던 전쟁 교향곡의 대미를 이 9번으로 장식한다. “승리의 교향곡”으로도 불리어졌지만 이 9번은 이전의 7번과 8번의 드러난 애국주의 경향이 희석되었다는 평가를 받아 악명높은 안드레이 주다노프의 비판의 희생물이 되자 결국 쇼스타코비치는 의도적으로 공산당을 찬양하는 “숲의 노래”를 작곡하면서 10번 교향곡과 다소 멀어지게 된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교향곡이란 장르는 서서히 쇠퇴해지고 말았다. 그 이전에는 교향곡 자체는 조성의 튼튼한 골격하에서 이루어지는 구조체라는 것이 지배적인 인식이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조성을 파괴하는 경..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8번, Op.65 [Yevgeny Mravinsky, Leningrad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 8 in C Minor, Op. 65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7번에 이어 2차 세계대전중인 1943년에 작곡되어 같은 해에 므라빈스키에 의해 초연된 작품으로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침통한 마음을 표현한, 비관이 바닥에 짙게 깔려있는 무거운 작품입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비애와 우수의 정점을 묘사했던 차이코프스키의 6번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유명한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와 함께 전쟁 교향곡이라 불리는, 나치독일에 의하여 포위된 레닌그라드에서 작곡된 작품. 7번이 나치에 맞서 용감히 싸운 승리의 기록을 묘사하고 있다면 8번 교향곡은 절제절명의 위기와 절망의 순간에 처한 인간의 심층을 처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곡의 전체적인 짜임은 전통적인 4악장의 구성..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7번《레닌그라드》, Op.60 [Evgeny Svetlanov, USSR State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 7 in C Major, Op. 60 "Leningrad"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7번교향곡은 2차대전의 한 고비로 유명한 1941년의 레닌그라드 전투 당시에 작곡되었다. 당시에 레닌그라드는 나치독일군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빠져있었다. 결국 레닌그라드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 포위에서 풀려나는데 쇼스타코비치는 이 포위된 도시에서 7번 교향곡을 완성한다. 그해 12월에 완성된 이 곡은 레닌그라드시에 헌정되었고 발표되자마자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연주되었다. 전쟁중 쓰여진 7번과 8번, 그리고 9번 교향곡을 전쟁 교향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중에서는 이 7번이 가장 유명하다. 쇼스타코비치는 당시 실제로 레닌그라드에 살고 있었는데, 전쟁이 일어나자 쇼스타코비..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6번, Op.54 [Yevgeny Mravinsky, Leningrad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 6 in B minor, Op.54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쇼스타코비치는 역작 을 발표한 지 2년여 만에 을 발표했다. 제5번이 劇詩(극시)적이며 인간적인 데 비해 은 서정적이고 자연적이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청아하고, 구름 한점 없는 부드러운 태양 빛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곡은 '작곡가 자신의 예술 생활을 소비에트 연방의 새로운 생활과 연합해 가는 노력'을 보여준 대표작으로 까지는 주로 자신의 내면 생활에 눈을 돌렷던 그가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이후의 작품에서는 주요 소재를 사회사상으로 바꾸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교향곡은 하나의 과도기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 싶다. 이 곡은 그 양식상 매우 특이한 성격을 띠고 있다. 전통적인 교향곡이 소나..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5번《혁명》, Op.47 [Evgeny Svetlanov, USSR State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 5 in D minor, Op. 47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다. 이 작품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 유일하게 공연이 된 공산권 음악이었다. 작곡가건 연주자건 간에 당시엔 공산국가 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작품은 절대로 공연을 하지 못했다. 물론 음반들의 국내 반입도 끔찍할 수준으로 차단했었다. 당시 므라빈스키나 콘드라신의 쇼스타코비치 판을 듣기 위해서는 독립운동을 하는 비밀 지하조직의 구성원들 처럼 판을 가지고 있는 사람 집에 은밀하게 모여 작은 소리로 틀어놓고 숨죽여 들어야만 했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쇼스타코비치의 LP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어놓기도 하고. 1970년대 후반, 뉴..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4번, Op.43 [Kirill Kondrashin, Moscow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 4 in C minor, Op.43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단악장이었던 2번과 3번과는 달리 고전적 형식을 그대로 답습한, 교향곡의 전형과도 같은 작품이다. 특히 이 4번은 초연을 앞두고 “므첸스크의 멕베드 부인” 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초연이 취소됨은 물론 26년 후에나 빛을 보게 된다. 이 은 교향곡1번을 만든지 10년째 되던 1935년, 29세 때 작곡, 이듬해인 1936년에 완성되었다. 같은 해 4월에 예정되었던 첫 공연은 몇 차레의 리허설까지 마친 찻태에서, 작곡자인 그가 레닌그라드 필의 지휘대 위에 직접 올라가 총보를 집어 들고 퇴장하는 해프닝이 벌어져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이 일로 인해 이작품은 빛을 보지 못햇으나, 1961년 12월 3..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3번《5월 1일》,Op.20 [Kirill Kondrashin · Moscow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 Alexander Yurlov Russian State Academic Choir]

Symphony No. 3 in E-Flat Major, Op. 20 "The First of May"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표제에 나와 있듯이 이 작품은 쇼스타코비치가 구소련 정부(정확히는 국립 도서 출판소 음악국)의 요청으로 “10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쇼스타코비치는 구소련의 체제에 물든 목적성을 가진 작품들을 쏟아내게 됩니다. 특히 2번과 3번은 쇼스타코비치 스스로도 자신이 추구하는 작풍과 맞지않다고 여겼고 그의 아들인 막심에게도 결코 지휘를 맡기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2번《10월》,Op.14 [Kirill Kondrashin · Moscow Philharmonic Symphony Orchestra · Alexander Yurlov Russian State Academic Choir]

Symphony No. 2 in B Major, Op. 14 "To October"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표제에 나와 있듯이 이 작품은 쇼스타코비치가 구소련 정부(정확히는 국립 도서 출판소 음악국)의 요청으로 “10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쇼스타코비치는 구소련의 체제에 물든 목적성을 가진 작품들을 쏟아내게 됩니다. 특히 2번과 3번은 쇼스타코비치 스스로도 자신이 추구하는 작풍과 맞지않다고 여겼고 그의 아들인 막심에게도 결코 지휘를 맡기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제1번, Op.10 [Gennady Rozhdestvensky · The USSR Ministry Of Culture Symphony Orchestra]

Symphony No. 1 in F Minor, Op. 10 Dmitri Shostakovich, 1906~1975 19세 소년 쇼스타코비치는 페테스부르크 음악학교의 졸업작품으로 제1번 교향곡을 완성하게 되는데 1번과 2번을 초연했던 ‘니콜라이 말리코’에 의해 서구에 알려지자마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후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표제적인 경향이 아직은 나타나지 않고 이전의 고전주의 작풍의 영향이 보이는 것이 다른 번호의 교향곡들과 차이점이랄 수도 있겠지만 그의 4번이나 마지막 교향곡인 15번에서도 뚜렷한 고전 양식을 취한 것을 봐선 그의 마음에는 늘 목적성 없는 순음악을 동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됩니다. I. Allegretto - Allegro non troppo II. Alleg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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