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20세기 러시아음악

프로코피예프 : 교향곡 제7번, Op.131 [London Symphony Orchestra · Walter Weller]

想像 2024. 3. 15. 14:39
반응형

Symphony No. 7, Op. 131
Sergei Prokofiev, 1891-1953


프로코피예프는 23세 무렵 스스로 이미 자신만의 음악 언어를 만들어냈다고 천명한 바 있다. 그는 다섯 가지의 주요한 요소들에 의해 이러한 개성적인 음악언어를 창조할 수 있었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전성, 독창성, 운동성, 서정성, 마지막으로 그로테스크함이다. 이 가운데 특히 그로테스크함은 작곡가만의 유머이자 독특한 취향으로 이해되곤 한다. 프로코피예프는 이들 요소에 근육질적인 운동성을 위한 특별한 특성을 부여했음은 물론이려니와 자신의 음악을 향유하는 사람들에게는 오소독스(orthodox)하면서도 두터운 음악적 텍스추어를 정확하게 구분해야 하는 특별한 청감까지를 요구했다.

 

프로코피예프는 기악 소품들은 물론이려니와 협주곡, 발레, 오페라 등등 다양한 음악 장르들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직접적인 효과에 대한, 예를 들면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음악을 이끌 수 있는지, 얼마나 철학적인 반영을 담아낼 수 있는지와 같은 놀라운 재능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교향곡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실제로 그가 본격적으로 교향곡에 혼신의 힘을 쏟기 시작하며 중요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은 교향곡 5번을 작곡한 1944년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1917년 연습적인 측면이 강한 교향곡 제1번 〈고전적〉을 완성하고 1925년 호화롭고 화려한 교향곡 제2번을 발표한데 이어 1928년 작곡한 교향곡 제3번은 오페라 〈화염의 천사〉로부터, 1930년 완성한 교향곡 제4번은 발레음악 〈방탕한 아들〉로부터 주제를 인용하였다. 1918년 5월 서유럽으로 진출한 이후 당시 접한 다양한 교향곡의 전통들에 대한 반격과 아방가르드적인 실험 모두가 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1935년 러시아로 돌아온 후에는 비로소 자신이 나아가야 할 교향곡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린 것은 스탈린의 피비린내 나는 대대적인 숙청과 험악한 강압이었다. 특히 교향곡 제5번과 그 이듬해에 작곡한 교향곡 제6번은 당시 감시가 심한 고문과도 같은 사회에 대한 비틀린 감성과 왜곡된 삶을 풍자한 것으로 이 시기 그의 음악에서 비로소 예술적인 깊이와 통찰력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전쟁 피아노소나타들과 바이올린소나타 제1, 2번과 작곡가 최후의 대작으로 작곡가가 세상을 뜨기 직전인 1952년 완성한 교향곡 제7번이 특히 그러하다. 이 작품에서 생각이 보다 넓어지고 훨씬 깊어졌지만 스탈린의 리얼리즘이라는 대원칙에 부합하는 필요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동시에 단순성과 우수 어린 노스탤지어가 스며들어있어 자신의 명예와 인간성을 회복시키고자 하였다.

1952년 10월 11일 모스크바에서 초연된 그의 마지막 교향곡 7번은 소비에트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방세계에서는 매우 냉담한 반응을 얻었다. 이러한 상반된 반응은 음악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어서 양측의 서로 다른 환경과 입장에서 비롯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1948년의 즈다노프 비판과 1953년 스탈린 서거 사이의 시기는 1920년대 파리보다 교향곡을 작곡하는 데에 훨씬 불리한 조건에 놓여있었고, 실제로 쇼스타코비치는 이 시기 교향곡 작곡을 중단하기도 했을 정도다. 반면 서방세계의 평론가들은 음악의 현격한 단순화를 스타일적인 퇴보로 치부하며 용서할 수 없는 죄라고 인식했다.


Prokofiev: Complete Symphonies ℗ 1975 Decca Music Group Limited

 

London Symphony Orchestra · Walter Weller

 

 

제1악장 Moderato 

 

구조적 단순성으로 포장되어 있는 은밀한 의도에 대한 실마리는 제시부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오보에와 글로켄슈필, 실로폰의 앙상블 음향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구조와 화성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풍자적인 오페라이자 마지막 작품인 〈금계〉에 등장하는 점성술사의 음악과 닮아 있는, 동화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한 재료라고 할 수 있다.

 

 

 

제2악장 Allegretto

 

그의 발레음악 〈신데렐라〉나 오페라 〈전쟁과 평화〉에서 등장하는 비통하면서도 달콤한 왈츠처럼 보인다.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호른과 팀파니, 작은북 등이 클라리넷과 플루트, 피아노, 바이올린이 만들어내는 명료한 왈츠 리듬과 대조를 이루며 어두운 분위기를 도입하여 이질적인 요소들이 그로테스크하게 춤을 추는 듯 끝을 맺는다.

 

 

 

제3악장 Andante espressivo 

 

일종의 음악적 화자의 삶에 대한 회상이다. 오보에를 비롯한 목관악기들이 향수를 자아내며 과거에 대한 동화적이면서 낭만적인 추억을 상기시키고, 호른과 바이올린의 길고 풍부한 프레이징과 짧은 하프의 여운은 일종의 몽상적인 여행과 같다.

 

 

 

제4악장 Vivace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였던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는 이 악장에 대해 “당시 몹시 가난했던 프로코피예프는 무려 10만 루블이 걸린 스탈린상을 타기 위해 즐겁고 발랄한 22마디 이상의 갤럽을 원래 의도한 악상 대신 집어넣었다” 라며 증언을 남긴 바 있다. 그러나 종소리와 함께 여운을 남기며 조용하게 사라지듯 끝을 맺는 코다 부분은 작곡가가 의도한 극중 화자의 과거로의 소멸로서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제13번 `바비야르'의 마지막 악장에서 이를 모델로 삼았고 마지막 교향곡 제15번에서 프로코피예프의 이 교향곡에서 드러나는 의도적인 단순성과 신랄한 풍자의 그로테스크한 조화를 고스란히 차용하기도 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