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리음악

라벨 [Maurice Ravel,1875∼1937]

想像 2009. 4. 9.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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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곡가. 시부르 출생. 음악애호가인 아버지의 권고로 7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1889, 14살의 나이로 파리음악원에 입학했다. 같은 해, 파리세계박람회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이국정서(異國情緖)가 풍부한 음악과 접하게 되었는데, 이 경험은 그가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바스크인의 피와 맞물려서 그의 음악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97년부터 G. 포레에게서 작곡을, A. 제달주에게서 대위법을 배웠다. 이 시기에 라벨은 스승 포레와 E. 사티에게서 큰 감화를 받았다. 그리고 98년 《귀로 듣는 풍경》을 첫작품으로, 99년에 피아노곡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에스파냐 무용곡의 일종)》 등 이국정서가 넘치는 개성적인 작품을 발표했다.

그러나 비평가들로부터는 별로 인정받지 못했으며, 로마상 콩쿠르에서는 4차례 모두 대상(大賞)을 획득하지 못했다. 당시, 그는 이미 신진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 낙선 결과는 세론의 표적이 되었으며, 파리음악원 원장의 사직(辭職)으로까지 발전했다.

한편, 이 무렵 그는 《물의 장난(1901)》 《현악 4중주곡(1902∼1903)》을 발표하여 새 세대의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획득했다. 이 시기에 평생을 두고 존경하게 된 C. 드뷔시와 만났다. 그리고, 드뷔시의 숭배자인 시인 트리스탕 클링그조르의 시에 관현악 반주를 곁들인 가곡 《셰헤라자데(1903)》를 발표했다. 그 후 제 1 차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피아노곡 《거울(1904∼1905)》 《밤의 가스파르(1908)》, 오페라 《에스파냐의 한 때(1907∼1909)》, 디아길레프의 의뢰에 의한 발레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1909∼12)》, 관현악곡 《에스파냐 광시곡(狂詩曲, 1907∼1908)》 《어릿광대의 아침 노래(1918)》, 가곡집 《박물지(博物誌, 1906)》 등의 우수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후에, I.F. 스트라빈스키에 의해 <스위스 시계처럼 정밀하다>는 평을 받게 될 정도로 명석하고도 분석적인 구축력, 치밀하고도 미세한 객관성은 이 무렵에 완성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우렁차게 소리높여 부르는 것보다는 조용히 말을 건네는 스타일의 그의 가곡에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제 1 차세계대전 후에는 활력 넘치는 문화상황에 고무되어 그는 재즈음악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국면을 강조하게 되었으며, 1막 오페라 《어린이와 마술(1920∼25)》, 바이올린 소나타(1923∼27) 등을 발표하였다. 1927∼28년에는 미국 연주여행 후에 유명한 《볼레로》를 작곡하였고, 28년 파리 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둔 뒤 발레영화로도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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