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리음악

바르톡 [Béla Bartók,1881~1945]

想像 2008. 7. 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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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톡 [Béla Bartók,1881~1945]

헝가리의 작곡가. 나지센트미클로슈 출생. 5세 때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10세 때는 자작 피아노소품을 연주할 정도의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였다. 1899년 부다페스트 왕립음악원에 입학하여 피아노를 토만(Thoman Istvan)에게, 작곡을 쾨슬러(Koessler Janos)에게 배웠다. 이 시기에는 F.리스트, J.브람스, W.R.바그너의 영향을 받았으나, 1902년 R.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Also Sprach Zarathustra》의 초연을 듣고 작곡기법에 관한 깊은 계시를 받았다. 이러한 기법상의 영향과 민족의식의 결정이 이 무렵 작품의 토대가 되어 교향시 《코수트:Kossuth, symphonic poem》(1903) 《랩소디:Rhapsody》(1904) 등이 작곡되었다.

1905년부터 코다이와 함께 헝가리민요의 수집을 시작, 조국의 농민음악을 다룬 일련의 작품을 썼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그는 인상파의 화성법, 쇤베르크의 표현주의, 스트라빈스키의 원시주의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해 나갔다. 즉 피아노곡 《알레그로 바르바로:Allegro barbaro》(11), 발레음악 《허수아비왕자:The Wooden Prince》(16), 오페라 《푸른수염공작의 성(城):Duke Bluebeard’s Castle》(11) 등은 이 무렵의 작품으로 그의 명성을 떨치게 한 최초의 작품들이다.

그 후 두 곡의 바이올린소나타(21∼22)를 작곡한 시기부터는 새로운 작풍을 보이고 있으며, 그는 있는 그대로의 민요를 소재로 한 작법을 지양하고 인상파적인 기법, 쇤베르크의 음렬작법과 민족성이 융합된 독자적 작법을 사용하였다. 이런 그의 작풍은 중기의 첫번째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피아노소나타》(26)와 《제l피아노협주곡》(26)에서 잘 구현되었다. 버르토크가 익힌 이러한 작법은 민족적 색채를 기조로 하면서 종래의 조성이나 민요의 음계에 머물지 않고 선율에서 사용하는 음과 반주에서 사용하는 음 사이에 공통음을 취하지 않는 방식에서 그의 비상한 긴장력과 밀도 높은 작품들을 낳게 하였으며, 이 밖의 일련의 작품군 제3·제4·제5현악4중주곡(27,28,34), 《현악기·타악기·첼로를 위한 음악》(36) 등 20세기 최대의 걸작들을 쓰게 한 것이다.

30년대 후반 바르토크는 가중되는 나치즘의 압박을 피해 40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그 후의 미국 생활이 그의 후기로 구분되며, 이때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43) 《무반주 바이올린소나타》(43) 등을 작곡하였다. 이들 작품에서는 중기의 강도 높은 긴박감이 쇠퇴한 대신 맑고 평명(平明)한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뉴욕에서 가난과 백혈병으로 불행한 만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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