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클래식지식사전

위대한 작곡가들의 미완성 작품들

想像 2021. 7. 1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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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중에는 작곡가의 타계나 병세 악화, 때로는 음악적 변심 등으로 인해 소위 '미완성' 된채 후세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음악들이 많습니다. 바흐의 '푸가의 기법', 모차르트의 '레퀴엠',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미완성으로 끝났거나 그런 혐의를 가진 작품들중 꽤 유명한 축에 속하는 곡들입니다.

 

대표적인 위대한 클래식 작곡가들의 미완성 작품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곡들이 있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제 10번

 

베토벤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9번 교향곡 "합창"을 작곡한 뒤로 현악 4중주의 작곡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데, 런던 필하모닉 협회의 위촉으로 교향곡 10번의 작곡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병세 악화로 인해 1악장과 그외 몇몇 악장의 스케치만 남긴 채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이후 10번의 존재 자체가 잊혀져 왔다가 20세기에 들어 영국의 음악학자 배리 쿠퍼가 1악장 스케치를 정리해 10번 교향곡으로 발표했습니다. 이 판본은 샨도스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에 수록되었지만, 너무나 작위적인 구성으로 인해 10번 교향곡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현재 점차 잊혀져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바흐 : 푸가의 기법

 

바흐 음악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푸가의 기법’은 바흐가 실명하기 직전까지 심혈을 기울여 씨름한 작품입니다.현재 전해지고 있는 푸가의 기법은 4개의 카논과 19곡(18곡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지막 푸가는 미완성인 채 끝납니다. 그런데 이 곡의 초고에는 이 푸가를 작곡 중에 작곡자가 사망했다고 바흐의 아들 카알 필립 에마누엘에 의해 쓰여 있지만, 이것은 잘못입니다. 사실은 눈이 보이지 않아서 더 계속 할 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흐는 이리하여 ‘푸가의 기법’ 집필을 단념한 뒤에도 자기 일을 버리지 않고, 제자인 알트니콜의 힘을 빌어서 오르간 코랄의 개정을 계속했습니다.

 

모차르트: 레퀴엠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검은 코트입은 수상쩍은 사내가 와서 써 달랬다는 에피소드(물론 이건 픽션이고요. 실제로는 발제크-슈투파흐 백작이 아내의 사망 1주년 추모를 위해 위촉)로 유명한 곡으로, 모차르트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차르트 자신은 세쿠엔티아(Sequentia)의 라크리모사(Lacrimosa)까지만 작곡한 채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나머지 작곡료를 받고자 미망인 콘스탄체가 모차르트의 제자였던 요제프 아이블러에게 의뢰했지만 부분적인 수정에 그쳤습니다. 이후 안톤 슈타들러의 보필을 거쳐 최종적으로 또 한사람의 제자였던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가 원고를 받아 레퀴엠 전곡을 완성했습니다. 현재 가장 많이 연주되는 것이 바로 이 '쥐스마이어판' 인데, 쥐스마이어의 보필 자체는 그리 뛰어나지는 못했다는게 중평입니다. 그래서 20세기 들어 '바이어판', '몬더판', '드루스판', '레빈판' 등, 여러 음악학자들이 나름대로 개정한 판본들을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판본들이 과연 모차르트의 의도를 얼마나 잘 살렸는가에 대한 의문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슈베르트: 교향곡 제 8번 '미완성'

 

보통 4악장제였던 당시 교향곡 창작에 있어 이례적으로 2악장까지만 쓰여있는 곡으로, 그것때문에 '미완성' 이란 부제가 붙어버린 곡입니다. 그러나 후배 브람스를 비롯, 많은 음악학자들은 이 곡이 미완성이 아니라, 슈베르트 자신이 이미 2악장에서 할 말을 다했기 때문에 일부러 작곡을 중단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들은 이 곡의 3악장과 4악장을 복원하려는 시도를 해왔습니다. 1880년대에 아우구스트 루드비히란 작곡가가 3악장 '철학자의 스케르초', 4악장 '운명의 행진곡' 을 복원했다며 베를린 필을 지휘하면서까지 홍보했지만 비평조차 거의 안나올 정도로 대실패를 맛보았습니다. 이후 20세기에 와서는 영국 음악학자 브라이언 뉴볼트가 또 3악장과 4악장을 나름대로 복원, 재구성해 음반(네빌 매리너 지휘의 세인트 마틴 아카데미 합주단. 필립스)으로까지 만들었지만 이것 역시 상당한 비판을 받아 현재는 거의 연주되지 않는 실정입니다.

 

말러: 교향곡 제 10번

 

말러는 9번 교향곡을 작곡한 뒤 곧바로 10번 교향곡의 창작에 착수했는데, 건강 악화로 인해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완성된 것은 1악장 아다지오 뿐이고, 거의 완성 직전이었던 3악장 '연옥' 을 비롯한 스케치들만이 남았습니다. 이를 가지고 영국의 음악학자 데릭 쿡이 전 5악장의 교향곡으로 완성시켰는데, 말러의 미망인 알마를 비롯해 브루노 발터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속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결국 쿡의 판본은 필립스에서 음반화 되었는데(윈 모리스 지휘의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발표 당시 대단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사이먼 래틀 등이 쿠크판으로 음반을 계속 남겼는데, 최근에는 쿠크판을 다시 개정한 마체티판이 나와 이것으로도 종종 연주되곤 합니다.

 

브루크너: 교향곡 제 9번

브루크너의 최후의 교향곡이자 3악장까지만 완성된 미완성 작품입니다. 9번을 작곡할 즈음 전작 교향곡들에 대한 비판이 일자 그 개정작업을 벌이느라 완성이 늦어졌고, 병까지 겹치는 바람에 4악장은 스케치만 남겨놓은채로 타계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스케치도 굉장히 단편적이고 순서가 뒤죽박죽이라 3악장까지만 연주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이 곡의 4악장을 완성하기 위한 작업이 계속됐는데, 그 첫 성과물로 1984년 윌리엄 캐러건의 4악장 완성본이 나왔습니다. 이외에 사말레/마추카판 등으로 4악장이 나왔지만 연주되는 경우는 둘 다 상당히 드물다고 합니다. 브루크너 자신은 유언으로 이 교향곡 다음에 자신의 '테 데움' 을 연주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 7번

차이코프스키는 '6번 교향곡' 을 1892년부터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영감이 없는 공허한 소리일 뿐' 이라며 포기하고 이때의 스케치들을 가지고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재구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업마저 차이코프스키의 사망으로 끝나고,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단악장 작품이 되었습니다. 한편 차이코프스키의 제자였던 타니예프가 차이코프스키의 미발표 원고에서 3번의 2-3악장이라고 생각되는 두 개의 스케치들을 찾아냈고, 이를 피아노와 관현악용으로 편곡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서로 어울리지 않는 탓에 나중에 '안단테와 피날레' 라는 이름으로 따로 출판되었습니다. 교향곡 7번은 바로 이 두 작품과 미발표된 또다른 스케르초의 스케치를 가지고 러시아의 음악학자 세묜 보가티례프가 재구성한 것입니다. 1악장은 피아노 협주곡 3번을 거의 그대로 관현악 편곡한 것이고, 2악장과 4악장도 '안단테와 피날레' 를 관현악 편곡한 것입니다. 이 교향곡은 유진 오먼디 지휘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음반까지 만들어 졌는데, 지금도 간혹 연주되곤 합니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 자신이 맘에 안들어 포기한 작업을 왜 다시 했느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많습니다.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푸치니 오페라 중 워낙 유명한 오페라이지만 푸치니가 다 완성을 보진 못한 채 타계해 버려 미완성인 채로 남은 작품입니다. 토스카니니가 초연때 3막의 '류의 죽음' 까지 지휘하고 퇴장했다는 에피소드로도 유명합니다. 3막 작곡 도중에 푸치니가 사망하는 바람에 출판사인 리코르디가 작곡가 프랑코 알파노에게 의뢰해 완성시켰습니다. 요즘 연주에서는 보통 이 알파노 판본이 연주되지만, 리코르디 측에서 또다른 완성본을 작곡가 루치아노 베리오에게 위촉했다고 합니다.

 

이외에 미완성 작품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완성된 예는 꽤 많아,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여러 스케치와 단편을 비롯해 무소르그스키의 오페라 '호반시치나', 글라주노프의 교향곡 9번(1악장만), 스크리아빈의 '마지막 미스터리를 위한 준비', 레스피기의 오페라 '루크레치아', 엘가의 교향곡 제3번, 베르크의 오페라 '룰루', 바르톡의 피아노 협주곡 제 3번과 비올라 협주곡, 푸르트벵글러의 교향곡 3번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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