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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여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고후쿠지(興福寺)》

想像 2018. 9. 1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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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쿠지(興福寺)는 고대 일본의 유력가문이었던 후지와라 가문이 일족의 번영과 사후의 안녕을 빌기 위해 세운 절로 일본 법상종法相宗의 총본산으로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절이다.


고후쿠지(興福寺)는 일본 최대의 가람 중 하나이면서도 절과 절 밖을 구분 짓는 담장이 없다. 담장 대신 나라국립공원과 붙어 있어 그 경계가 모호하며 건너편에는도다이지(東大寺)가 있다. 원래 나라역 앞에서 시작하는 큰길(노보리 오오지, 登大路)부터 나라국립공원, 카스가타이샤(春日大社)에 이르는 광활한 대지가 모두 옛 고후쿠지의 경내境內에 속했다. 지금은 예전만큼의 영화를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여전히 고후쿠지는 나라불교의 중심에 서 있고, 일본 중세의 불교를 논할 때 빠뜨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찰 중 하나이다. 고후쿠지가 보유하고 있는 보물은 제쳐두고라도 노[能], 먹[墨], 청주(淸酒), 두부 등 지금의 일본 전통문화라고 일컬어지는 문화가 바로 이곳에서 창출되었다.


고후쿠지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자면,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80]에 후지와라 가마타리[藤原鎌足]는 다이카 개신[大和改新]을 계기로 소가 가문을 멸망시킨 뒤 나라의 최고가문이 되었다. 고후쿠지는 후지와라 가마타리는 염지불을 받들기 위해 669년 건립한 야마시나 데라[山階寺]로부터 출발했다. 이후 야마시나 데라는 아스카[飛鳥]로 옮겨져 우마야사카 데라[厩坂寺]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771년 수도를 헤이죠쿄[平城京]로 이전한 헤이죠 천도와 함께 가마타리의 아들, 후히토[不比等]가 현재 위치에 절을 옮기고 이름을 고후쿠지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른다.


고후쿠지의 불사는 나라시대 전반기에 주요 전각과 탑이 완성되었으며 헤이안 시대에 난엔도[南円堂]를 조영해 대가람으로써의 기반을 다졌다. 헤이안 시대에 후지와라 가문은 씨족신[氏神]을 모신 카스가타이샤(春日大社)와 고후쿠지를 일체화시킨 신불습합(神佛習合)으로도 그 위세를 떨쳤다. 1180년 타이라[平氏] 일족에 의해 가람 대부분이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듬해 황실이 앞장서서 가람재건을 착수했을 정도로 후지와라 가문은 황실에도 그 세력을 뻗쳤다. 이 때 가람재건과 더불어 불상이 제작되어 현재 고후쿠지를 “가마쿠라[鎌倉] 시대 불상의 보고(寶庫)”로 별칭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후쿠지 가람 중 가장 눈에 띠는 것은 동금당(東金堂) 앞에 있는 오층탑일 것이다. 고후쿠지의 오층탑은 일본에서 2번째로 높은 탑으로 나라 시내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다. 나라는 지리적으로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탓에 헤이죠쿄, 일반 민가들 대부분이 서쪽에 자리를 잡았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동쪽에 세워진 고후쿠지와 오층탑은 나라시 전역에서 보일 정도로 높이 솟아 있어 당시의 사람들이 아침 · 저녁으로 탑을 향해 예불을 올렸음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고후쿠지가 소유하고 있는 보물의 수를 센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할 정도로 그 양이 엄청나며 제작시기 역시 다양해 한눈에 일본 미술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이다. 대부분이 국보, 혹은 보물,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문화재는 고후쿠지 가람 내 위치한 국보관과 나라국립박물관에서 위탁관리하고 있다.


고후쿠지(興福寺) 전경



5층탑



동금당(東金堂)



남원당(南円堂)



북원당(北円堂)


외형은 팔각원당로 규모로는 크지 않은 북원당(北円堂)은 721년 창건 국보지정되어 있다.



고후쿠지(興福寺) 바로 옆에 있는 사루사와 연못(猿沢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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