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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이 5

조PD - 친구여 (Feat. 인순이) [듣기/가사]

조PD의 5집 "Great Expectation 조PD Pt 2: Love And Life"에 수록된 노래다. 인순이와 조PD의 인지도를 높인 곡으로 음악캠프에서는 3주 연속 1위, 인기가요에서 2번 뮤티즌 송으로 선정되었다. 어릴 적에는 그냥 좋네 하고 넘어가겠지만 하나 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가사의 의미가 팍팍 와닿는 곡이다. 당장 링크된 영상의 덧글란만 봐도... 뭐 많이 먹을 필요도 없이 30살만 먹어도 가사의 의미가 뼛속을 찌르는 느낌이 든다. 조PD의 모든 노래 중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가 많다. 또한 인순이는 이 노래를 피처링해 주면서 명품 고음을 제대로 시전했다. 조PD 는 이 곡으로 2004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노래' 부문을 수상한다. 노래도 화제였지만 당시 기준으로 정말 잘 만든 ..

인순이 - 아버지 [듣기/가사]

인순이는 “‘아버지’ 곡은 내게 지금도 어려운 노래다”고 운을 뗐다.“아버지나 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먹먹한데 노래를 부를 생각을 하니 어려워서 녹음하기 전까지도 도망 다니다 결국 가사에서 ‘아버지’라는 단어를 빼는 조건으로 녹음을 마쳤다”고 털어놨다. 이어 인순이는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사랑한다”라며 “나한테 이 세상을 구경하게 해줬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 걸음도 다가 설 수 없었던 내 마음은 알아 주기를 얼마나 바라고 바래 왔는지 눈물이 말해 준다 점점 멀어져 가버린 쓸쓸했던 뒷모습에 내 가슴이 다시 아파온다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싶다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그래 내가 미워 했었다 제발 ..

인순이 - 거위의 꿈 [듣기/가사]

20~40대가 뽑은 `지친 당신에게 힘이 되는 절대음악` 1위에 꼽혔던 곡. 이적 김동률의 프로젝트 밴드 카니발의 노래로 인순이가 리메이크 했던 ‘거위의 꿈은’ 20~40대에서 고른 1위를 차지, 세대를 뛰어넘어 변함없는 명곡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카니발의 1집 앨범 수록곡이었던 은 김동률의 낮은 목소리와 이적의 높은 음색이 조화를 이뤘던 듀엣곡으로 당시 젊은 세대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곡이다. 취업으로 고민하는 20~30대 젊은 층들에게 많은 힘이 되었던 이 곡은 2000년대 후반 가수 인순이의 곡으로 재탄생한다. 그녀만의 폭발적인 가창력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희망적인 가사는 그녀를 국민 가수의 대열에 들어서게 했으며 한 세대가 아닌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노래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

인순이 - 밤이면 밤바다 [듣기/가사]

"밤이면 밤마다"는 인순이가 1983년에 발표한 댄스곡입니다. 김정택이 작사, 작곡했으며, 이 노래는 인순이를 단번에 히트 가수로 올려주었습니다. 이 노래는 아직도 노래방에서 애창되고 있으며, 리메이크도 적잖이 이루어졌습니다. 실제로 시위에서 개사해 부르는 경우도 있을 정도입니다. 이 노래는 이별한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노래입니다. 가사는 "밤이면 밤마다 / 네가 그리워 / 내 가슴은 외롭고 / 눈물만 흐르네"와 같이 이별의 슬픔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인순이의 파워풀한 가창력과 댄스 퍼포먼스로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밤이면 밤마다"는 1980년대 한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명곡 중 하나입니다. 이 노래는 인순이의 대표곡이자, 한국 가요계의 고전으로 남아 있습니다. 외로운 밤이..

인순이와 히트곡 감상

인순이는 1957년 경기도 포천군 청산면(현 연천군 청산면) 백의리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주한 미군으로 근무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외국인이 흔치 않았던 대한민국에서 인순이는 혼혈임이 쉽게 드러나는 외모로 인해 차별과 소외 등을 받으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인순이는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학교 다닐 때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라는 글도 올리기도 했었다. 인순이는 경기도 연천의 청산중학교를 졸업했고,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하여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인순이는 시골 밖에도 못나가던 순진한 아이였을 때, 김완선의 이모 한백희가 집으로 찾아와 혼혈 그룹을 만들고 싶어 했다며 가수 데뷔를 권유했고, 가족 부양을 위해 가수가 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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